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복음과 묵상
2019년 8월 4일 주일
[(녹) 연중 제18주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21
그때에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신경>
![]()
자녀에 대한 소유욕도 탐욕이다
영화 ‘더 보이’(2019)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탐욕이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줍니다. 잔인한 영화이니 굳이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 시골에 사는 부부는 아기를 갖기를 소원했지만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하늘에서 작은 우주선이 숲에 떨어집니다.
그 안에는 아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 아기를 꺼내 안고 하늘의 선물이라고 기뻐합니다.
아내가 좋아하니 남편도 같이 키우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타고 온 작은 우주선은 헛간 지하에 잘 감추어놓았습니다.
그가 장차 어떻게 변할지 모른 채 말입니다.
12살 이전까지 아이는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러나 12살 생일이 되던 해 아이는 돌변합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나쁘게 대합니다.
그 이유는 12살이 되면서부터 자꾸 헛간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헛간 우주선에서 아이에게 “지구를 빼앗아라!”라는 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는 그 목소리에 도취되어갑니다.
아이는 우주인이었기 때문에 슈퍼맨처럼 엄청난 힘을 지녔습니다.
그도 그것을 알게 되고 자신은 지구인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게 됩니다.
결국 어머니는 그 아이를 입양해 온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떨어진 것을 키워주었다고 말해줍니다.
아이는 이제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해치고 싶은 사람을 해치고
죽이고 싶은 사람은 죽여 버립니다.
아버지가 그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범인이 자신의 아들임을 눈치 챕니다.
그리고 아이를 죽이려하지만 아이는 이미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까지 죽인 아이는 어머니를 찾아옵니다.
어머니도 자신 때문에 아이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아이를 죽이려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아이는 제 부모를 죽이고 날아가는 비행기를 자신의 집에 떨어뜨려
그 사고로 부모가 죽은 것으로 위장합니다.
그리고는 몰래 나쁜 짓들을 해가며 자신의 특별함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영화의 끝입니다.
사람 안에는 무서운 자아가 있습니다.
누군가 통제해주지 않으면 자아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서 나중엔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사춘기 이전엔 부모가 어느 정도 그 목소리를 끊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기 전까지입니다.
자신의 원천이 부모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 자녀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가?’를 묻기 시작했다면
이미 부모가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때 빨리 자녀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지 않으면
아이는 자아의 목소리에 사로잡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자녀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도 부모가 자신을 만들지 않은 것을 아는 이상
자신을 통제해 줄 아무 것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부모가 끝까지 “너는 내 자녀야!”라며 자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면
자녀로부터 큰 반항의 목소리를 듣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녀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 하는 부모가 겪게 될 미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 형보고 유산을 자신에게도 나누어 주라고
말해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누구에게 돈을 더 많이 가지게 해 주는 분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참아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부속물이 아닙니다.
그분만 있으면 아무 것도 없어도 상관없어야 하는 분입니다.
그분을 얻기 위해서는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야 하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 것을 소유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여물주면 밭 갈아주겠지!’라는 식으로 이용하면
하느님을 소처럼 만들어버리는 우상숭배자가 됩니다.
이에 예수님은 “모든 탐욕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탐욕이 있으면 하느님은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 전락해버리십니다.
우상숭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탐욕을 경계해야합니다.
돈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기 위해 십일조를 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는 것이 자녀에 대한 애정인 것 같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아드님을 성전에 봉헌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자녀들을 참 아버지를 찾게 해 주기 위해 성전에 봉헌할 수 있어야합니다.
봉헌한다는 말은 내 것임을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일곱 아들을 다 잃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마지막 일곱째 아들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이 어머니의 믿음이
결국 아이에게 참 존재의 원천을 알려주는 것이 됩니다.
그래야만 나중에 자녀들도 고마워합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너희가 어떻게 내 배 속에 생기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준 것은 내가 아니며, 너희 몸의 각 부분을 제자리에 붙여 준 것도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겨날 때 그를 빚어내시고 만물이 생겨날 때 그것을 마련해 내신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비로이 너희에게 목숨과 생명을 다시 주실 것이다.
너희가 지금 그분의 법을 위하여 너희 자신을 하찮게 여겼기 때문이다.”(2마카 7,22-23)
이것이 유태인의 힘입니다.
나라 없이도 2천 년 동안 세상의 모진 박해를 이겨온 힘입니다.
