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5/31 복음과 묵상

메옹 2019. 2. 22. 18:17

2019년 5월 31일 금요일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복음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56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행복한 기분으로 이끄는 말 한 마디, “내 탓이오!”

내성적이었고 소심했던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잠깐 다니다 결혼하였습니다.

아이를 낳자마자 남편의 잇따른 사업 실패로 평생 갚아도 못 갚을 엄청난 빚더미에 파묻혀버렸습니다.


아이들은 크고 사채업자들이 밤마다 찾아왔습니다.

앞길이 막막해 몇 번이나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이 미웠고 남편 가족들, 남편 친구들까지 모조리 미웠습니다.

아이들 분유 값이라도 벌어볼 양으로 옆집 아주머니에게 토큰 세 개를 빌려 찾아간 곳이

화장품 회사였습니다.

처음 영업사원 교육 때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내 생각이 머무는 곳에 내 인생이 있습니다.

현재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내 탓입니다.

남을 탓하는 습관부터 버리세요!”

이 말이 어찌나 정곡을 찔렀는지 교육 도중 그녀는 화장실에 달려가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첫 보름 동안 단 한 개의 화장품도 팔지 못했지만

입사 12년 만에 그 화장품 회사의 부회장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당시 연봉이 12억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회사는 그녀를 권고해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도 이겨냈습니다.


화장품 회사를 설립해 연매출 수백억을 올리는 회사의 CEO가 됩니다.

그녀는 “나를 버릴 때 열정은 타오른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습니다.

박형미 파코메리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진부한 성공신화 중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만 실천하기 힘든 것 하나는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내 탓이오!”입니다.

내 탓을 하면 열정이 끓어오르고 남의 탓을 하면 죽음으로 가득 찹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 탓과 남의 탓을 선택할 수 있는 스위치는

내가 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1989)에서는

영생을 준다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던 성작(거룩한 잔)을 찾는 과정이 나옵니다.

여러 잔들이 있었는데 악당은 그 중 가장 사치스러운 잔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그 잔에 물을 마셨더니 더 빨리 늙어 그 자리에서 죽어버립니다.

참 인상 깊었던 장면입니다.


죽거나 영생을 하거나 내가 선택하는 잔에 달려있습니다.

내 기분도 어떤 안경을 착용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은 조금 있으면 제자들을 떠날 것이지만,

또 조금 있다가 다시 오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슬퍼할 테지만 그것이 곧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고 하십니다.

물론 세상은 지금은 기뻐하겠지만 영원한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간단히 말하면 지금 죽으면 나중엔 영원히 행복할 것이지만,

지금 기쁨을 찾으면 영원히 후회할 것이란 뜻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한다는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가 기분 나쁜 것이 남의 탓이라고 여기면 그 사람은 살려고 하는 것이고

남의 탓을 하며 살려고 하면 잠깐은 위로가 되겠지만 오랜 고통이 뒤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나의 탓으로 돌린다면 내가 죽는 잠깐의 고통은 지나가고

다시 살아나는 오랜 기쁨이 남을 것입니다.

한 여인은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캘리포니아 주 모하비 사막 훈련소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섭씨 45도를 오르내리는 지독한 무더위 속에 시도 때도 없이 모래바람이 불어

입과 눈과 음식으로 들어가기 일쑤였습니다.

뱀과 도마뱀이 우글거리지만 주위엔 사람도 없었습니다.

몇 달 만에 우울증에 걸린 그녀는 고향 부모에게 이렇게 하소연하였습니다.

“더 이상 못 견디겠어요. 차리라 감옥에 가는 게 나아요. 정말 지옥이에요.”


그러나 아버지의 답장은 이 단 두 줄만 적혀있었습니다.

“감옥 문창살 사이로 밖을 내다보는 두 죄수가 있다.

하나는 하늘의 별을 보고, 하나는 흙탕길을 본다.”

이 두 줄의 글을 받아들인 그녀는 완전히 변했습니다.

기피하던 인디언들과 친구가 되었고 공예품 만드는 기술과 멍석 짜기도 배웠습니다.

사막의 식물들도 관찰해보니 매혹적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사막의 저녁노을은 신비한 아름다움을 선사했습니다.


그 속에서 ‘빛나는 성벽’이란 소설을 썼는데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사막은 변하지 않았다. 내 생각만 변했다.

생각을 돌리면 비참한 경험이 가장 흥미로운 인생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 감정을 우울함에서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스위치가 내 안에 있습니다.

바깥에서 찾아 내 기분을 변화시키려 하다보면 결국 지쳐 쓰러져버리게 됩니다.

내가 이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행복하겠다고 작정하면

감정도 그렇게 바뀌고 그런 감정이라면 안 될 일도 잘 되게 됩니다.


항상 내 마음이 두렵고 우울해진다면 그 책임은 나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바꾸고자 한다면 얼마든 그 기분을 좋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음을 믿어야합니다.


기분이 좋아져야 남 탓 안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나를 도와주게 될 것이고 그렇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입니다.


미사 때, “내 탓이오!”만이라도 진심으로 할 수 있다면

매일 매일의 삶이 기쁨과 설렘으로 바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어떤 사람이 영험하다는


 스님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스님, 저는 사는게 너무 힘듭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스트레스로 인해
너무나도 불행 합니다.
제발 저에게 행복해지는

 비결을 가르켜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스님은 
"제가 지금 정원을 가꿔야 하거든요. 

그동안에 저가방 좀 가지고 계세요.”

 라고 부탁을 합니다.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무겁지는 않았지요.
 


그는 행복의 비결을

말해주지 않고 가방을 들고

 있으라는 부탁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정원 가꾸는 일이 급해서

일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무겁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30분쯤 지나자 어깨가 쑤쒀 옵니다.

하지만 스님은 도대체

일을 마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지요.
 


참다못한 이 사람이 스님께 물었습니다.

"스님, 이 가방을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합니까? ”
 


이말에 스님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무거우면 내려놓지

뭐하러 지금까지 들고 계십니까? ”

 


바로 이순간 이 사람은 커다란

 깨달음을 얻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바로 자신이 들고있는

 것을 내려 놓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려 놓으면 편안해지고 자유로워 지는데, 
그 무거운 것들을 꼭 움켜잡고 가지고

있으려고 해서 힘들고 어려웠던 거지요.
 


우리는? 
혹여 내가 내려 놓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요?

모두  내려 놓으세요.
그래야 행복이 바로 내옆에

 있음을 발견 할수 있습니다. 

 


내려놓고, 
더 내려놓고 사는
여유롭고 행복한

당신이었음 좋겠습니다.

 

놓는 여유

 

*** 옮겨 온 글 ***

 


※ 사진 제공 : 향운 서윤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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