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8일 주일
[(녹) 연중 제17주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3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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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기도하십시오.
2011년 4월, MBC '서프라이즈'에서는 1920년 인도, 2008년 러시아, 2009년 시베리아 등
1920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발견된 약 80여 명의 야생 아이들에 대한
비화에 대해 전했습니다.
이 중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1920년 10월, 인도 동부 어느 마을, 저녁이면 가끔씩 근처 개간지에서
동물의 환영 같은 것이 출몰, 그 기괴한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이곤 하였습니다.
목사 죠세프 싱은 이 환영이 무엇인지 꼭 알아내야겠다고 결심하고
나무 위에 올라가 잠복하였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헛것을 보았다고 말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이윽고 몇 마리의 늑대들이 출현하고 뒤이어 두 환영이 나타났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환영은 두 여자 아이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늑대들과 함께 몇 년 간 굴 속에서 생활하였으며,
늑대들은 아이들을 양녀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키웠던 것입니다.
이 때 한 아이는 2살 정도였으며, 다른 아이는 7살가량 되었습니다.
결국 두 아이는 잡혀서 고아원에 보내졌고,
이윽고 네 발로 달리거나 늑대처럼 울부짖을 줄 밖에 모르는 이 아이들을
인간으로 되돌리려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아이에게는 아말라,
큰 아이는 카말라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슬프게도 아말라는 일어서거나 말하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구출된 지 1년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아말라는 자신이 완전한 늑대라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종족을 떠난 사람들 속에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정글북의 모글리를 본따, 모글리 현상이라고 합니다.
모글리 현상이란 인간도 어떻게 키워지느냐에 따라 그 키워질 때의 습성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인간에 의해 키워져야 인간답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다행인지 언니 카말라는 16살까지 10년을 더 살면서 바로 서서 걷기도 하고,
약 30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익힌 음식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물에 의해 키워진 대부분의 아이들은 10년 이상을 살지 못하고 죽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임에도 10년에 30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자신을 여전히 인간으로 인정하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에 의해 키워져야 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운오리새끼’ 동화를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오리인줄 알고 미움 받으며 오리 가운데서 컸지만
나중에 백조 가족을 만나 자신이 백조였음을 깨닫게 되고 백조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라고 믿는 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라고 믿으면 사람처럼,
늑대라고 믿으면 늑대처럼.
따라서 우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니체는
“자신을 아는 자는 세상에서 못 해낼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자기를 아는 게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내 자신에게 온전한 해답을 주지 않고 그만 그 질문하는 것을 멈추고 맙니다.
동양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인 공자님도 죽음에 대해 물어보는 제자에게
“아직 사는 것도 모르는데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즉 이 세상 사람은 그 누구도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말해 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면 나에 대해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늑대아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인간으로부터 왔다는 것만 알았다면
끝까지 늑대로 살려고만 고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를 보십시오.
처음 시작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합니다.
하늘은 우리가 나온 곳이요 돌아갈 곳입니다.
또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깨우쳐 주십니다.
사람이면서도 하느님이란 뜻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대로 살아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의 자녀, 혹은 동물처럼 살아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분과 함께라면 하느님도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우리 정체성을 온전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가톨릭 뉴스, 2012년 8월 31일자 기사에 타이페이 대교구 주보에 실렸던
타이완 산궈스 바오로 추기경의 편지 전문이 실렸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산궈스 추기경이 마음으로 깨닫고 싶었던 것은
십자가의 비움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비움(필립 2,7)’으로서
하느님과 더 친밀해지는 신비였습니다.
그분이 당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셨고,
기도와 묵상 중 죽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종종 나타났다고 합니다.
동시에,
“자신을 비워라, 그러면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 자신을 비운 예수와 가깝게 지낼 수 있게
골고타 언덕 꼭대기 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이렇게 회고합니다.
“이 환영은 나를 깨우쳤다.
나는 내가 입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직자의 장백의, 주교반지와 주교관, 추기경의 진홍색 수단,
이런 것들은 과다로 포장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원래 자신을 잃게 했다.
하지만 이런 옷들은 내 일상의 하나가 됐고,
이런 옷들을 벗어던지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느님께서 할 수 있으시다.
지난 6월 말, 가슴에 찬 물을 빼기 위해 입원했다.
의사는 내 허파에 고인 물을 빼기 위해 이뇨제를 처방했고, 나는 이 사실을 몰랐다.
미사를 드리는 중에 약효가 나타났다.
독서를 할 때쯤에 화장실에 가야 했다.
화장실로 가는 동안 오줌을 지려 심하게 젖었고 마루에 자국을 남겼다.
사제품을 받고 57년 동안 미사를 드릴 때 이런 적은 없었다.
나는 내 권위를 잃었다.
수녀와 의사, 간호사들 앞에서 숨을 곳을 찾지 못했고,
이것은 하느님께서 나의 허영심을 고치기 위해 어떻게 시작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얼마 뒤, 타이베이에서 나는 이틀 동안 대변을 보지 못했고 의사는 완화제를 줬다.
약효는 한밤중에 나타났다.
나를 돌보던 남자 간호사를 깨워 샤워실로 데려다 달라 부탁했다.
샤워장으로 다 가기 전에, 내 속이 비워졌다.
