오늘의 복음과 묵상

1/21 복음과 묵상

메옹 2018. 12. 26. 14:16

2019년 1월 21일 월요일

[(홍)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복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오늘의 묵상


모든 율법에 우선하는 법, 주님 현존에 대한 믿음

 

‘난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1998)란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내용보다는 제목 때문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입니다.


청년 네 명이 여름에 놀러가다가 차로 사람을 치여

잘못을 감추기 위해 그를 바다 속으로 던져버립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을 것이라 여겼지만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알고

그들에게 보복을 하는 내용입니다.


내용보다는 내가 은밀히 지은 죄를 다른 누구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공포로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만약 우리도 샤워를 하고 있을 때 유리창에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라고 써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얼마나 놀라게 될까요?

우리의 모든 죄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영화 ‘트루먼 쇼’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영화의 주인공이

태어날 때부터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는 설정을 했습니다.

이 사실을 주인공만 모르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이것을 알았을 때는 이전과 같은 삶은 살 수 없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유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시선에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 주인공이 혼자 부끄러운 행위를 하고 있는 꿈을 꾸다가

눈을 떠보니 무서운 엄마가 지켜보고 있어서 깜짝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그것도 꿈이었습니다.


그러자 조금은 안심을 합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는 이런 공포를 하나씩 쌓아가는 것입니다.

‘누군가 알면 어떡하지?’

다 압니다.

하늘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압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시선에 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하느님의 시선이 아닌 뱀의 시선에

지배받고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하와는 뱀에게 보이기 위해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 하느님께서 지켜보고 계셨음을 알고

그분의 시선을 의식했다면 그런 행위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죄를 이기는 힘은 죄를 짓지 말아야한다는 지식이 아닙니다.

그런 율법보다 더 위의 법이 그 율법을 주신 분께서 함께 하신다는 ‘현존의식(現存意識)’입니다.

율법보다 하느님 현존이 우선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자신들은 단식을 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단식은 좋은 것입니다.

좋은 법입니다.

그러나 법이 현존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그 법을 정해주신 분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법조항을 모조리 알고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법관만큼 법을 아는 사람이 없겠지만, 법관이라고 해서 가장 법을 잘 지키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규정들은 이미 우리 안에 있고

그 법을 정하신 분이 함께 계심만 안다면

내가 하는 행위로 타인을 심판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법을 가장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주님께서 항상 보고 계심을 잊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주님의 현존을 잊게 될까요?

주님의 현존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성당에 앉아있어도 딴 생각을 하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존재를 믿고 나와 함께 계심을 알고 그분에게 나의 시선을 보내고

그분의 시선을 느끼고 말 한마디를 건넬 때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때 우리는 그분의 시선에 빨려 들어가 그분이 계신 하늘에 살게 됩니다.

기도는 나 자신을 하늘로 높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와처럼 땅을 기어 다니는 뱀과 대화하게 될 때면 하느님의 시선을 잊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하늘과 멀어지게 됩니다.


뱀과 대화하는 것을 ‘생각’이라 합니다.

과거의 것을 많이 생각하면 우울증이 걸리고

미래의 것을 많이 생각하면 불안증에 걸립니다.

생각을 할 때 누구나 자아의 지배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생각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늘을 보고 하느님과 대화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의 현존보다 큰 법은 없습니다.

모든 행동이 누군가 지켜보고 있기에 하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자아라고 하는 내 악한 본성에게 인정받기 위해 행동하지 않고

주님의 현존을 믿으면 자아의 종살이에서 벗어납니다.


자아의 시선에 사로잡혀 살면서 주님의 법을 따르겠다고 하는 것은

헌 옷에 새 천 조각을 대는 격이고, 헌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는 격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법은 이제 율법 자체가 아니라

주님의 현존에 대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괴레메 야외박물관


카파토키아는 동서양을 잇는 중요한 교역로에 위치하고 있어 열 개가 넘는 다양한

문명의 발상지 이기도 하다.


