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5일 토요일
[(녹)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4
그때에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업적지향적 삶과 의미지향적 삶
어떤 아이에게 손가락을 빠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손가락을 빨지 말라고 타이르거나 혼내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지쳐버린 아버지가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매일 15분씩 열심히 손가락을 빨아라. 그럼 아빠가 100원 줄게.”
얼마 후 아이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아빠, 나 이제 손가락 빨기 싫어요!”
또 이런 실험도 있습니다.
심리학자 그린과 스턴버그는 초등학교 4, 5학년 어린이들에게 새로 개발된
재밌는 수학게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재미를 붙여 틈만 나면 게임을 즐겼습니다.
10일 뒤쯤 심리학자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재밌지? 지금부터 오래 하는 사람에겐 트로피와 상을 주기로 하마.”
처음엔 아이들이 앞 다투어 더 오래 게임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신나서 하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경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트로피와 상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아이들은 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참조: ‘리듬: 내 안의 부정적 생각 싹 날려버리기’, 김상운, 정신세계사]
어떤 것에 대한 노력을 멈추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힘이 드는 것에 비해 결과가 미약할 때 노력을 멈추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것에 대해 경쟁을 지나치게 많이 하게 되면 에너지가 소진되어
포기하거나 자신을 힘들게 만든 사람에게 보복을 하게 됩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과 힘의 경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경쟁에서 이겨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사람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경쟁상대로 생각하여 모든 것을 잃게 만듭니다.
이런 일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이 벌어집니다.
봉사자들이 본당 사제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경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본당 신부님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인정해주는 것 같으면
그 다른 사람도 미워하고 본당 신부도 미워합니다.
너무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분들은 대부분 이런 함정에 빠지고 지옥을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경쟁에서 누구보다 앞선다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결국 지옥체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일흔두 제자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각자 자신이 한 일들을 보고합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사실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성령의 힘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선교에서까지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라고 하시며 그들이 잘 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제자이기 때문에 그리 되는 것임을 일깨워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결론지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녀서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다는 것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선교를 통하여 옵니다.
선교만큼 큰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직행버스입니다.
그냥 타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을 통해 자기를 증명하여 기쁘게 하려면 더 많은 선교를 하는 사람,
더 멋진 성당을 짓는 사제, 더 존경받는 신앙인이 되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그 일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업적주의자로 전락해버립니다.
결국 이도저도 되는 일 없이 지옥의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 하는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그 일 자체가 가치가 있어서 행복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시선의 차이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뉩니다.
업적, 혹은 목적지향적 인간과 의미지향적 인간입니다.
그 일을 통해 목적에 다다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일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두고 성패는 상관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어떤 자매님이 참으로 마음이 찡하다고 하며 이런 글을 보내왔습니다.
함께 묵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여름 우리의 눈을 기쁘게 하는 형형색색의 꽃들은 가지가 성장을 멈췄다는 증거다.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기만 하면 풍성한 꽃도, 꽃이 진 자리에 달리는 튼실한 열매도 볼 수 없다.
내처 자라기만 하면 하늘에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뿌리로부터 점점 멀어져 결국 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잘 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성장했고, 욕심을 내면 조금 더 클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나무들은 자라기를 멈춘다.
마치 동맹을 맺듯 ‘나도 그만 자랄 테니 너도 그만 자라렴.’ 하고
함께 성장을 멈추고는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결국 나무에게 있어 멈춤은 자신을 위한 약속이면서 동시에 주변 나무들과 맺는
공존의 계약인 셈이다.”
[출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메이븐]
하늘로 오르려고만 하면 땅이 주는 에너지에서 멀어집니다.
대신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려고 하면 저절로 높이 올라갑니다.
목적지향적 삶은 그래서 힘이 빠지고 고통스럽습니다.
반면 의미지향적 삶은 항상 현재 하는 일 때문에 결과에 상관없이 기쁘고 평화롭습니다.
업적은 사라지지만 의미는 영원히 남습니다.
