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2일 수요일
[(백) 부활 제5주간 수요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오늘의 묵상
알지 못하니까 못 하는 것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독일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자 유럽은 연합군을 형성하여 독일 히틀러의 나치군과 대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국군 29만 명이 불란서를 도와주기 위해 불란서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전세를 뒤집을 수 없어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철수하는 영국군이 도버해협을 건너려는데 이를 알아차린 히틀러는 나치군에게
철수하는 영국군을 전멸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위급해진 영국군은 조지 5세에게 보고를 했고, 영국 왕은 영국 국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위기에 처한 영국 군대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 모두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하느님만이 우리를 구해주실 수 있습니다.”
왕의 긴급 기도 요청에 온 국민은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영국군을 공격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독일군 지역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폭풍이 불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독일군의 전투기가 단 한 대도 이륙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단 한 대의 탱크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영국군이 철수하는 도버해협의 하늘은 화창하고 바다는 잔잔하여
29만 명의 영국군이 아무런 사고 없이 도버 해협을 건너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기도의 힘을 안다면 기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어제 어떤 신자가
“신부님, 요즘에 기도가 잘 안 돼요.”라고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고해성사를 듣다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죄를 고백할 때,
“요즘 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신자분께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기도가 잘 되는 게 뭐예요?”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는 말은 결국 기도하기 싫다는 말입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면서 할 수 없어서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흔히 기도에 대해 착각하는 생각이 기도시간은 기쁘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보통 힘든 시간이 아닙니다.
성경은 기도시간을 마치 야곱이 하느님과 밤새 씨름하는 시간으로 비유했습니다.
씨름을 1분만해도 힘든데 밤새 했다면 얼마나 힘들까요?
혹은 열 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을 채우는 일은 보통 귀찮은 게 아닙니다.
기름을 채우려면 잠을 깨고 기름장수에게 다녀오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혹은 기도시간을 꾸준히 누군가에게 괴롭히듯 청하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이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운동을 하기 싫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는 운동을 안 해도 건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운동은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요?
유익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몸의 저항을 이겨내야 근육이 생기고 노폐물이 사라져 건강해집니다.
운동을 하고, 안 하고는 운동의 좋은 점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인 것입니다.
요즘 운동이 잘 안 된다고 말하면
그것은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가 힘들고 잘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도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시간을 ‘기도’라 합니다.
나무에 붙어있지 않은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가 힘든 일임에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며,
잠을 자지 않아도 그런 것을 아는 것처럼,
기도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아는 사람만이 예수님께 붙어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세기적인 과학자 뉴턴이 말년에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그 많던 지식을 망각해버렸습니다.
답답해하던 제자들이 안타깝게 묻습니다.
“지금 와서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뉴턴은 여유 있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내 구세주라는 사실이다.
이것 외에 더 무슨 지식이 필요 하느냐?”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이고 내가 가지라는 사실만 안다면
기도를 꾸준히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 기도해야하는지 모르니까 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방법은
기도를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유익한 일도 할 수 없고
지옥에 살게 됨을 삶으로 체험하는 길뿐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알지 못하니까 못 하는 것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독일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자 유럽은 연합군을 형성하여 독일 히틀러의 나치군과 대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국군 29만 명이 불란서를 도와주기 위해 불란서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전세를 뒤집을 수 없어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철수하는 영국군이 도버해협을 건너려는데 이를 알아차린 히틀러는 나치군에게
철수하는 영국군을 전멸시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위급해진 영국군은 조지 5세에게 보고를 했고, 영국 왕은 영국 국민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위기에 처한 영국 군대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 모두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하느님만이 우리를 구해주실 수 있습니다.”
왕의 긴급 기도 요청에 온 국민은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영국군을 공격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독일군 지역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폭풍이 불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독일군의 전투기가 단 한 대도 이륙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단 한 대의 탱크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영국군이 철수하는 도버해협의 하늘은 화창하고 바다는 잔잔하여
29만 명의 영국군이 아무런 사고 없이 도버 해협을 건너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기도의 힘을 안다면 기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어제 어떤 신자가
“신부님, 요즘에 기도가 잘 안 돼요.”라고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고해성사를 듣다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죄를 고백할 때,
“요즘 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신자분께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기도가 잘 되는 게 뭐예요?”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는 말은 결국 기도하기 싫다는 말입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면서 할 수 없어서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흔히 기도에 대해 착각하는 생각이 기도시간은 기쁘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보통 힘든 시간이 아닙니다.
성경은 기도시간을 마치 야곱이 하느님과 밤새 씨름하는 시간으로 비유했습니다.
씨름을 1분만해도 힘든데 밤새 했다면 얼마나 힘들까요?
혹은 열 처녀의 비유에서 기름을 채우는 일은 보통 귀찮은 게 아닙니다.
