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2020년 3월 15일 주일

메옹 2020. 1. 8. 04:44

2020년 3월 15일 주일

[(자) 사순 제3주일]


복음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5-42

그때에

5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다.

6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7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10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12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16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한 것은 맞는 말이다.
18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

19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20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21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22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5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2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27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또는 “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하고 묻지 않았다.

28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29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30 그리하여 그들이 고을에서 나와 예수님께 모여 왔다.

31 그러는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 “스승님,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32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하시자,

33 제자들은 서로 “누가 스승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리기라도 하였다는 말인가?”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35 너희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수확 때가 온다.’ 하고 말하지 않느냐?
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
이미

36 수확하는 이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씨 뿌리는 이도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

37 과연 ‘씨 뿌리는 이가 다르고 수확하는 이가 다르다.’는 말이 옳다.

38 나는 너희가 애쓰지 않은 것을 수확하라고 너희를 보냈다.
사실 수고는 다른 이들이 하였는데, 너희가 그 수고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39 그 고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여자가 “저분은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혔습니다.” 하고 증언하는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40 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르셨다.

41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오늘의 묵상


목마르지 않으려면 우물이 되어라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찾을 수 있습니까?”

“갈망함으로써 찾을 수 있느니라.”


“그렇지만 저는 온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갈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분을 찾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자 스승은 제자를 데리고 강에 가서 제자의 머리를 물속에 밀어 넣고는 몸부림칠 때까지 붙들고 있었습니다.


“자네 머리를 물속에 넣었을 때 왜 그렇게 몸부림을 쳤나?”

“숨이 막혀서 그랬습니다.”

“바로 그렇게, 갈망하라.”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갈망을 세상 것으로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망의 양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세상 것을 갈망하는 만큼 하느님께는 관심이 없어집니다.

나의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세상 행복에 대한 갈망엔 무감각해집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의 물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한낮에 물을 길으러 나오는 이상한 사람입니다.


한낮은 사람이 갈증을 가장 많이 느끼는 가장 뜨거울 때입니다.

이는 그 여인이 무언가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갈증을 느끼며 살아갈까요? 바로 ‘행복’입니다.

물은 고생고생해서 길어가도 내일이면 또 목이 마르는 그런 세상의 행복들을 상징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세상 것들로 행복을 좇으면서도 항상 목이 말라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돈과 명예와 쾌락 등의 모든 것을 가지고도 허기가 지고 목이 말라 참을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세상 목마름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목을 채울 물을 청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먼저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돈이 궁핍하여 돈이 좀 솟아 나왔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돈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이는 에사우가 야곱에게 불콩죽을 좀 달라고 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야곱처럼 에사우가 자신에게 장자권까지 넘겨줄 수 있는 인물임을 안다면

죽 한 그릇 주는 것은 일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에게 물을 청하는 분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성당 가면 밥을 줘, 돈을 줘? 어? 다 돈 빼먹으려는 수작이야!”라고 말하며

성당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에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 샌디에고 외곽 지역에 있는 어느 호텔에서 한국전쟁에 왔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한 청년이 자기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 제가 돌아왔어요.”

“빨리 집에 오지 왜 전화는 하는 거냐?”


“아뇨, 제가 호텔에 있는데요, 이제 갈 거예요.

어머니. 그런데 만나기 전에 할 말이 있습니다.

제게 아주 절친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부모가 다 없습니다.

일선에서 저와 같이 전쟁을 하다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두 눈을 잃었어요. 두 손도 없습니다. 이걸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데리고 가서 나와 함께 우선 한 일 년이라도 같이 살려고 합니다.

어머니 어떻겠습니까?”

어머니는 “뭐, 괜찮지.” 하고 소극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나 처음에는 괜찮을지 몰라도 며칠 있으면 지겨울 거다.

네가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하게 될 거야. 피곤하게 되고 괴로워질 거야.

얘야, 그러지 말고 어서 집으로 들어오렴.”