대변이 나와 바닥에 떨어졌고, 이 간호사가 내 똥을 밟았다.
그는 행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신고 있던 슬리퍼와 바닥을 닦으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 똥 묻은 파자마를 벗기고 나를 화장실 변기에 앉혀
내 다리에 묻은 똥을 닦으며 어른이 아이를 꾸짖는 것처럼 나를 꾸짖었다.
그는 ‘두세 발짝만 더 가면 변기였는데, 그것도 참지 못했느냐?
이것 때문에 내가 고생했다. 다음에는 더 일찍 말해 달라’고 당부했다.
나는 내가 한 살짜리 어린애처럼 느껴졌다.
그의 말은 날카로운 칼로 나에게 다가와
내가 90년 동안 갖고 있던 모든 존경과 명예, 직함, 직위, 권위, 위엄을 난도질했다.
나를 다 씻기고 나서 그는 나를 침대에 눕히고 바로 잠이 들었다.
나도 잠이 들었지만 곧 깨어났고 아주 편하게 느껴졌다.
‘자신을 비운’ 예수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가 나를 향해 웃고 있었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가자고 초대했다.
세 번째 당황했던 순간은 2주 전이었다.
나는 그때 막 예수회의 병원으로 옮겼다.
발에 부종이 생겨 의사들은 강력한 이뇨제를 처방해주면서 또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방사선치료를 하러 가던 도중에 약효가 나타났다.
의료진과 기술진은 내 바지가 완전히 젖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마지막 남은 한 조각 위엄도 잃었다.
이런 당황스러움이 죽을병에 걸려 고생하는 이 90대 노인에게 원기를 회복시켜줬다.
며칠 만에, 이 당황스러움은 어릴 적 순진함을 다시 가져다줬고
오랫동안 쌓여왔던 도움 되지 않는 습관을 없애줬다.
내 몸이 아주 작은 캥거루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
나는 주님께 내 영성적 질병을 낫게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했고,
이로 인해 나는 아이처럼 생기를 되찾고 단순해지며 겸손해졌다.”
이것이 참다운 기도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을 만날 때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그분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그분과 함께라면 하느님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물론 이는 자신을 비울 때만 가능해집니다.
이는 마치 스마트폰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스마트폰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만 가능한 것과 같습니다.
자신을 잘 사용해 줄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면
스마트폰은 그냥 하나의 돌덩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 이용할 수 있는 분에게 주어지면
비로소 그렇게도 찾던 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감사해야 할 이유
미국의 실업가 중에 '스탠리 탠'이라는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회사를 크게 세우고 돈을 많이 벌어서 유명하게 되었는데,
1976년에 갑자기 병이 들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가 절망 가운데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몇 달 후에 그가 병상에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아니 어떻게 병이 낫게 된 것입니까?
그러자 스탠리 탠은
“아 네, 전 하나님 앞에 감사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이 다 나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병들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병들어 죽게 되어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살려 주시면 살고,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하나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매순간마다 감사하고 감사했더니 암세포는 없어졌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가 다시 회복하게 된 것은 '감사'때문이었습니다.
요즘 미국의 정신병원에서는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약물치료 보다는 소위 '감사'치유법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서 감사한 일들은 무엇일까를 찾아내게
하고 감사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약물치료보다도 이 감사치유법이 훨씬 더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이 감사치료법은 단지 정신과적인 치료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탠리 탠'의 경우와 같이 육체의 질병에도 대단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일본 해군 장교인 가와가미 기이찌 씨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오고 나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짜증이 났고 불평 불만이
쌓여져 갔습니다.
결국 그는 전신이 굳어져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그는 정신 치료가인 후찌다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후찌다씨는 그에게 “매일 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만 번씩 하세요”
라고 처방했습니다.
기이찌 씨는 자리에 누운 채로 매일 밤 계속해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만 계속했습니다.
매일 “감사합니다”를 했기 때문에 감사가 몸에 배여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두개의 감을 사와서 “아버지 감을 잡수세요”라고
말했는데 그 때 아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는데 신기하게도 손이 움직였고 차츰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던 목도 움직여
지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하던 감사가 실제 감사가 되었고 불치병도 깨끗이 낫게 한
것입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마음의 상처와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 모든 스트레스와 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암전문 병원인 미국 텍사스 주립대 MD앤더슨 암센터에
감사로 찬양하고 사는 것이 그만큼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정서에 좋은 반응을 일으켜 혈압을 떨어뜨리고, 소화 작용을
1998년 미국 듀크 대학 병원의 해롤드 쾨니히와 데이비드 라슨
매 주일 교회에 나와 찬양하고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존 헨리 박사도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이다”라고
감기약보다 더 대단한 효능을 가진 것이 감사약입니다.
우리가 기뻐하며 감사하면 우리 신체의 면역 체계를 강화시켜 준다고
매일 감기약이 아니라 감사약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기뻐하고 감사하며 감사약을 먹으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탈무드에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요,
그러므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항상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지금 호흡이 있나요?
지금 걸어 다닐 건강이 있나요?
지금 살아서 움직이며 할일이 있나요?
왜냐하면 아직도 하나님이 살아 있도록 생명과 건강을 주셨기
이런 건강이 없어서 마음의 소원은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그러나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셔서 아직도 살아 있도록
편집 : 신나라
주께 두손 모아 비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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