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2020년 3월 27일 금요일

메옹 2020. 1. 9. 01:03

2020년 3월 27일 금요일

[(자) 사순 제4주간 금요일]


복음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2.10.25-3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2 마침 유다인들의 초막절이 가까웠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25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26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7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29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30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나의 집을 초막으로 지어라

오늘 복음의 핵심 내용은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초막절 축제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를

당신이 누구에게서 파견받아 오셨는지 명확히 알고 계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에게서 오셔서 다시 아버지께로 가시는 분은 이 세상에서

마치 ‘초막’과 같은 집을 짓고 삽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커다란 집을 지으려 합니다.


내가 어떤 집을 짓고 사느냐가 죽음을 두려워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결정합니다.

더불어 삶의 질도 결정합니다.


초막절은 3~4월의 과월절, 그 이후 50일 뒤의 오순절과 함께 이스라엘 3대 축제입니다.

9~10월에 포도와 올리브 등을 수확하는 시절에 지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축제 때 집 옆에 초막을 짓고 일주일 동안 집을 나와

그 초막에서 지냅니다.

이는 인생이 한 번 왔다 가는 초막과 같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던 때,

빨리 이동 해야만 해서 초막을 짓고 살아야 했던 시절을 초막절 축제 때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누구나 집을 짓고 삽니다. 그 집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초막과 같은 집을 짓고 살아서 주님께서 부르시면 주저함 없이 떠납니다.

그러나 누구는 아주 커다란 집을 짓고 살아서 그것을 남겨두고 떠나기를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어떤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는지요?

1972년 성탄절 때 92명이 탄 비행기가 페루 열대 밀림 한가운데로 추락하였습니다.

91명이 사망하였고 유일하게 한 소녀만 살아남았습니다.

그 이유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하늘에서 그녀의 좌석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추측건대 아래로 떨어지면서 위로 솟구치는 강한 상승기류를 만나 떨어지는 속도가 줄었을 것이고

밀림의 나뭇가지들과 의자의 쿠션이 그녀를 보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떨어져서 살아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율리아네 쾨프케입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팔의 상처를 제외하고는 다친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밀림에서 살아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시기적으로 나무의 열매가 열릴 때가 아니며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악어나 뱀,

독충과 같은 것들이 득실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무조건 걸었습니다.

수색대가 비행기 추락지점을 찾아내지 못할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감은 맞았습니다.

그녀는 거의 물만 마시며 열흘가량 버텼습니다.

그리고 한 보트를 발견하고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 결국은 구조되었습니다.


이런 기적 같은 경험을 한 그녀가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을 때는 어떠한 마음이었을까요?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가 추락하는 동안 엄청난 공포에 시달렸을 텐데,

사실 저는 이상하게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참조: 『확신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 울리히 슈나벨, 인플루엔셜]


율리아네 쾨프케는 어렸지만, 초막에 살고 있었습니다.

초막은 마치 하나의 텐트와 같아서 이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그리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렵지 않은 사람만 살아남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밀림을 헤맬 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어떻게 살아남을까?’보다 살아남아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더 생각했습니다.

나의 인생을 좋은 일에 쓰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중요한 일, 인류와 자연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는 것,

내 인생이 세상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커다란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그 집을 짓고 유지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는 대신,

초막을 짓고 사는 사람은 남는 모든 에너지를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쓰려고 합니다.


쾨프케는 페루 밀림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은 56만 평을 사서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최근엔 3900만 평의 보호구역을 설정하여 남미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큰 밀림 보호구역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짓고 사는 집은 초막입니까, 아니면 커다란 저택입니까?

초막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갑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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