4세기 무렵 초기 기독교도들은 이곳에 도착하여 돔 형태의 거대한 바위를 깍아서

둥근 천장과 기둥, 신도들의 좌석을 완벽하게 구비한 교회를 완성했다.

 

괴레메 야외박물관은 고대 수도사들의 집단거주지였는데 400채가 넘는 교회와

은자의 집 그리고 작은 수도원들이 단지를 이루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에는 15채정도만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프레스코화 가운데 일부는 8세기경에 제작된 것도 있는데

가장 경이로운 것은 10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제작된 비잔틴 프레스코화들이다.


사암층에 성화를 그리므로 빨리 부스러지면서 그림이 훼손된곳도 있고, 병자들이

성인들의 그림들을 긁어 먹으므로 성화들이 많이 훼손된 곳이 있으나

특히 푸른색의 벽화가 아름다운 토칼리 교회 같은 곳은 거의 완벽하게 보존 되어 있다.

이 프레스코화들은 당시 비잔틴 예술을 이해하는데는 많은 도움을 준다.

동굴교회 가운데는 예수의 생애를 묘사한 벽화가 있는 교회입구에 사과나무가

있었다는 사과 교회와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성 헬레나의 초상화가 있는 뱀 교회,

최후의 만찬이 벽에 그려져 있는 카란르코 교회, 그리고 괴레메에 있는 교회들 중

가장 화려한 실내장식과 뛰어난 보존상태로 사랑받고 있는 바클 교회가 있다.


또한 벽화에 그려진 사람이 샌들을 신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의 "샌들교회" 등

수없이 많은 교회가 있다.

 

괴레메 야외박물관 입구

 

괴레메 야외박물관

 

괴레메 야외박물관 입구

 

괴레메 야외박물관

 

괴레메 야외박물관

 

괴레메 야외박물관 안내판 

괴레메 야외박물관 위치도

 

괴레메 야외박물관 동굴교회 안내도

 


괴레메 야외박물관 동굴교회들

 

괴레메 야외박물관은 고대 수도사들의 집단거주지였는데 400채가 넘는 교회와 은자의 집 그리고 작은 수도원들이 단지를 이루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에는 15채정도만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프레스코화 가운데 일부는 8세기경에 제작된 것도 있는데

가장 경이로운 것은 10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제작된 비잔틴 프레스코화들이다.


사암층에 성화를 그림으로 빨리 부스러지면서 그림이 훼손된곳도 있고, 병자들이

성인들의 그림들을 긁어 먹으므로 성화들이 많이 훼손된 곳이 있으나 특히 푸른색의

벽화가 아름다운 토칼리 교회 같은 곳은 거의 완벽하게 보존 되어 있다.

이 프레스코화들은 당시 비잔틴 예술을 이해하는데는 많은 도움을 준다.

동굴교회 가운데는 예수의 생애를 묘사한 벽화가 있는 교회입구에 사과나무가

있었다는 사과 교회와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성 헬레나의 초상화가 있는 뱀 교회,

최후의 만찬이 벽에 그려져 있는 카란르코 교회, 그리고 괴레메에 있는 교회들 중

가장 화려한 실내장식과 뛰어난 보존상태로 사랑받고 있는 바클 교회가 있다.


또한 벽화에 그려진 사람이 샌들을 신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의 "샌들교회" 등 수없이

많은 교회가 있다.  

괴레메 야외박물관 동굴교회들

 

괴레메 야외박물관 동굴교회들

 

괴레메 야외박물관 동굴교회들

 

괴레메 야외박물관 동굴교회들

 

괴레메 야외박물관 동굴교회들

 

괴레메 야외박물관 동굴교회, 거주지들

 

암벽 중턱의 비둘기 집들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수도사들이나, 신자들이 사육한 비둘기집이다.


서방교회 수도사들은 노동과 기도하는 일을 병행한 반면,

터키를 비롯한 동방교회 수도사들은 오직 기도생활에만 힘썼다.


자연 노동은 일반 신자들의 몫이 되었다.


이들은 생활을 보다 편리하기 위한 한 수단으로 비둘기들을 사육하게 되었는데

1) 족제비의 피해를 막기 위해 암벽 중턱에 비둘기 집을 지었다.