유태인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들은 부모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왔음을 교육받습니다.
그러니 부모님께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통제받으며 살아갑니다.
자아의 소리에 굴복하지 않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굴복하려 노력합니다.
부모들은 솔직하게 자녀가 자신이 만든 소유물이 아님을 고백해야합니다.
그리고 참 부모님이신 하느님께 통제받도록 맡겨 드려야합니다.
이것이 우상 숭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부모가 해야 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의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가 잘 되게 해 달라고 하느님을 소로 만들어 부려먹는 우상숭배자가 되고,
자녀 또한 자아에 사로잡혀 세상에서 자기만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아이 안에 있는 그 무서운 자아의 이기심을 꺾으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입니다.
자녀를 위한다면 “너의 참 부모님은 하느님이고 너의 참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시다.”
라고 가르쳐야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참 부모를 찾게 해 준 지상의 부모도 하느님과 자녀로부터 사랑받게 됩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합시다.
자녀에 대한 지나친 집착도 탐욕이 될 수 있습니다.
탐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봉헌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무흐라카-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 수도원
카르멜 산(Mount Carmel)-무흐라카-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 수도원카르멜 산(Mount Carmel)카르멜 산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폭이 약 10km, 길이는 대략 26㎞에 걸쳐 길게 뻗어 있으며 245㎢ 정도의 면적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카르멜 산은 특별히 어느 산봉우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맥 전체를 일컫는다. 길게 뻗어 있는 카르멜 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이즈르엘 평야가 놓여 있고, 서남쪽으로는 샤론 평야가 있다. 카르멜 산의 최고 높이는 해발 546m이고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신의 거짓 예언자들과 대결한 산은 482m이다. 카르멜 산은 예로부터 신성한 산으로 여겨졌으며, 기원전 16세기의 이집트 문헌에 '거룩한 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약성경에서 전하는 이 산은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으며, 성서에는 엘리야가 바알 신의 거짓 예언자들과 대결한 장소로 기록되어 있다(1열왕 18,20-40).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이 산을 신성하게 여겨, 6세기부터 은수자들이 정착해 기도하면서 카르멜회의 이상이 열매 맺은 곳이기 때문에 카르멜회의 정신적인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중해로 연결되는 카르멜 산 북쪽 끝자락에는 카르멜 수도회와 스텔라 마리스 수도원, 센터가 자리하고 있고, 엘리야의 기적이 일어난 전설적인 장소에는 남자 카르멜 수도원(1828)이 있다. 산비탈에 있는 하이파 시내와 교외에는 많은 공원과 아름다운 숲이 있다. 숲은 대부분 카르멜 자연보호구역에 포함되어 있다. 남서쪽 경사면에는 많은 동굴들이 있으며, 그 중 한곳에서 기원전 4000년대 즉,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팔레스타인 지방 사람들이 살던 주거지와 항아리 형태의 무덤이 1931-1932년에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다. 카르멜 수도회카르멜은 하느님이 인간들을 당신께로 부르시는 산의 이름이다. 이 수도회 역사의 뿌리는 구약의 엘리야 예언자(1열왕 17-19장)까지 소급한다. 예언자 엘리야도 이 산에서 늘 기도를 올렸기 때문이다. 카르멜 수도회는 특별한 창설자가 없다. 카르멜 산에 은수자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수도회 창설의 시작이었다. 초기의 카르멜회 수사들은 은수자들로서, 외진 암자나 오두막에서 생활하면서 자신들이 서원한 침묵·독거·금욕·고행의 생활원칙을 지켰다. ‘은수자의 골짜기’에는 570년경에 벌써 수도원이 세워졌다고 피아첸자(Piacenza)의 한 순례자는 기술하였다. 카르멜 수도회는 구약을 거쳐 신약에 이르면서 성경을 토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수도회 삶의 바탕으로 삼았다.1205년부터 1210년까지 예루살렘의 초대 주교였던 성 알베르토(St. Albertus)에 의해 성 브로카르도(St. Brocardus) 수사에게 공동체 삶을 통한 은수자적인 수도회의 첫 규칙서가 주어졌다. 이 규칙서는 1247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탁발수도회로 인준되었다. 카르멜 산에서 주어진 이 첫 회칙은 이미 체험되어 온 은수자적인 삶과 정신에 따라 수정과 정리를 가한 것이다. 예언자적이며 관상적인 엘리야는 지금도 카르멜 수도회 정신과 삶을 이끄는 교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십자군이 패배하게 됨에 따라 카르멜 산은 서방 은수자들에게는 안전한 곳이 못 되었다. 그들은 1240년경 키프로스·시칠리아·프랑스·잉글랜드 등지로 빠져나갔다. 