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4/26 복음과묵상

메옹 2019. 1. 24. 19:58

2019년 4월 26일 금요일

[(백)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오늘의 묵상


​‘지금-여기’에 계시는 주님

한 부인이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집에 돌아왔는데 돌연 막연한 공포감이 엄습했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괜히 불안했습니다.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거나 창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았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 거지?’

퇴근한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아파트에서 무서울 게 뭐가 있어? 창문에 쇠창살까지 붙어 있겠다,

아파트 입구에는 경비 아저씨까지 있어. 푹 쉬면 나을 거야.”

그러나 불안증은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TV나 신문기사에서 안 좋은 것을 읽고는 그것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만 같아 떨렸습니다.

상상에 상상을 더하고 불안에 불안을 더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콜택시를 불러 아기와 함께 30분 거리의 친정으로 달려갔습니다.

집에 있던 어머니가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너 왜 갓난아기를 안고 돌아다녀?”

그녀는 모든 게 무섭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이렇게 나돌아 다니면 못 써. 어서 돌아가.”

철석같이 믿었던 어머니마저 자신의 속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자 더 절망에 빠졌습니다.

‘나를 이해해주고 보호해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강가에 내려 아기를 안고 강물로 뛰어들었습니다.

다행히 지나가던 한 시민의 도움으로 그녀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아기는 숨지고 말았습니다.

[참조: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왜 한 가지 생각에 파묻혀버릴까?’, 김상운, 21세기 북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생각에 잠기는 것’입니다.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생각하는 일이 일어나고야맙니다.

생각을 많이 하면 우울해지고 걱정이 많아지며 불안해집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것이 곧 믿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는 대로 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창조의 힘이 있는데 생각을 잘못하면 잘못된 창조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생각의 95%는 부정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삶이 부정적이 되는 것은 생각을 많이 해서입니다.

생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지금-여기’여 머무르면 됩니다.

생각이 할 수 없는 것은 나를 ‘지금, 이 자리’에 머무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생각은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의 다른 장소로 나를 옮겨놓습니다.

그래서 현재를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 나타나실까요?

바로 ‘지금, 여기서’ 나타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하와는 뱀과 이야기하다 하느님의 현존을 잊었습니다.

아담은 하와와 대화하다가 그랬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있는 나(I AM)”입니다.

항상 현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입니다.

현재, 이 자리에 머물면 생각이 끊기고 주님을 만납니다.

생각을 끊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감각을 일깨우면 됩니다.


현재는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라 인지하는 시간입니다.

호흡에 집중하면 좋습니다.

다른 감각들은 그것들이 생각으로 이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호흡은 평소에도 항상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호흡에 집중하면

다른 생각으로 건너가지 않습니다.

그냥 매 순간을 호흡에만 집중하는 연습을 해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같은 주파수에 서게 됩니다.

주파수가 맞아야 그 주파수로 보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마태 28,10 참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머무시는 갈릴래아가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갈릴래아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아침 무렵 한 분이 호숫가에서 그물을 오른쪽으로 던지라고 합니다.

베드로와 동료들은 순종하며 그물을 던집니다.

그랬더니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힙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주파수에 자신들을 맞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내가 평생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은 베테랑 어부인데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자기가 누구라고 이래라, 저래라 해?”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순종합니다.

밤새 고기를 잡은 것이 지금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데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합니다.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 되어 창피를 당하게 될 미래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나 미래, 그리고 자신들이 있는 장소가

자신들의 생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단순해지고 그저 어린이처럼 겸손할 뿐입니다.

그리고 현재에 머물기 때문에 그 주파수를 통해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이 153마리나 되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낚을 수 있게 만듭니다.


부활하신 분은 생각이 멈추는 바로 이 장소, 이 시간 내 앞에 계십니다.

주님을 만나는 주파수는 지금-여기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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