2) 편지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신 수단으로 비둘기를 사육 하였다.

3) 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프레스코 화와 관계가 있다.

 

동굴 안은 대 부분 사암층으로 쉽게 부스러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 이곳에 프레스코 화를 그렸을 때는 쉽게 부스러지므로 성화들이 오래

가지를 못했다.


그러다 비둘기의 알의 흰자가 접촉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연 염료를

채취해 비둘기 알 흰자를 섞어 회칠이 마르기전 성화를 그리게 되면 오랜 세월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비둘기를 사육하게 된 이유들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괴레메의 비둘기들

 

수도사, 신자들의 거주 동굴

 

수도사, 신자들의 거주 동굴

 

부억과 식탁

 

식탁

 

식당 천장은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다.

 

<성 바실 동굴교회>

 

성 바실교회, 초창기 동굴교회

 

바실교회안의 프레스코화, 아직 성화들이 간단하고, 비둘기 알 흰자를

사용하기 전의 성화로 많이 훼손되어 있다.

 

바실교회안의 프레스코화

 

바실교회안의 프레스코화

 

바실교회안의 프레스코화

 

바실교회안의 프레스코화

 

바실교회안의 프레스코화

 

바실교회안의 무덤

 

<사과 동굴교회>

 

사과교회, 교회입구에 사과나무가 있었다 하여 사과교회라 부른다.

 

사과교회

 

사과교회 프레스코화, 예수님의 일생을 그려놓았다. 주후 10세기의 작품이다.

 

사과교회 프레스코화

 

사과교회 프레스코화

 

사과교회 제대

 

사과교회 프레스코화, 최후심판의 날 성화

 

최후심판의 날 성화


예수님을 중심으로 마리아(좌)와 세례요한(우)이 서있다.

예수님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는데 "나는 빛이다"는 글이 쓰여 있었다.

 

예수님의 오른쪽 손가락을 보면 3개의 손가락은 모아져 있는데,

이는 삼위일체를 표현한 것이고, 세워져 있는 두개의 손가락은 예수님의 양성,

신성과 인성을 표현한 것이다.

 

사과교회 프레스코화

 

사과교회 프레스코화

 

사과교회 프레스코화, 천장 돔 안의 예수님,

역시 책을 가지시고 손가락 모양이 3개(삼위일체),

두개(인성, 신성)을 표현하고 있다.

 

사과교회 프레스코화, 중앙 돔 아래는 4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사복음서를 상징하며 기둥위에 사복음서 저자들의 인물화가 원안에 그려져있다.

 

사과교회, 원안의 사복음서 저자들

 

사도 요한

 

사과교회

 

사과교회

 

<뱀 동굴교회>

 

뱀 동굴교회

 

뱀 동굴교회, 아래 뱀이 그려져있다.

 

뱀 동굴교회

 

뱀 동굴교회

 

뱀 동굴교회, 무화과 잎으로 가렸다

 

뱀 동굴교회

 

 

<샌달 동굴교회>

 

샌달교회

 

샌달교회, 예수님이 샌달을 신고 있다.

 

샌달교회, 예수님과 사람들이 샌달을 신고 있다.

 

샌달교회 

샌달교회 , 십자가의 예수님

 

샌달교회, 부활의 주님

 

샌달교회

 

샌달교회

 

샌달교회

 

샌달교회

 

샌달교회

 

<토칼리 동굴교회>


토칼리교회, 가장 완벽한 프레스코화가 남아있는 교회이다.


토칼리교회

 

토칼리교회

 

토칼리교회 제대

 

토칼리교회

 

토칼리교회

 

토칼리교회

 

토칼리교회

 

토칼리교회

 

토칼리교회

 

토칼리교회

 

토칼리교회 지하 무덤

 

<성녀 바르바라 동굴교회>

 

성녀 바르바라 동굴교회

 

성녀 바르바라 동굴교회

 

성녀 바르바라 동굴교회

 

성녀 바르바라 동굴교회

 

성녀 바르바라 동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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