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2020년 2월 23일 주일

메옹 2019. 11. 11. 01:16

2020년 2월 23일 주일

[(녹) 연중 제7주일]


복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오늘의 묵상


억울하게 죽어야 진리가 드러난다

영화 빠삐용의 실제 주인공은 ‘앙리 샤리에르’라고 합니다.

그는 20세 때 파리 시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 당했습니다.

검사는 거짓 증인을 내세워 그에게 살인자로 누명을 씌웠고 샤리에르는 중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검사에 대한 복수심으로 탈옥을 결심했고 탈옥 후에는 남미 곳곳을 다니면서

갖은 일을 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자신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자 그 검사를 죽이기 위해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복수에 대한 다짐으로 과거에 누명을 당했던 거리를 거닐 때

그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혀있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느님, 내가 복수를 포기한 대가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나는 이겼다. 친구여.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네 미래의 주인공으로 여기에 있다.

네 원수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라. 그들은 과거의 한 부분일 뿐이다.”

37년 동안 스스로 가두어 두었던 자신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진짜 감옥은 나 자신일 수 있습니다. 내가 죽을 때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사랑이라는 참 진리가 솟구칩니다.


그러니 나를 밟으려는 사람이 있으면 밟혀주고 죽어주십시오.

나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고 진리가 드러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사람이 지렁이를 죽이려고 한 번 발로 밟았는데 죽지 않고 꿈틀거린다면

그냥 포기하고 지나갈까요? 죽을 때까지 밟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때문에 아파하는 지렁이를 보면 죄책감이 더 들기 때문입니다.


혹은 ‘어, 이게 안 죽네?’라며 안 죽는 것을 반항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밟게 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악의를 가진 사람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려 했는데 죽지 않으면 더 미워져서

끝장을 내려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죽어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선이 죽고 악이 승리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은 내가 죽을 때 드러납니다.

선이 드러나면 악도 함께 밝혀지게 됩니다.

어쩌면 죽으려하지 않는 내가 선이 드러나지 못하게 하는 악의 일부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억울함을 제일 많이 겪은 사람은 요셉일 것입니다.

형들에 의해서 억울하게 이집트로 끌려가 노예로 팔렸습니다.


이집트에서도 주인 포티파르의 집에서 충성하다가 그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힙니다. 억울한 일입니다.

요셉은 포티파르의 아내뿐만 아니라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포티파르에게도

억울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기 아내를 범하려고 한 노예를 감옥에 집어넣는 것은

너무 약한 형벌이 아닐까요?

당시 노예는 물건과 같아서 포티파르의 신분이었다면 즉결처분을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감옥에 가둔 것은 사실 포티파르가 아내를 믿었다기보다는

요셉을 믿었다고 보아야합니다.

비슷한 예로 로마 시저의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소문이 난 적이 있습니다.

조사해 보니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저는 아내를 쫓아내 버렸습니다. 왜일까요?


“시저의 아내는 소문도 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남자의 심리일 수 있습니다.

포티파르가 사실보다 명예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속성 때문에 요셉을 감옥에 보낸 것이고

요셉도 이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억울해도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 그렇게 포티파르의 아내가 악한 사람임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포티파르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서 이런 억울함을 당해야 했고

그래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억울하다고 항소했다면 진짜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 섭리에 맡겼습니다.

몇 년 뒤 요셉은 파라오 다음의 권력을 쥐게 됩니다. 포티파르보다 높아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복수를 했을까요? 아닙니다.

진리가 드러나고 자신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가족들이 굶어죽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암담해 보이지만, 하느님이 이끄시는 길은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요셉은 억울함을 가지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감옥은 파라오를 만나기 위한

지름길이기도 했습니다.


억울하다고 느낄 때,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의탁하십시오.

하느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어떻게 드러내셨을까요?

당신이 죽으심으로써 드러내셨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하느님이 선이시고 당신을 죽인 이들이 악인임을 만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만약 당신이 끝까지 살려고 하셨다면 십자가를 통한 사랑의 진리는 영원히 드러날 수 없었고

사람들은 무엇이 악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지렁이를 밟는 사람은 지렁이가 죽었을 때에야

‘내가 왜 애꿎은 지렁이를 죽었지?’라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진리가 그때서야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군가 나를 밟을 때 밟혀주십시오. 죽어주십시오.

그러면 내 안에 계신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회개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람이 회개하지 않을지라도 어쨌거나 진리는 내가 죽어야 드러납니다.


사실 진리를 가리는 것은 살아있는 나 자신입니다.

내가 죽을 때 많은 이들이 진리를 보고 악에서 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십자가의 삶입니다.

억울하다고 꿈틀거리면 더 밟힐 뿐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코메디닷컴

알코올 중독, 습관 아닌 ‘질병’…전문 치료 필요

[사진=Lightspring/shutterstock]

© 제공: KoreaMediCare Co. LTD

[사진=Lightspring/shutterstock]


정신질환자의 강력 범죄가 잇따르면서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알코올 중독자가 연루된 범죄들로 인해 알코올 사용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혐오 역시 늘고 있는데, 자칫 타인을 위협할 위험이 없는 환자까지 사각지대로 내몰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자타 위협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주눅이 들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석산 원장은

“정신질환자들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격리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며 “정신질환자를 향한 사회적 비난과 낙인은 환자를 움츠러들게 만들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은 생각보다 흔한 질병이다.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신질환 평생 유병률은 25.4%다.

그중 가장 흔한 질환은 ‘알코올 중독’이다.

주요 정신질환 17개를 대상으로 한 ‘2016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에 의하면 알코올 의존과 남용 등 알코올 사용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12.2%에 달한다.

알코올 의존은 내성과 금단 증상을 보이는 상태를 말하고, 남용은 내성과 금단 증상은

없으나 일상생활에 부적응이 발생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대략 139만 명의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가장 높은

유병률을 보이는 정신질환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신의료 서비스 이용률은 12.1%로 정신질환 중 최저를 기록했다.

김석산 원장은 “알코올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조현병은 물론 우울증, 불안장애 등

각종 정신질환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대한

음주문화로 인해 술 문제를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 아닌 의지나 습관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높다”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건

치료 문턱을 더욱 높게 만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알코올 중독은 단순한 입원과 약물치료만으로는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술과의 격리를 위해 환자를 병원에 가둬놓는 건 치료가 아니라 잠시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퇴원 후 술을 마시는 악순환이 반복돼 알코올 중독은 ‘치료가 안 되는 병’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즉, 알코올 중독 치료의 목적은 환자를 술과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끊고 다시 가정과 사회로 복귀해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는

설명이다.

술에 의존해 살아왔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과 상담 등 알코올 중독에

특화된 전문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석산 원장은 “정신질환자를 영원히 사회와 격리‧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치료 문턱을 낮추고 지속적인 치료를 통해 그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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