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4일 화요일
[(녹) 연중 제4주간 화요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1-43
그때에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불가능한 일은 없다. 불가능하다는 생각만 존재할 뿐이다.
두 장애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한 청년은 축구, 레슬링, 권투 등 만능선수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979년 권투 시합에서 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못 쓰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치료를 받고 보조기를 쓰면 혼자서 걸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친구들에게 산에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정상에 다다르자, 그는 그를 산에 옮겨 준 친구들에게 잠깐만 자리를 피해 달라고 하고는
숨겨 가지고 온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24세였습니다.
다른 한 청년은 어느 날 불량배들에게 칼을 맞고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는 투지로 노력한 끝에 낙하산 점프의 묘기를 보였고,
특별 장비를 갖춘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며 혼자서 취사, 세탁, 청소 등을 하며 생활합니다.
그는 또한 휠체어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고 이에 관한 세 권의 사진첩을 출간하였습니다.
시련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시련은 어떤 식으로든 찾아옵니다.
그 시련을 대하는 자세가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고 실패로도 이끕니다.
그 시련을 대하는 자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주위에 그런 믿음을 줄 사람이 없다면 안 좋은 결말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믿음을 굳건히 지켜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혈병 여인과 회당장은 그러나 믿음을 방해하는 많은 장애들을 만납니다.
하혈병 여인은 처음에 돈이 좀 있었습니다. 돈과 의사의 말을 믿었습니다.
전 재산을 다 날렸다면 의사들은 이제 포기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혈병 걸린 여인은 포기를 몰랐습니다.
믿음을 저해하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회당장은 예수님을 모시고 가다가 믿음이 약한 종을 만납니다.
종이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자 회당장은 주저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그런 예수님을 비웃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믿음도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한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 혼자 강한 믿음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믿음을 약하게 만드는 모든 사람들을 쳐내셨습니다.
우리 주위에 믿음을 약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면 먼저 그것을 끊어버릴 용기부터 있어야합니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심지어 믿음을 비웃으면 내쫓아버리십시오.
불가능은 없다는 믿음을 주는 사람과 가까이하십시오.
미국의 마리온 라이스 하트 여사는 경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경비행기로 그것도 여자가, 84세의 나이로 대서양을 횡단을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트 여사가 비행을 배우기 시작한지
겨우 2달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비행을 시작한 이유도 ‘혼자 시간을 때우기에 아주 좋다’는 이유뿐이었습니다.
단순히 비행을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많아지는 혼자 있는 시간을
규모 있게 보내려다보니 나온 생각이었습니다.
이후로 하트 여사는 ‘나는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세계의 여러 곳을 작은 경비행기로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사가 도착하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환영을 했고
그 때마다 여사는 ‘기진맥진하지만 매우 행복하다’는 소감과 함께 사람들의 환대에 감사했습니다.
하트 여사의 도전은 보통 사람이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특별함은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불가능하다고 믿으면 불가능한 것이고 가능하다 믿으면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믿으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들을 조심합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꼭 읽어 보세요 (가능하시면 3번 이상)
잘 보관 하셨다가 가끔 꺼내어 보세요.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
어느 의대 교수의 ‘죽음학’ 강의
정현채 서울대의대 내과학 교수
(소화기학) 교수는 10년 넘게 ‘죽음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위염이나 위궤양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부모와 친척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에 관한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수많은 과학적 연구 성과를 접한 결과 “죽음은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그의 저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비아북)에서 근사체험, 죽음 뒤의
세계 등을 발췌해 싣는다.
죽은 다음 어떻게 되나 의문 갖고 15년 전 죽음 공부육체는 분해돼 자연으로, 영혼은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 근사체험 알고 있으면 죽음에 대한 불안·공포 크게 줄어
나는 쉰 살 무렵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죽음과 관련이 있는 수백 권의 문헌과 의과학 논문을
읽고 동영상 자료를 찾았다.
실증주의 교육을 받아 체화한 과학자로선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던 영적
체험들이 단순한 착각이나 환상이 아니라 분명한 실재임을 역시 과학자의 입장에서 알게 됐다.
우리의 육체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게 되어 부패해 가더라도 우리의 의식은 또렷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경이로움은 이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죽음을 내포한 생명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깊이 인식하게 돼 고난과 역경을 영적인 성장의 기회로 껴안게 되었고 주어진 삶을 더욱 충만하게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임종 직전 신체 변화
임종이 가까워지면 신체에 몇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체중감소·식욕감퇴·쇠약·부종 같은 신체적 증상과 더불어 정신착란·불안·흥분 같은
정신적 증상이 같이 나타난다.
음식물을 삼키기 힘들어하거나 수면시간이 늘어나고 세상사에 대한 관심도 옅어진다.
임종이 좀더 가까워지면 소변 배출량이 감소하고 호흡 변화와 함께 가래 끓는 소리가 나며 혈액순환 장애로 인해 푸른빛이나 자줏빛 반점이 나타난다.
이밖에 떨림·발작·근육경련·정신착란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이 같은 발작 증세를 보일 경우 뇌 MRI 같은
정밀검사를 하거나 간질을 억제하는 주사약을 투여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는 적절치 못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병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조치를 취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의료진은 살인죄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노쇠도 질병의 하나로 보고 치료하려는 경향이 있다.
질병은 어떤 이유로 우리의 신체가 고장이 난 상태이고 이를 고쳐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의료행위이다.
그러나 노쇠는 고장이 난 것이 아니다.
이를 테면 기계가 수명을 거의 다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음식물을 삼키는 기능이 저하된 고령자에게 어떻게 해서든 음식을 먹이려고 하다보면
흡인성 페렴이 유발돼 오히려 환자를 고통에 빠뜨릴 수 있다.
