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2일 화요일
[(녹)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3
그때에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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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자녀와 하느님 자녀와의 차이
백만장자는 어느 때든 사용할 수 있는 10억 정도의 현금과
현금화 할 수 있는 유동자산을 보유한 사람을 말합니다.
사라 스탠리 폴로(Sarah Stanley Fallaw)는 자수성가한 600명의 백만장자를 연구하여
그들의 공통점 여섯 가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여섯 가지는 ‘절약정신, 자신감, 책임감, 계획성, 집중력, 유행에 무관심’입니다.
남들처럼 쓰다가는 돈을 모을 수 없어 투자를 위한 마중물 자산을 평생 마련하지 못합니다.
미혼 때는 잘 안 모이지만 결혼하면 돈이 모일 수 있는 것이
그만큼 악착같이 절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절약정신 없이 자수성가할 수 없습니다.
복권에 당첨되어도 그 돈을 유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다음엔 자신감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마음입니다. 자신감은 곧 자존감과 직결됩니다.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쓰지 않고 실패를 항상 발전의 발판으로 삼는 자신감이 있어야
어떤 분야에서건 꼭 필요한 인재가 됩니다.
그 다음엔 책임감입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남 탓 하는 사람과는
절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 탓하는 사람은 항상 밖에만 보며 자신의 집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살피지 못합니다.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그리고는 계획성입니다.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방향만 잘 잡고 있다면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의식이 없다면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가며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계획성이 있는 사람은 오늘 무슨 일을 꼭 해내야하는지 압니다.
그래서 꾸준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집중력입니다.
집중력은 주위의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주의력이 산만한 사람은 작은 소리와 작은 평가에도 민감하여
한 일에 오래 집중하지 못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마지막은 유행에 무관심 하라는 것인데,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위의 다섯 개를
다 포함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눈치보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약도 못하고 자신감도 떨어지며 남 탓하고 자신이 세운 계획에 집중하지 못하여
목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출처: ‘백만장자 600명 연구하고 내린 결론... 6가지 공동점이!’, 잡화점, 1boon]
세상에도 법이 있고, 그 세상의 법과 반대되는 법도 있습니다.
위 사람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백만장자들은 대부분 세상의 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결론입니다.
세상의 법에서 자유롭기 위한 새로운 법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자들은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에,
일반 대중들처럼 욜로(‘한 번뿐인 인생’의 약자; “인생은 한 번뿐이니 소비하고 즐기자.”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함)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마카롱 하나로 행복할 수 있다.’는 식이지만
꿈을 좇지 않게 만들기도 함)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장기적인 재산 형성 계획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갑니다.”
꼭 자수성가하여 백만장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세상의 법칙과 무관하게 자신들만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신념은 본받아야합니다.
헬조선이니, 경기가 안 좋아서 등 남의 탓이나 환경 탓 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 여섯 개의 법칙이 주님께서 가르치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가르치심은 세속의 법칙과 반대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법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법칙을 따른다고 믿으면서도 세속에 속해있었던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법을 따른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세상의 생활신조를 법으로 삼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법보다 인간의 전통을 더 중시합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한 이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느님의 법까지도 돈을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말만 하면
부모에게는 줄 필요가 없다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버렸습니다.
타인의 마음에 들려고 하면 그 사람은 그 타인의 법칙에 지배받게 됩니다.
법은 잘 보이려고 지키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잘 보이려면 담배를 끊으라는 아내의 법칙에 순종해야합니다.
그런데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은 하느님보다는
세상의 법이나 전통에 지배받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돈은 많을지라도 전 인격적인 성공은 거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성취감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행복을 세상적인 명예나 쾌락으로 채우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세속에 속하게 됩니다.
어떤 재벌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다 기부하면 자녀들에게 원망을 사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그들도 저처럼 자수성가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것뿐입니다.”
라는 식으로 대답했던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의 법칙에 휘둘리지 않고 자녀도 그렇게 키우려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런 분들이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도 이들은 그 기운에 눌리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오른쪽으로 가도 혼자만 왼쪽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세상의 압력에 기죽지 않고 당당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느님께만 인정받으면 되기에 다른 사람들의 평가엔 무관심한 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법에 지배받고 있는지, 하느님의 법에 지배받고 있는지 아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처럼 자신들이 하는 행위로 이웃을 판단한다면
그 사람은 세상의 법에 지배받고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법에 지배받는 사람들은 타인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법을 온전히 지키고 있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잘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남을 심판하거나 남의 탓이나 환경 탓을 할 만큼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죄책감과는 다른 감정입니다.
죄책감은 하느님의 자녀라 믿지 않기에 용서받을 수 없다고 믿어 생기는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남을 판단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반면 하느님 자녀라는 믿음으로 생기는 죄책감은 하느님께 죄송하기는 하지만
그런 자신을 받아준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사람은 타인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다시는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지 않기 위해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믿음으로 세상 것들에 지배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자녀와 세속의 자녀의 차이입니다.
세상과 하느님,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하느냐가 내가 어디 속해 있는가를 결정합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법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의 법을 따르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붙임참조)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우리 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 중에서...
송봉모 신부 /예수회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영성가들은 우리가 고독과 침묵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
정신없이 살게되면 재앙이 찾아오리라고 경고한다.
성서학자 고항풍은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것이
왜 재앙인지를 한자를 가지고 설명한다.
한자로 '바쁘다'는 마음 心자 옆에 죽을망 亡자를
쓰는 바쁠 忙 이다.
바쁘면 죽는다는것이다
왜 바쁘면 마음이 죽는가?
바쁘면 자연스럽게 자기 근본을 잊고, 인생의
우선적인 것들을 잊으며,
무엇보다도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을 잊고
죽음을 맞게 되는 것이다.
잊는다는 말 또한 한자로 죽을 망에 마음 심, 잊을 忘이다.
두 단어가 발음도 같지만 같은 글자다
차이가 있다면, 마음 심자 옆에 있느냐만 다를 뿐이다
두 단어는 밀접하게 연결된다
바쁘게 살 때 마음이 죽는 것은
바쁘게 살게되면 인생의 우선순위를 잊어버리고
주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은 생명의 원천에서 뿌리가 잘린 삶이기 때문에
결국 메말라 죽게 된다는 것이다
바쁠 忙의 반대는 휴식休息 이다.
'휴休'는 사람 (人)이 나무 (木) 에 기대어 있는
모양이고 '식息'은 자신의 마음(心)을 바라보는(目)것이다
두 단어를 합해보면,
휴식이란
사람이 나무에 기대앉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는 뜻이 된다.
우리 삶의 무화과 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무화과 나무
가정주부인 내 무화과 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가장으로서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내 무화과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봉사하는 자로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자로서
내 무화과 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삶의 중심을 주님께 두기 위해 하루 일과 가운데
구체적으로 언제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인지 결심해 보자.
아우구스티노 성인도 무화과 나무 아래서 하느님을 체험했다
나는 무화과 나무 아래 쓰러져 엎드려
정신없이 눈물에 잠겨 있었나이다
그리고 내 눈에서 홍수처럼 터져 나오는 그 눈물이
주 앞에 상달하였나이다
-[고백록] 8장
돌에 맞아 순교하는 스테파노 성인
성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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