의미지향적 삶을 사는 사람의 결과도 그래서 의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업적지향적 삶과 의미지향적 삶 어떤 아이에게 손가락을 빠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손가락을 빨지 말라고 타이르거나 혼내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지쳐버린 아버지가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매일 15분씩 열심히 손가락을 빨아라. 그럼 아빠가 100원 줄게.” 얼마 후 아이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아빠, 나 이제 손가락 빨기 싫어요!” 또 이런 실험도 있습니다. 심리학자 그린과 스턴버그는 초등학교 4, 5학년 어린이들에게 새로 개발된 재밌는 수학게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재미를 붙여 틈만 나면 게임을 즐겼습니다. 10일 뒤쯤 심리학자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재밌지? 지금부터 오래 하는 사람에겐 트로피와 상을 주기로 하마.” 처음엔 아이들이 앞 다투어 더 오래 게임을 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신나서 하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경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트로피와 상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아이들은 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참조: ‘리듬: 내 안의 부정적 생각 싹 날려버리기’, 김상운, 정신세계사] 어떤 것에 대한 노력을 멈추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힘이 드는 것에 비해 결과가 미약할 때 노력을 멈추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것에 대해 경쟁을 지나치게 많이 하게 되면 에너지가 소진되어 포기하거나 자신을 힘들게 만든 사람에게 보복을 하게 됩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과 힘의 경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경쟁에서 이겨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사람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경쟁상대로 생각하여 모든 것을 잃게 만듭니다. 이런 일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이 벌어집니다. 봉사자들이 본당 사제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경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본당 신부님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인정해주는 것 같으면 그 다른 사람도 미워하고 본당 신부도 미워합니다. 너무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분들은 대부분 이런 함정에 빠지고 지옥을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경쟁에서 누구보다 앞선다고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결국 지옥체험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일흔두 제자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각자 자신이 한 일들을 보고합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사실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성령의 힘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선교에서까지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라고 하시며 그들이 잘 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제자이기 때문에 그리 되는 것임을 일깨워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결론지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녀서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다는 것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선교를 통하여 옵니다. 선교만큼 큰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 직행버스입니다. 그냥 타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을 통해 자기를 증명하여 기쁘게 하려면 더 많은 선교를 하는 사람, 더 멋진 성당을 짓는 사제, 더 존경받는 신앙인이 되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그 일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업적주의자로 전락해버립니다. 결국 이도저도 되는 일 없이 지옥의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 하는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그 일 자체가 가치가 있어서 행복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시선의 차이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뉩니다. 업적, 혹은 목적지향적 인간과 의미지향적 인간입니다. 그 일을 통해 목적에 다다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일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두고 성패는 상관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어떤 자매님이 참으로 마음이 찡하다고 하며 이런 글을 보내왔습니다. 함께 묵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여름 우리의 눈을 기쁘게 하는 형형색색의 꽃들은 가지가 성장을 멈췄다는 증거다.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기만 하면 풍성한 꽃도, 꽃이 진 자리에 달리는 튼실한 열매도 볼 수 없다. 내처 자라기만 하면 하늘에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뿌리로부터 점점 멀어져 결국 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잘 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성장했고, 욕심을 내면 조금 더 클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나무들은 자라기를 멈춘다. 마치 동맹을 맺듯 ‘나도 그만 자랄 테니 너도 그만 자라렴.’ 하고 함께 성장을 멈추고는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결국 나무에게 있어 멈춤은 자신을 위한 약속이면서 동시에 주변 나무들과 맺는 공존의 계약인 셈이다.” [출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메이븐] 하늘로 오르려고만 하면 땅이 주는 에너지에서 멀어집니다. 대신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려고 하면 저절로 높이 올라갑니다. 목적지향적 삶은 그래서 힘이 빠지고 고통스럽습니다. 반면 의미지향적 삶은 항상 현재 하는 일 때문에 결과에 상관없이 기쁘고 평화롭습니다. 업적은 사라지지만 의미는 영원히 남습니다. 의미지향적 삶을 사는 사람의 결과도 그래서 의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뱃살 빼려면 근력운동 보다 유산소운동을… 음식은?
출렁출렁~ 뱃살 빼는 법
봄날씨가 이어지면서 다가오는 여름을 맞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 3명 중 1명은 비만이다.
날씨가 풀리면 옷차림이 가벼워지면서 비만인 사람들이 뱃살이 드러날까 걱정하기 때문에 뱃살 관리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다.
하지만 윗몸일으키기, 유산소 운동 등 꾸준한 운동과 식사량을 줄이는 식단 조절로도 뱃살은 쉽게 빠지지 않는다.
