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8일 토요일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7-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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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내 안의 예수님을 꺼내주는 것
MBC 베테랑 기자였던 김상운씨가 ‘왓칭’이란 책에서 한 방송작가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맡은 TV 프로가 폐지되자 1년 동안 백수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은 집을 떠나 연락을 끊었습니다.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를 키우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마침 TV 단막극 공모가 있어서 죽기 살기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석 달 동안 그 짓만 하였고 어느 덧 마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도 원고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안 되는 건가봐.’
한겨울의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춥고 외롭고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딸아이를 보아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며칠째 감지 않아 기름이 조르르 흐르는 머리, 핏기 하나 없는 피부,
앙상해진 얼굴, 퀭한 눈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거울 속에서 익숙한 따스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세상살이 참 힘들지? 네 힘으로 안 되면 하늘의 힘을 빌어보렴.”
3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녀는 털썩 주자앉아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제발 완벽한 원고를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떴는데 뭔가에 홀린 듯 아이디어가 샘솟았습니다.
그것을 정신없이 메모해나갔습니다.
“그건 분명히 내 머리에서 나온 건 아니었어요.
완벽한 원고가 고스란히 보였으니까요. 제목까지도.”
그녀는 응모에 당선하였고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특별한 것 같지만 미술이던, 음악이던 간에
창조활동을 하는 수많은 작가들이 체험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믿지 않고 하늘의 도움을 청합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게 만듭니다.
해피포터 시리즈로 단숨에 세계적인 거부가 된 영국의 작가 롤링(J.K. Rowling)은
기자들이 어디서 그런 영감을 얻었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누군가가 내 머리에 아이디어를 확 집어넣는 것 같았어요.
그 아이디어가 전개되는 걸 선명하게 볼 수 있었죠.
나는 보았던 걸 적어놓은 것뿐이에요.”
누군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도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에 비길 바가 못 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야기를 들려주실 공간을 열어드려 그 들려주시는 것을 받아
그대로 전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조물은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을 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은 창조의 능력이고 오직 창조자만이 사랑의 주인이십니다.
피조물이 사랑을 하려면 그 창조자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창조자께서 피조물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실 때
그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창조자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비워야합니다.
나를 비우는 방법은 나를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미사 때 봉헌하는 빵과 포도주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다는 상징입니다.
봉헌이란 하느님을 위해 나를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나는 하느님 것이 됩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라고 하시며, 당신이 아버지를 당신 안에 받아들이기 위해 당신 자신을
아버지 손에 맡겼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방식은 당신이 받아들이신 하느님을
그대로 꺼내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고 하시며
당신이 하시는 모든 말과 행동이 당신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내가 이웃을 위해 단돈 천원이라도 내어준다면 그 돈은 분명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받지 않고 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여 그분께서 당신을 내어주게 하는 것,
이것이 사랑의 방법입니다.
나는 줄 것이 없지만 하느님은 줄 것을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
이에 예수님은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드러내 보이며 예수님께 많은 청을 드려
그분께서 그 청하는 사람을 통하여 세상에 많은 축복을 내리게 합니다.
사랑은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꺼내 주는 행위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당신은 세상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어느날 하느님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사람 넷이 같은 날 죽었습니다.
그리고 천국문 앞에서 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심판관인 베드로 사도가 첫번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스물아홉 살 때 사제가 되어 50여년 동안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많은 영혼들 을 구원하였습니다. 제가 구원한 영혼이 수십만 명은 될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 사도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고집과 권위가 가득차 있습니다. 연옥에 가서 그것을 씻은 다음에 오십시오." 다음은 두 번째 사람이 올라왔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러자 두 번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사목회장과 단체장 등 많은 직책을 맡아서 봉사하였습니다. 주님의 성전도 지었고 행사도 많이 주관했습니다." 그때 베드로 사도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명예에 대한 욕심과 교만이 가득합니다. 그것들을 없앤 다음에 오십시오.” 다음은 세 번째 사람이 올라왔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은 여자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무엇을 하였나요?” 그러자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영세를 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사 참례를 했고 하루에 두 시간씩 열심히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천국을 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때 베드로 사도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욕심으로 가득합니다.
지금까지 바친 기도는 모두가 자기 욕심을 위한 기도뿐이군요. 이제부터는 남을 위한 기도를 하십시오. 그렇게 한 다음 오십시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사람이 올라왔습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그러자 네 번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직책도 없었고 이름도 없었습니다. 오직 남들이 싫어하는 일이나 궂은 일들을 열심히 하였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저를 바보라고 부르더군요.
저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때 베드로 사도가 말했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영혼의 샘터(바오로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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