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9일 토요일
[(자)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7ㄴ-3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27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복음이 기쁘면 회개한 것이다
페니는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심한 재정난으로 자살까지 생각한 때가 있었습니다.
급기야 미시간 주 배틀 크릭에 있는 격리 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어느 날 창문 너머로 찬송가가 들려왔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자주 불렀던 “너 근심 걱정 말아라.”는 찬송가였습니다.
그는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사랑하는 하느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재기에 성공하여 미국의 백화점 왕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는 무한한 어두운 공간에서 찬란한 태양빛으로 옮겨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속의 무거운 짐이 옮겨져서 그 방을 나올 때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풀이 죽어서 그곳에 들어갔으나 해방되어 기쁜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지만 그분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율법학자들은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로 등장하고,
예수님과 식사를 함께 하는 세리와 죄인들은 회개한 사람들로 나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하시기 때문에 ‘회개’라는 것을 넘지 않으면
복음을 믿을 수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회개의 의미를 모른 채 복음을 믿으려하기 때문에 넘어지고 맙니다.
회개는 복음을 기쁜 소식으로 보이게 만드는 일생일대의 대전환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복음일까요?
바오로 사도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19-20)
라고 말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 참으로 기쁜 소식으로 보이면 회개 한 것이고
아니면 아직 회개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리사이-율법학자들은 자기를 죽이려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겐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자기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주인이 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나로 사는 것이 참으로 고통임을 알아 나 대신 살아줄 예수님이 필요하면 그때 회개한 것입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마치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자신의 힘으로는 다시 무리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필요로 했습니다.
회개 없이는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될 수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의 쾰른시에 열심한 신자인 프랑케 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부인의 부엌방엔 6년간 세 들어 살고 있는 서른여덟 살의 케테도 있습니다.
그녀의 인생은 온통 비극이었습니다.
전화교환원인 남편은 가출했으며 남겨진 것은 가난에 중독된 창백한 세 자녀들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케테는 신앙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케테는 한 달에 한 번씩 지저분한 여관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가난과 고생으로 부쩍 늙어있었습니다.
참다못한 케테는 남편을 향해 이렇게 소리칩니다.
“당신은 왜 이 절망적 상황에서 기도하지 않나요?
기도만이 유일한 희망인 것을 당신도 알잖아요?”
“주님은 내게서 너무 멀리 있어.”
“아니에요, 지금 우리 곁에 있어요.”
“ ... ”
이 내용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벨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일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하느님이 눈앞에 계셔도 그것이 기쁜 소식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힘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끝끝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죽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에겐 도움을 청할 주님이 항상 함께 계시고
그것이 나에게 모든 고통을 이겨낼 참 기쁜 소식이 됩니까?
그러면 회개한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칠십대가 넘어서도 행복하게 잘 사는 법
칠십대가 넘어서
돈이 부족하여도, 부자가 아니어도, 인생에서 행복을 잃지않고 살아갈려면
반듯이 알아 두어야 할 비법이 몇가지 있다.
"첫번째 "
분노를 참아야 한다
사람 나이 칠십세가 넘으면 버럭 버럭 화를 내는건, 건강에 백해 무익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의학 저널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화를 자주 내고 분쟁을 많이 하는 사람 일수록 수명이 짧아진다고 한다.
또한 나이 칠십이 넘어서 분노를 참지못하고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이 없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곱게 익어간다는 소리를 들어야 친구들이나 지인들로부터 대접을
받는다.
"두번째 "
만족 해야한다
칠십대가 되면 이제는 없는것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더많이 가진다고 행복 지수가 비례적으로 더 올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소유한 만큼만 만족하며 살면 된다.
오히려 소유에 대한 경쟁적인 집착력 때문에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하고 헁복감을 나쁘게 할수도 있기때문이다.
"세번째 "
자연을 사랑해야한다.
나이가 들면 게을러저서 안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집에 들어오면 태레비전만 켜놓고 쑈파에 앉아 꿈쩍도 안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방에 들어앉아 있지말고 산책을 하든 운동을 하든 밖으로 나가라.
그래야 건강에 좋다.
"네번째 "
자신의 몸을 학대하지 마라.
나이들어서 건강을 잃으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사고나 질병이 아니라 스스로 몸을 해치는 나쁜 생활 습관을 줄이지 않고 계속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본다.
대표적인 예가 흡연이나 과음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끊거나 줄여야할 영 순위가 바로 흡연이나 과음이기 때문이다.
"다섯번째 "
좋은 친구를 많이 만들어라 좋은 친구가 많은 사람들은 오래 살아갈뿐 아니라
행복지수도 높게 살아간다.
최근 한 의학 연구에 따르면
좋은 친구들을 많이 둔 사람들이 20%정도 수명이 긴것으로 나타났다.
친구들은 나쁜행동이나 잘못된 결정들을 막아주며 인생의 즐거움과 가치를 느끼게 하는
역활도 담당해주기 때문이다.
푸른잎도 언젠가는 낙엽이되고 예쁜꽃도 언젠가는 떨어진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좋은 친구들과 함께라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즐겁게 갈수 있다.
이별이 점점 많아져가는 고적한 인생 길에 서로 서로 안부라도 전하며 함께 동행하는
친구가 있어야 행복한 삶을 구가하는데 활력이 될것이다.
꽃잎 떨어저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차창 바람 서늘해 '가을인가' 했더니 그리움이더라.
그리움 이녀석 '와락 안았더니'눈물이더라.
세월안고 눈물흘렸더니 아 ! 빛났던 사랑 이더라..
여러분들.
나이들어 가면서 친구는 귀중한 자산이요, 삶에 활력을 주는 원기소랍니다.
좋은 친구 많이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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