찌기는 쉽고 빼기는 어려운 뱃살,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 올바른 식습관이 뱃살 관리의 해법
올바르지 않은 식습관으로 인해 운동을 아무리 해도 뱃살이 빠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적절한 식단 관리로 식사를 하더라도 간식으로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자주 먹는 습관이 있다면
뱃살 관리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흰 빵이나 과자, 청량음료, 설탕이 많이 든 음식 등은 뱃살 관리를 방해하는 요인이다.
이같은 음식은 지방조직에서 나오는 염증 물질을 늘려 대장암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야식을 즐기는 식습관도 고쳐야 한다.
자기 전에 많이 먹으면 에너지로 쓰이지 못하고 바로 지방으로 축적되기 때문이다.
뱃살을 빼기 위해서는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단백질이 부족하면 근육량이 줄어들어 기초대사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뱃살을 줄이려면 닭 가슴살이나 살코기, 계란 흰자, 생선, 콩, 두부 등의 고단백 식품을 하루 2끼 이상 섭취하는 게 좋다.
아무리 바빠도 하루 세끼는 꼭 챙겨먹도록 하고, 급격하게 식사량을 줄이지 않도록 한다.
충분한 식이섬유 섭취도 내장지방 제거에 중요하다.
식이섬유는 체내 소화효소로 분해되지 않고 몸 속 유해물질과 콜레스테롤을 흡착시켜 몸 밖으로 배출시키기 때문이다.
감자류나 해조류, 버섯류 등에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 당장 보이는 뱃살보다 내장지방 제거가 먼저
뱃살을 빼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내장지방을 제거하는 것이다.
내장지방은 신체의 장기 내부나 장기 사이의 공간에 축적된 지방으로, 윗배가 볼록하면
내장지방이 많다고 판단할 수 있다.
내장지방이 있을 때 겉으로는 살이 찐 것처럼 보이지 않아 관리하기 어렵다.
따라서 내장비만인지 체크하기 위해 줄자로 배꼽 주위 살이 가장 많은 부분의 허리둘레를 잰다.
남성은 90cm 이상, 여성은 85cm 이상이면 내장지방이 축적된 것으로 판단한다.
내장지방의 정확한 축적량을 알기 위해서는 CT 촬영 등 정밀검사가 필요하다.
내장지방을 제거할 때는 근력운동보다 유산소운동이 효과적이다.
허리나 배의 지방은 다른 근육보다 지방 분해가 잘 되지 않는데, 유산소운동은 효율적으로
산소를 받아들여 중성지방을 연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하면 근육이나 간장에 축적된 글리코겐과 중성지방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면서 연소시킬 수 있다.
따라서 등에 땀이 흐럴 정도의 강도로 유산소운동을 하루 20~30분씩 주 3회 해야 좋다.
심장이나 폐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는 정도로 유산소운동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
◇ 꾸준한 유산소운동과 적절한 수면 시간도 중요해
나이가 들수록 뱃살 관리는 더 어려워진다.
젊을 때는 살이 온몸에 골고루 찌지만, 나이가 들면 지방이 몸 전체로 퍼지지 않고 소장 주변 복부에만 쌓여 복부비만이 쉽게 나타난다.
이는 지방을 몸 곳곳으로 퍼지게 하는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노화에 따라 점차 감소하기 때문이다.
성장호르몬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데, 40대가 되면 성장호르몬의 분비량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운동은 노화를 늦추고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숨이 찰 정도의 강도로 유산소운동을 매일 20분 이상 하면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데 도움이 된다.
운동을 시작한 지 20분이 지나면 성장호르몬의 수치가 일시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적절한 수면도 중요하다.
규칙적인 수면과 편안한 숙면은 노화를 늦춰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성장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숙면을 취하면 에너지를 보충하고 혈액순환도 활발해져, 다음 날 새로운 영양분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다.
또 수면시간이 짧으면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 호르몬의 분비가 줄고, 반대로 식욕을 촉진하는 '그렐린'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기 때문에 적절한 수면시간을 유지하는 것은 뱃살 관리에 필수적이다.
'오늘의 복음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7 복음과 묵상 (0) | 2019.07.14 |
---|---|
10/6 복음과 묵상 (0) | 2019.07.14 |
10/4 복음과 묵상 (0) | 2019.07.14 |
10/3 복음과 묵상 (0) | 2019.07.14 |
10/2 복음과 묵상 (0) | 2019.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