십자군의 패배로 13세기에 새로 일어난 탁발수도회의 형식에 순응하여 카르멜 수도회도 한때 규율이 해이되고 쇠퇴해 갔는데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에 의해 초기 카르멜의 정신으로 중대한 개혁이 이루어졌다. 개혁의 목적은 처음 카르멜회가 지켰던 고행과 명상의 생활원칙을 회복하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개혁파 카르멜회는 구두와 긴 양말 대신 샌들을 신었기 때문에 이들을 맨발의 카르멜회라(The Discalced [Barefooted] Carmelites)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한국에 있는 카르멜 수도회는 여기에 속한다. 무흐라카-엘리야 예언자가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한 장소무흐라카(Muhraqah)는 예언자 엘리야가 희생제물을 바친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카르멜 산 등성이 북동쪽 이즈르엘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그 높이는 482m이다. 하이파에서 약 27km 떨어져 있다.열왕기 상권 제18장에는 엘리야가 카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하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종교적으로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왜냐하면 기원전 860년경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 아합은 오늘날 레바논에 위치하고 있는 시돈인들의 임금 엣바알의 딸 이제벨과 정략적인 결혼을 하였고, 이제벨은 바알교의 신봉자였기 때문에 왕권을 이용하여 바알교를 이스라엘에 확산시켰다. 아합은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세우고, 예배까지 하였다(1열왕 16장 참조). 바알교는 다산(多産)과 풍요를 기원하는 물질 지상주의 종교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정착하면서부터 가나안 농경문화와 그들이 섬기던 풍요와 다산의 신인 바알 신앙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언자 엘리야가 홀로 등장하여 사람들을 보내어 온 이스라엘을 카르멜 산으로 모으고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예언자 사백 명도 함께 모아 한판 대결을 벌였던 것이다.엘리야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 산으로 불러 모으고 결단을 촉구하였다.“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1열왕 18,21)엘리야는 황소를 잡아 제단 장작 위에 놓고 신의 이름을 불러 불로 대답하는 신이 참 하느님이라고 바알 예언자들에게 제안 하였다. 바알 예언자들은 아침부터 한낮이 되도록 바알을 불렀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엘리야의 차례가 되자 그는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고,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다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제단 둘레에 도랑을 파고 나서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다가 제단 둘레로 넘쳐 도랑에 가득 차도록 번제물과 장작 위에 세 번씩이나 물을 붓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렸다. 이곳을 '무흐라카’(Muhraqah)라 부르는 것은 ‘불의 제단’, ‘불이 내려온 곳’이라는 뜻이다.그리고 나서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들을 모두 사로잡아 그들을 키손천으로 끌고 가 거기에서 죽였다. ‘키손’은 '굽이치다'는 뜻이다. 유대 전통은 ‘무흐라카’가 열왕기 상권 18장의 사건이 펼쳐진 곳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1165년경의 프랑스 투델라(Tudela)의 랍비 벤야민은 카르멜 산 위 엘리야의 제단 장소에 대해 언급하였고, 파리의 랍비 야고보 또한 이 장소를 방문하여 이 장소에 12개의 돌로 쌓은 오랜 기념비가 있음을 기록하였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엘리야의 제단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12개의 돌은 1830-1850년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현 경당 자리는 이전에 큰 바위를 잘라 만든 기도소가 있었으며, 위에서 언급한 랍비 야고보(1228년)는 이슬람 신자들이 이 기도소에 찾아와 예언자 엘리야에게 경의를 표하여 촛불을 밝히곤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십자군 시대 이전에 세워졌던 이 기도소는 폐허가 되었고, 1883년에 카르멜 수도회가 세워졌고, 최근 들어 보수 되었다. 기념 성당 안에는 엘리야가 쌓았던 제단을 기념하기 위해 12개의 돌로 된 제단이 세워져 있다. 1열왕 18,20-40 엘리야가 카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하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예언자들을 카르멜 산에 모이게 하였다.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야가 백성에게 다시 말하였다.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오십 명이나 됩니다. 이제 우리에게 황소 두 마리를 끌어다 주십시오. 그들에게 황소 한 마리를 골라 토막을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은 붙이지 말게 하십시오. 