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3/27 복음과 묵상

메옹 2019. 1. 14. 22:42

2019년 3월 27일 수요일

[(자)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복음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7-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우리의 작음에 감사하고, 보다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야겠습니다!


형제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모든 것을 공유하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크게 느끼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형제들은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행복해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상처 입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그리도 목숨을 건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웃을 향해 뭐 대단한 것, 엄청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기대합니다.


작은 친절이나 작은 사랑, 작은 나눔이나 작은 도움을 기대합니다.

나의 작은 성취나 작은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작은 칭찬의 말 한 마디,

힘겨워하는 나를 향한 작은 격려의 말 한 마디에 그리도 기뻐합니다.


따지고 보니 작은 것이 큰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작은 것의 중요함을 그리도 강조하셨는가 봅니다.

“그러므로 이 작은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마태오 복음 5장 19절)


곰곰히 생각해보니 참 사랑은 뭔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작은 약속을 충실하고 꾸준히 잘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원치 않은 행동을 자제하는 일입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소확행(小確幸)을 존중해주고,

그의 얼굴이 늘 기쁨으로 빛날 수 있도록 그의 작은 행복을 지켜주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늘 나라에도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존재, 아주 작은 일도 크고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다.


반대로 늘 크고 화려한 것만 쫒으며 작은 존재,

작은 일을 경멸하고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입니다.


크기는 좀 작았지만 자태나 뿐만 아니라 향기까지 갖춘, 꽤 괜찮은 꽃 한송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은 늘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주변에 서 있는 위풍당당한 해바라기나 화려하고 큼지막한 맨드라미에 비교해보니

자신은 너무나 작고 초라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던 작은 꽃은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던 나머지

매일 매일 괴로워하다가, 힘이 빠져갔으며 고개는 점점 아래로 쳐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습니다.

작은 꽃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말을 건넨 꽃 한 송이를 발견했는데,

그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크기가 너무 작고 볼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주 작은 꽃은 불행하다고 작은 꽃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애! 넌 정말 크고 예쁘구나.”

작은 꽃은 아주 작은 꽃의 칭찬에 기분이 한껏 업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꽃 앞에서 자신의 자태를 한껏 뽐냈습니다.

그때 아주 작은 꽃이 작은 꽃에게 물었습니다.

“애! 내 이름은 개미눈물꽃이라고 해. 그런데 네 이름은 뭐니?”

그 순간 작은 꽃은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작은 꽃은 언제나 스스로를 남들과 비교하는데만 신경을 쓰다보니,

자신이 누구인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름, 정체성, 신원 조차 몰랐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작은 것을 소중하고 크게 여기시는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구원된다면 크고 대단해서가 아니라, 작고 보잘 것 없어서 구원됩니다.

우리의 작음에 대해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작음에 감사하고, 보다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빈 손 (空手)


높은 빌딩을 사들이고
수많은 땅과 돈을 축적하며
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99세,
위암에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오래 산 편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죽음을 앞둔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두고 죽으려니
너무 억울했던 것입니다.
남은 시간은 6개월 정도.



그는 자신이 사들인
높은 빌딩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것들을 두고 어떻게 죽나!"
하루는 통장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또 하루는 사들인 땅에 찾아가서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쓰지 않고 모으는 것만이
기쁨이자 보람이고 취미였던
99세의 노인, 




그는 죽기 하루 전날도
자신의 빌딩을 바라보며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노인이 죽은 후,
그가 가장 사랑했던 빌딩 앞에
자식들이 동상을 세워 주었습니다. 

무릎 위에 양 손을 펼치고
편안하게 앉아있는 동상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동상에
누군가 낙서를 해 놓았습니다.



"빈 손"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그 글을 보며 모두
씁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악착같이 모으며 살던 노인에게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벌어도 쓰거나 나눌 줄 몰랐던 노인.
빈 손 동상이 유명해지기 시작하자
노인의 자식들에 의해
결국 동상은 치워졌습니다.



살아서 "회장님"이라고 불렸지만
결국은 "노인네"로 남은 그의 일생.
그래도 그의 일생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돈을 쓰지도 못하고 모으기에 급급한 것,
그러다가 조금만 빠져나가도 불안해 한 것, 

이러한 마음도 일종의 병입니다.
살면서 '빈 손'이라는 것을
자주 의식해야 합니다.



세수할 때 양 손에 비누칠을 하면서
'그래, 빈 손이다.

이 정도면 많은 것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러놓는 연습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방하착放下着"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내려 놓으라는 뜻으로
애착을 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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