아들은 “잘 알았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다음 날, 해군 본부로부터 그 어머니한테 전보 한 장이 날아들었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호텔 12층에서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달려가 보니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눈멀고 두 팔이 없는 것은

바로 자기의 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선물이 무엇인지 안다면

우리가 드리는 작은 희생쯤은 장자권에 비해 불콩죽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물을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하느님 나라의 상속권까지 잃게 됩니다.

예수님은 분명 생명의 물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이 물은 이 세상의 행복과는 다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물을 얻기 위해 조금이라도 이 세상 행복을 봉헌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행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사마리아 여인은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왔습니다.

남편이 여섯이나 되니 얼마나 세상 행복을 갈망했던 여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여인이 마치 정오의 뙤약볕처럼 목이 말랐던 이유는 세상 물을 통해 행복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좀 특별합니다.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이 곧 샘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그 사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물로 물을 뜨러 오는 사람이 되지 말고 그 자신이 우물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실제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이제 생명의 물을 내어주는 샘이 됩니다.

그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그 기쁨이 영원히 그 사람 안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을 통과하는 것이 자신을 채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어령 박사는 자신을 “평생 우물을 파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책을 보면 자신은 무언가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목마름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명예를 달라고 글을 썼더니 명예가 생겼고 돈을 벌려고 애쓰니까 돈이 생겼다.

또 병 때문에 병원에 다니니까 병이 나았다.


어느 날 너무나 외로워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글을 봐도 채워지지 않는

‘혼자’라는 절대고독에 괴로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갈증이 바로 진리에 대한 갈증이요,

창조주에 대한 목마름임을 깨닫게 되었다.”

참 야곱의 우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 옆구리가 뚫리게 하심으로써 생명의 물인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이웃에게 성령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곧 야곱의 우물입니다.

성령은 받아야 줄 수 있습니다.

마치 빵과 포도주를 미리 봉헌해야 성체, 성혈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성령을 받으려면 이 세상에서 내가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어느 정도는 봉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성당에 가서 한 시간도 앉아 있지 않으면서 우울해서 못 살겠다고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먼저 세상 행복을 추구하던 두레박을 내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을 주시는 분 옆에 앉아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세상 행복을 내어주는 우물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 우물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뙤약볕에 고생하며 또 다시 목마를 물을 푸고 있습니까?


세상 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물을 추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의 증거는 내가 주님께 어떤 세상 행복을 봉헌하느냐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물 한 모금 드립시다.

그러면 나를 영원히 샘솟는 야곱의 우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한희준 헬스조선 기자
© 제공: Health Chosun


밤에 '꿀잠' 자고 싶다면 저녁 식사 메뉴를 신중히 고르자. 먹는 음식에 따라 수면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수면을 방해한다고 알려진 식품은 다음과 같다.


◇ 십자화 채소브로콜리, 콜리플라워와 같은 십자화 채소에는 비타민, 미네랄,

파이토케미컬 등이 풍부해 건강에 좋다.

하지만 식이섬유도 많이 들어서, 잠을 방해할 수 있다.

식이섬유는 소화가 느리게 된다. 저녁에 먹은 십자화 채소를 소화하는 동안 소화기관이

계속 활동하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 토마토는 비타민C, 철분, 라이코펜등이 풍부한 음식이다.

그러나 토마토는 산성이 강해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산성이 강한 음식을 자기 전에 먹으면 속쓰림과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음식들은 적어도 자기 세 시간 전에 먹는 것이 좋다.


◇ 붉은 육류붉은 육류는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이다.

그런데 단백질은 분자구조가 복잡해 소화가 쉽게 되지 않는다.

따라서 단백질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산성이 강한 위산이 필요하다.

이 위산이 속쓰림과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고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 위산이 역류해 위식도 역류염을 일으킬 수도 있다.


◇ 매운 음식고추와 같은 매운 음식은 음식의 소화를 돕고 식욕부진을 해소해준다.

또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 몸에 열을 내고 에너지 소모량을 늘리는데, 이 열을 내는

성질로 인해 수면이 방해받을 수 있다.

체온이 높아지면서 쉽게 잠들 수 없게 된다.

또한 매운 성질은 속쓰림을 유발해 수면을 방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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