기름을 채우려면 잠을 깨고 기름장수에게 다녀오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혹은 기도시간을 꾸준히 누군가에게 괴롭히듯 청하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이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운동을 하기 싫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는 운동을 안 해도 건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운동은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요?
유익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몸의 저항을 이겨내야 근육이 생기고 노폐물이 사라져 건강해집니다.
운동을 하고, 안 하고는 운동의 좋은 점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인 것입니다.
요즘 운동이 잘 안 된다고 말하면
그것은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가 힘들고 잘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도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시간을 ‘기도’라 합니다.
나무에 붙어있지 않은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가 힘든 일임에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으며,
잠을 자지 않아도 그런 것을 아는 것처럼,
기도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아는 사람만이 예수님께 붙어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세기적인 과학자 뉴턴이 말년에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그 많던 지식을 망각해버렸습니다.
답답해하던 제자들이 안타깝게 묻습니다.
“지금 와서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뉴턴은 여유 있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내 구세주라는 사실이다.
이것 외에 더 무슨 지식이 필요 하느냐?”
예수님께서 포도나무이고 내가 가지라는 사실만 안다면
기도를 꾸준히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 기도해야하는지 모르니까 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방법은
기도를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유익한 일도 할 수 없고
지옥에 살게 됨을 삶으로 체험하는 길뿐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감사, 또 감사!!
세계적인 한센병 권위자인 "폴 브랜드" 박사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의 한센병환자
재활원의 원장입니다."
인도에서 20년, 미국에서 30년, 50년을 한센병 치료를 위해 헌신한 분입니다.
그가 출장차 미국을 떠나 영국에 도착하여 여러 지방에서 업무를 본 뒤에 기차를 타고
여러 시간을 여행해서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그 날 밤, 그가 호텔에서 옷을 갈아 입고 양말 한 짝을 벗는 중에 갑자기발 뒤꿈치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센병의 권위자인 그 이기에 이 일은 그냥 넘길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도에서 수 많은 한센병 환자들을 시술하고, 피 고름을 만지면서 치료해 본 경험이 많은
그는 순간적으로 의심이 스쳐갔습니다.
기계적으로 일어나서 날카로운 핀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복숭아 뼈 아래 부분을 찔러 보았습니다.
아무런 감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핀을 한 번 더 깊이 찔러 봤습니다.
찔린 부분에서 피가 나오는데도 감각이 없었습니다.
한센병에 감염된 것이 틀림 없었습니다.
그 날 밤 '브랜드' 박사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나도 한센병 환자로구나.
한센병 환자로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 가야 할 것인가?"
두려운 마음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부터 격리되어서 살아 가야 할 버림받고 외로운 자신의
인생의 말로를 그려 보았습니다.
가족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고통의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습니다.
밤은 지나고 아침은 오지만, '브랜드' 박사의 마음 속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다시 한 번 더 자기의 발을 찔러 보았습니다.
그 순간 너무나 아파서 “악!”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이런 기도가 나왔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파서 감사합니다.
아파도 감사합니다.
아프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픔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고 보니 어제 장시간 기차 여행을 하면서 좁은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다 보니,
신경의 한 부분이 눌려서 호텔의 방에 올 때까지 그 마비가 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브랜드' 박사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몸
아픔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렇게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실수로 손가락을 베일 때에도 감사,
찔려도 감사, 수술하다 손을 베어도 감사, 넘어져도 감사, 발을 잘 못 디뎌서 발목이
삐긋하여 정말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와도 감사,
모든 고통에 감사하고 신경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지금 많이 아프신가요?...
여기 저기 아프고 쑤시고 여러 고통으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으셨나요?
그 고통을 느낄 수 있음에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자체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요,
어떤 면에서는 건강하다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해서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고통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아픔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내면 그 속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의 선물이
담겨 있으므로 "아픔은 축복"입니다.
오늘 아침 눈을 떠서 공기를 마시고, 누군가의 수고로 받은 고마움, 아내나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스럽게 차린 아침식사, 남편이 피땀 흘려 회사에서 벌어오는
월급 등등 작은 일 하나 하나에 감사합시다.
죄 많은 저를 아무 대가나 조건없이 용서해 주신 하느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무한 감사 드리며 영광과 찬양 받으소서!
오늘도 감사와 감격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할 일이 많은데도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면서 살았던 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지금 가지고 있는 여러 고통과 상처, 아픔조차도 감사합니다.
세상의 잣대로 헛되고 무의미한 일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잃지 않게 하시고,
남과 비교하거나 불평, 불만으로 유혹에 빠지지 않게하소서!
말씀 안에서 감사와 기도와 찬양이 살아있는 가정이 되게 하시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서로 아끼고 배려할 줄 아는 제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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