눈 딱 감고 먹이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다.
고령의 노인은 먹지 않아서 죽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다해서 다시 말하면 죽을 때가
임박했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스콧 니어링은 100세가 돼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주위 사람들에게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나 또 다른 깨어남이므로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에서 화장한 후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채 떠났다.
‘죽음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인간의 육체는 영원불멸한 자아를 둘러싼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로스 박사의 이런 주장은 오랜 임상 경험의 결과였다.
수많은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관찰한 삶의 종말 체험과 근사체험을 통해 이끌어낸
결론이었던 것이다.
삶의 종말체험은 죽음과 관련해 일어나는 중요한 영적 현상이다. 근
사체험과 공통되는 부분도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다른 개념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떤 환영을 보는 현상을 말한다.
대체로 먼저 떠난 가족이나 친지 또는 친구가 임종하는 사람을 마중 나온다.
이는 임종하는 사람과 가족 모두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지막 선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근사체험은 죽음 직전에 경험하는 사후 세계로서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을 갖고
체외이탈을 경험하고 터널을 통과하거나 밝은 빛과 교신하며 천상의 풍경을 관찰한다.
세상을 떠난 가족·친지와 만나고 자신의 생을 회고하는 공통점을 보인다.
근사체험은 갑작스런 사고로 심장과 호흡이 멎은 죽음의 상태에서 체험을 하는 것이다.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죽음을 경험하는 동안
평화로운 마음으로 천장에서 아래의 모든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근사체험에 대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죽음은 꽉 막힌 벽이 아니라
열린 문이며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뜻하는 것”이다.
죽은 뒤 어떻게 되나
스웨덴의 스베덴보리, 그리스의 다스칼로스, 덴마크의 마르티누스 등 신비가들에 따르면 인간은 육신이 죽은 후 소멸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파동의 에너지체로 존재하게 된다.
영혼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파동으로서만 존재하는데 비슷한 파동을 지닌 영혼들은
서로 모이게 된다.
즉 영혼의 유유상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육신을 벗어나 비물질계로 옮겨 갔다고 해서 갑자기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지상에서 성취한 영적인 발달 정도에 따라 각자의 영혼이 끌리게 되는 여러 수준의 차원이 있다.
영계에는 비슷한 진동수를 가진 영혼들의 공동체가 수없이 존재하며 이들과 계속 유대를 갖고 집단을 이뤄 존재하게 된다.
진동수와 같은 의미를 갖는 도덕적 특이 중력이라는 용어도 관심을 끈다.
사후의 영이 처음 도달하는 장소는 이 중력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지상에서 사는 동안의 선함 정도나 결핍 등으로 형성되며 에너지장이나 기운으로
나타난다.
영적인 발전 단계에 따라 어두운 색부터 휘황찬란한 광채까지 다양하다.
도덕적 특이 중력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빛의 양이 제각기 다르므로 위장도 불가능하다. 그것을 속이고 더 높은 궤도로 올라가면 그것의 빛을 감당하지 못한다.
낮은 도덕적 특이 중력을 지닌 사람들은 일단 낮은 수준으로 몰리지만 발달한 영들의 도움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점차 진화해간다.
죽어서 육신을 벗어난 신참 영혼은 사후 1차 영역에 머물게 되는데 고독감·무력감·결핍감·고통·환멸 같은 감정을 느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이때 마음을 열고 간절히 기원하면 수호영혼의 도움을 받아 지상에서 사는 동안
오염되었던 삶을 정화하게 되고 손상된 영혼을 치유하고 보고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원래 맑고 순수했던 영혼을 회복하고 나면 영혼이 주파수가 높아져 완전히
다른 상위 영역으로 진입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말기 암 진단을 받았거나 임종이 임박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불안해 하지 말라고 다독이고 격려하고 싶다.
근사체험이나 삶의 종말체험을 알고 있으면 죽음에 대해 막연히 품고 있던 불안과 공포가 크게 줄어든다.
나 역시 2018년 1월 초 암 진단을 받았다.
인간이 질병 하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널리 알려진 ‘보왕삼매론’에는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구절이 나온다.
질병을 통해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죽음을 통해 삶의 귀함을 깨닫게 되는 게 우리네
삶의 본질이다.
강의노트 기증 등 죽음 준비 중
많은 암 환자들이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의사가 하는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더라는 말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오히려 수많은 사망 원인 중에서 무엇이 나를 죽음으로 이끌지 예측할 수 없어
막연했었는데 정작 암 진단을 받고서는 상황이 명확해지면서 죽음 준비에 구체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나는 죽음 준비를 하나씩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우선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하나씩 정리해 병원에 있는 의학역사문화원에 기증해오고
있다.
40여년 전 의과대학생일 때 필기했던 노트, 30년 전 전임 강사였을 때의 월급명세서,
강의 노트 등이다.
서울대 병원 9층에 위치한 내 연구실에는 책이나 물건이 거의 없다.
훌훌 털고 떠나갈 수 있도록 계속 정리 작업 중이다.
장기기증서약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유언장은 이미 적성해 놓았다.
유언장은 두 딸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형식으로 작성했다.
우리의 육체는 죽으면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다른 차원으로 건너간다.
따라서 기일에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형식을 벗어나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와인 한 잔 나누면서 같이 살던 때를 추억하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본다.
죽음의 실체가 소멸이 아니고 옮겨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장례준비가 부담스러울
것이 없다.
지구별에 잠시 소풍 왔다가 가는 것이니 주변을 깨끗이 한 후에 떠나야 한다.
다음에 놀러 올 후손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은 먼저 왔다 가는
사람들의 신성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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