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6/17 복음과 묵상

메옹 2019. 2. 24. 20:46

2019년 6월 17일 월요일

[(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기도로 내가 죽어야 원수도 죽는다

한 살인범이 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살인범의 형이 되는 사람은 공직에 있는 동안에 아주 많은 공로를 세워서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형은 주지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동생을 사면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주지사는 동생을 위하여 탄원하는 형의 공로를 참작하여 그 동생의 죄를 사면해주었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 주지사의 사면장을 받아 넣은 형은

곧바로 감방 안에 갇혀 있는 동생를 찾아갔습니다.

동생을 만나본 형은 물어보았습니다.

“만약 네가 사면을 받고 살아 나간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니?”

그러자 동생은 안면을 찡그리더니 즉시 대답을 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살아서 감방을 나간다면, 첫째로, 나에게 사형언도를 내린 판사를 찾아

그 놈을 죽이는 일이고, 그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던 놈을 찾아서

그 놈을 쏘아 죽이는 일이야!”

형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습니다.

그래서 형무소 문을 나서면서 양복 안주머니에 있는 주지사로부터 받은 사면장을 찢어버렸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도 나를 용서하실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용서하신 이유는 나도 용서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용서가 안 된다면 아직 용서를 못 받아서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법이 나옵니다.

이 법은 잔인한 것 같지만 실은 지나친 보복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든 법입니다.


남이 나를 한 번 험담하면 나는 그 사람이 한 일에 대해 열 번 험담합니다.

아니면 평생 그 사람에 대한 미운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받은 만큼만 돌려줘도 어느 정도는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삶으로는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사람으로 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라고 하십니다. 이는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그렇게 먼저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죄를 짓는 것은 오른뺨을 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왼뺨도 내미시며 우리를 얼마든지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의로움입니다.

의롭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법만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대야하고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어야하며

천 걸음 가자는 이에게 이천 걸음을 가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으니 우리가 이웃에게 그렇게 해야 하느님 앞에 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힘만으로는 오른뺨을 맞고 왼뺨을 내밀 수는 없습니다.

나를 무관하게 바라봐야합니다.

나를 나로 바라보면 반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잊어야합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 자신이 인간임을 자각했다면 곧 물에 빠졌을 것입니다.

인간은 물 위를 걸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나를 잊게 됩니다.

나를 잊는 것이 참 자비이고 의로움의 길입니다.

나를 잊으려면 나대신 바라봐야 할 대상이 필요한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한 신부님이 강론시간에 신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신자 분들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분, 손들어 보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손들어 보세요!”

그 때 저 뒤에 앉아 있던 성당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손을 들었습니다.

신부님이 놀라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그 비결을 말씀해 주세요.”

할아버지는 이가 없어 바람이 새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있었는데 이젠 다 죽었어요!”

내가 죽어가는 만큼 나의 원수도 죽어갑니다.

나를 죽이면 그 죽은 나를 바라보는 나만 남습니다.

그것이 본래 나입니다.


이 본래 나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꾸 자아와 본래 나를 분리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 연습을 하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본래 나가 하늘로 오르면서 남겨진 자아를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자아는 뱀이기 때문에 하늘로 오르지 못하여 하늘로 오르는 본래 나는

자아를 제3자로 보게 됩니다.

나를 보아야 나를 버릴 수 있습니다.

나를 제3자로 보아야 나를 잊던지 편들던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화를 내는 나가 나라고 생각하던가, 기쁜 나가 나라고 생각하면

나는 나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빠져있다면 오른뺨을 맞고 왼뺨을 돌려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나의 뺨을 맞는 것보다 친구가 맞았다면 나는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맞는 것이 아니라 뱀이 맞았다면 오히려 잘 되었다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멸시와 고통을 청했던 것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가 미워하는 이들도 함께 죽게 됩니다.

나를 봉헌하는 시간이 기도이기에 기도가 아니면 누구도 용서할 수 없게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사랑하는 아내에게




사랑하는 아내에게


내게 와서 아픔이 있어도 참아 주었고

 
슬픔이 있어도 나 보이는 곳에서

 
눈물하나 흘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내게 와서 고달프고


힘든 삶으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어도


내가 더 힘들어 할까봐 내색 한번 하지않고


모질게 살아 주었습니다

 




돌아보니 당신 세월이 눈물뿐이었을 겁니다

 

살펴보니 눈가에 주름만 가득할 뿐


아름답던 미소는 간 곳이 없습니다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슬퍼하면 모두가 당신 탓인양

잘못한 일 하나 없으면서 잘못을 빌던 그런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 왔겠습니까
당신이 없었다면 나의 삶이 있었겠습니까 ?
이 모두가 당신 덕분입니다
오늘이 있게 해준 사람은 내가 아닌 당신이었습니다
오늘 내가 웃을 수 있는 것도 다 당신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난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
생각해보니 항상 나의 허물을 감추려고
화낸 일 밖에 없었고 언제나 내가 제일인 것처럼
당신을 무시해도 묵묵히 바라보고 따라와 준 당신
그런 당신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내 곁에 있어주는 당신으로만...
그저 같이 사는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만...
당신에게 폭군이었습니다

돌아보니 내가 살아 갈 수 있는 힘이었고
나를 만들어준 당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하고 같이 살아오던 세상도
나는 나혼자만의 세상처럼 살았읍니다

 


나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는 줄 알았습니다
착각 속에 빠져 당신을 잊어버렸습니다
당신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세월동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파도 원망 한번 하지 못하고
바라보는 가슴 재가 되었겠지요

 


같이 사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잊어버린 당신에게

이 아침 참회의 글을 적습니다
하지만 이 무슨 소용입니까
이미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왔을 당신의 지난 세월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가슴 아프고 부끄럽습니다


 


눈물로 용서를 구한다고
당신이 잃어버린 세월이 찾아올까요
식어버린 당신 가슴이 뜨거워질까요
두렵습니다

혹시라도 떠나갈 당신일까 두렵습니다

 


나의 삶이 당신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 왔는데
내 곁을 떠나갈 당신일까 두려운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세월 혼자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어서도 아니었는데
당신에게 한 번도 줘 본적 없는 진실한 마음을
어이해야 합니까
아파하며 살아 왔을 당신에게 무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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