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5일 월요일
[(녹)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3-21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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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곳, 생각이 끼어들지 않는 곳
‘테니스의 내면 게임’의 저자 골웨이는 하버드대에서 수십 년간 테니스 코치로 일하면서
신기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학생들에게 “자세가 틀렸어”, “그렇게 하면 안 돼”, “이렇게 해야 돼” 등의 잔소리를
많이 할수록 실수도 더 많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 자신이 내뱉는 잔소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컨대 ‘오늘은 왜 잘 안 되는 거지?’, ‘또 실수했네’, ‘팔의 각도가 틀린 것 같아’,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아야지’ 등 자신을 비판하는 잔소리가 많아져도
역시 실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테니스를 하다가 공이 라켓 한가운데에 맞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지요.
‘공이 잘 안 맞는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그럼 공이 더 안 맞게 됩니다.
뭘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공이 라켓의 어느 부분에 떨어지는지만 그냥 관찰해보세요.
그럼 공이 저절로 라켓의 한가운데에 맞게 됩니다.
공이 라켓에 맞는 순간 낮게 날아오는지, 높게 날아오는지, 평행하게 날아오는지
주의를 기울여 관찰합니다.
뭔가를 바꾸려 하지 말고 오로지 공이 어떻게 날아오는지만 관찰하세요.
공을 잘 쳐야겠다는 생각을 멈춰야 해요.
생각이 시야를 가리는 겁니다.’”
[참조: ‘왓칭 2: 텅 빈 공간이 부리는 요술’, 김상운, 정신세계사]
운동을 하다보면 운동은 상대편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자신과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가 일부러 나의 감정을 자극하는 때도 있는데 그때 화를 내거나
어떻게 보복해야 하는지 생각하다가는 제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나의 능력을 방해하는 장본인이 바로 나 자신임을 알 때 운동실력도 향상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운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지는 모든 능력에 똑같이 적용됩니다.
저와 같은 경우는 강론을 쓰거나 강의를 할 때 이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
강론을 쓰려고 하는데 잡생각이 많이 들면 몇 시간을 앉아있어도 강론이 쓰이지 않습니다.
강의를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튀어나와 모든 것을 망치는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강론을 쓰건, 강의를 하건 반드시 먼저 기도를 합니다.
기도는 뿌옇게 흐려진 흙탕물과 같은 정신을 가라앉혀 머리를 맑게 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주님이 보입니다.
직접적으로 그렇게 보이거나 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강론을 쓰거나 강의를 하면서
내가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해도 강론이 안 써질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도할 때, 온갖 잡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집중을 하려고 해도 수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연출되고 그 장면들을 쫓아버리느라
기도시간을 다 소비해버립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머리가 아주 비어버린 것처럼 컴컴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으로 채울 때가 있습니다.
그리면 강론도 잘 써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외딴 곳’으로 가십니다.
외딴 곳이란 잡생각이 끼어들 수 없는 곳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죽임을 당하고 나서 마음이 혼란하실 텐데도 예수님은 당신을 쫓아
외딴 곳으로 함께 들어온 이들의 배고픔을 걱정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먹이십니다.
제자들은 감히 그들을 먹일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드시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올리십니다.
감사와 찬미만 남는 곳이 ‘외딴 곳’이고 그 외딴 곳에 머물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또한 그런 고요함 가운데로 초대할 수 있고 하늘의 양식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면 내가 먼저 평화스러운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만 외딴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도
외딴 곳에 머물 줄 알아야합니다.
마음은 평화라는 외딴 곳으로 향하고 정신은 잡념이 사라져 감사만 남는 곳으로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외딴 곳에 머물 줄 알아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양식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왓칭 2’에서 김상운 저자의 지인이 항상 위통을 앓아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김상운 저자는 식사할 때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라고만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 역시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이었기에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항상 TV로 뉴스를 보았고
또 동시에 신문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TV와 신문을 번갈아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식사 할 때는 식사만 하게 되었고, 그러자 점점 위통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신을 혼란시키는 매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저도 유튜브를 한참 보다가 기도하러 가면 그런 장면들만 머릿속에서 맴돌다 기도가 끝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합니다. 그러면 신자들에게 줄 것도 없어집니다.
오늘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외딴 곳’에서 이루어졌음을 잊지 말고,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주님과 감사만 있는 외딴 곳에 머물 줄 아는
연습을 자주 해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자신을 돌아보는 것
한 부부가 차에 기름을 넣기위해 주유소에 들어왔습다.
주유소 직원은 기름을 넣으면서 차의 앞 유리를 닦아주었습니다.
기름이 다 들어가자 직원은 부부에게 다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유리가 아직 더럽다며 한 번 더 닦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직원은 얼른 알겠다고 대답하고 다시 앞 유리를 닦으며 혹시 자신이 보지 못한 벌레나
더러운 것이 있는지 자세하게 살펴보며 유리를 한 번 더 닦아냅니다.
직원은 다 되었다고 공손하게 말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남편은
"아직도 유리가 더럽군!
당신은 유리 닦는 법도 몰라요?!
좀 제대로 닦아 주세요!" 라며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의 아내가 손을 내밀어 남편의 안경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휴지로 렌즈를 깨끗하게 닦아서 남편의 얼굴에 다시 씌워 주었습니다.
남편은 깨끗하게 잘 닦여진 앞 유리창을 볼 수 있었고,
비로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얼룩진 안경을 끼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일들도
색안경을 끼고는 자신의 생각만으로 맞추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있음을 감사합니다.
밥과 몇 가지 반찬, 풍성한 식탁은 아니어도
오늘 허기를 달랠 수 있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렵니다.
누군가 내게 경우에 맞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할지라도,
그 사람으로 인하여 나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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