나도 다른 황소를 잡아 장작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신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겠습니다. 그때에 불로 대답하는 신이 있으면,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자 백성이 모두 “그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에게 제안하였다. “당신들이 수가 많으니 황소 한 마리를 골라 먼저 준비하시오. 당신들 신의 이름을 부르시오. 그러나 불은 붙이지 마시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데려다가 준비해 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없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며 자기들이 만든 제단을 돌았다.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놀리며 말하였다.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 댔다.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기까지 그들은 예언 황홀경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다. 그러자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이리 다가오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백성이 모두 다가오자 그는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엘리야는, 일찍이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린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왔다. 엘리야는 그 돌들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제단 둘레에는 곡식 두 스아가 들어갈 만한 도랑을 팠다. 그는 장작을 쌓은 다음, 황소를 토막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다가 번제물과 장작 위에 쏟으시오.” 하고 일렀다. 그런 다음에 그는 “두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두 번째도 그렇게 하자, 엘리야는 다시 “세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일렀다. 그들이 세 번째도 그렇게 하였을 때, 물이 제단 둘레로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 찼다.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자 엘리야 예언자가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다.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바알의 예언자들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사로잡으시오.” 백성이 그들을 사로잡아 오자, 엘리야는 그들을 키손천으로 끌고 가 거기에서 죽였다. 아가서는 여인의 아름다운 머리를 묘사할 때 카르멜 산의 아름다움에 비교하기도 한다.아가 7,6 그대의 머리는 카르멜 산 같고 그대의 드리워진 머리채는 자홍 실 같아 임금이 그 머리 단에 사로잡히고 말았다오. 이사 35,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예루살렘에서 하이파까지 131km. 직통버스로 1시간 50분. 하이파 대학에서 37A 버스를 타고 Daliyat에서 내리면. 아래 이정표가...여기서 부터 카르멜 수도원까지는 3km.
산 꼭대기 중간...이빠진것처럼 보이는 곳이 수도원 위치
참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도토리...
참나무 숲...카르멜 수도원은 오른쪽으로
수도원 앞 주차장
맨발의 카르멜 수도원...3명의 수사들이 살고 있다.
수도원 내 정원
수도원 마당 야외 제대
수도원 건물 맞은편에 있는 엘리야 상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 예언자들을 죽이는...
바알 예언자들이 불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 /P>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의 황소를 사르는 모습
대결에서 승리한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 예언자들을 죽이는 모습
엘리야의 승천...
기념 경당 내부...
기념 경당 뒷편을 바라보고...
야곱의 자손들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제단 받침 돌...열두개의 돌로 제대를 만들었다.
카르멜 수도원 옥상 전망대
지중해 카이사리아 방향...
카이사리아 근처에 있는 이스라엘 화력 발전소 탑
이즈르엘 평야
저 멀리 볼록 나온 산이 타볼산이다...
카르멜 산에서 바라본 타볼산
아래 70번 국도가 있고...사진 중앙에 굽이굽이 꺾여 있는 곳...바알 예언자들을 죽인 키손천이다...
밭 사이로 흐르는 키손천...
도로 너머 바다가...
이 수도원은 1799년 나폴레옹이 원정을 왔을 때 부상당한 군인들을 위해 병원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아래 피라미드식 탑은 나폴레옹이 원정왔을 때 전사한 군인들을 기념하는 기념탑이다.
스텔라 마리스 대성당 출입문.
대성당 내부...엘리야 예언자 그리고 나자렛의 성가정과 관련이 있는 반지하 형식의 동굴 위에 중앙 제대를...
중앙 제대 아래에 엘리야 예언자 동굴이 있다.
엘리야 예언자 상
대성당 중앙 쿠폴라
스텔라 마리스 수도원 길건너에서 보이는 바다...
스텔라 마리스 수도원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카르멜 수녀원.
카르멜 수녀원 성당 내부
중앙 제대쪽...
성당 쿠뽈라...
J. S. Bach Solo Cantatas for Alto BWV 170 Vergnugte Ruh beliebte Seelenlust (1726) 즐거운 안식이여, 사랑스런 마음의 기쁨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