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7/27 복음과 묵상

메옹 2019. 2. 28. 12:28

2019년 7월 27일 토요일    

[(녹)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복음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4-30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밀과 가라지를 구별하는 법

김지은씨는 북한에서 9년간 한의사로 일하면서 절망을 느꼈습니다.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엄마와 함께 울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맨몸으로 두만강을 건너 중국 시골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중국 공안에 잡혔지만 마을 사람들의 사정으로 가까스로 풀려났습니다.


그녀는 보다 안전한 북경으로 도망쳐 3년간 파출부와 도시락 판매원으로 일했습니다.

거기서도 불안을 느껴 미얀마로 피신했지만 또 경찰에 잡혔습니다.

그러다 구사일생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에는 다단계 판매사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정착금으로 받은 것을 몽땅 잃고 말았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한의사가 되는 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보건복지부를 찾아갔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무심하게 “북한에 가서 대학졸업증명서를 가져오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구나! 죽는 수밖에 ...’

그녀는 유서를 써놓고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1분 후면 목숨이 끊어질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고요함이 밀려왔습니다.

시야가 매우 투명해지고 지나간 일들이 영화처럼 스쳐갔습니다.

‘지금보다 더 힘들 때가 많았구나! 그런데 왜 세 끼 밥을 다 먹을 수 있는 지금

죽으려 하는 것인가?

그렇다. 욕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조금씩 잘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습니다.

직장동료들은 한의대 진학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녀는 국회청원을 내서 지방 한의대 편입학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마침내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녀는 남북한의 한의사 자격증을 모두 가진 최초의 한의사가 되었고

지금은 잘 나가는 한의원 원장입니다.

주님의 씨는 밀이고 사탄이 뿌린 씨는 가라지입니다.

밀과 가라지는 서로 비슷하여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나중에 심판 때 구분이 되기는 하겠지만 자기 자신이 먼저 자신이 밀인지 가라지인지

구분해보지 않으면 나중에 큰 후회를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밀과 가라지는 어떻게 구분이 될까요?

하느님의 본성으로 새로 태어났으면 밀이고,

태어날 때의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가라지입니다.


밀은 사랑할 줄 알고 가라지는 집착합니다.

사랑과 집착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사랑과 집착을 구분할 줄 알아야 밀인지 가라지인지도 구별이 가능해집니다.

사랑과 집착은 어떻게 다를까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으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있으면 너무 좋아서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면 그건 집착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지옥 간다고 지옥까지 쫓아가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면 집착일 것입니다.

사랑은 자유를 존중해줍니다.

그러나 자아의 집착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목숨까지 버립니다.

사업이 망해 길거리에 나 앉게 되었다고 자살을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가라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품은 사람은 그런 것을 다 잃더라도

여전히 영원한 생명을 품고 있기에 삶을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의미로 김지은 원장은 자살하려고 할 때까지가 가라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착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집착을 내려놓자 밀이 되었습니다.

자아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자아를 버렸다는 것은 다른 본성을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미워하라!”는 말은 “사랑하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모도 미워하고 가족도 미워하고 돈도 미워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당신을 따르기 위해 장애가 되면 버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당신을 따르는데 장애가 되지 않으면 굳이 가난을 자랑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돈을 미워하라는 말은 일부러 거지가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거지가 되더라도 상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랩퍼 중 가장 돈을 많이 번다는 도끼는 돈이 엄청 많습니다.

한 달에 수천 만원하는 백 평이 넘는 초호화 호텔 방에 백화점을 연상케 하는 명품 옷, 장신구,

운동화들을 갖춰놓고 살아갑니다.

고양이 방이 보통 집 안방보다 큽니다.

차고엔 초고가 외제차들이 즐비합니다.

진열장엔 5만 원짜리 돈다발이 수북이 놓여있습니다.

매달 한 뭉치씩 어머니에게 드린다고 합니다.

그는 밀일까요, 가라지일까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난을 아는 사람입니다.

2년 간 기획사 옥상 컨테이너에 살며 랩을 배울 땐 단 돈 5백 원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때를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술, 담배, 커피를 일절 하지 않습니다.

공연이 끝나도 뒤풀이를 하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말은 그가 돈 버는 것이 돈에 집착해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돈으로 육체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돈이 없어도 잘 살아갈 것입니다.

이런 면을 볼 때 밀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밀은 사랑하고 가라지는 집착합니다.

가라지는 집착의 본성이고 밀은 사랑의 본성입니다.


내가 사람이나 세상 것들을 사랑하는지, 집착하는지 살펴야합니다.

둘은 비슷한 것 같지만 매우 다른 심판을 받게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성수 한 방울의 효력

 

M. A. 아매트 & 로잘리에 A. 터톤

성수의 효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교회는 성수에 놀라운 힘을 부여했다.

십자 성호를 그을 때는 3년, 성수로 십자 성호를 그을 때는 7년 대사를 부여했다.

이런 큰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성수를 찍어 성호를 긋는 것은 성수 없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이 있다.

오랜 전통에 따라, 사제는 물을 축성할 때 정화와 보존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지닌 소금을 조금 넣어 성수에 영광스러운 임무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성수는 악한 것을 접촉한 사람, 사물 혹은 장소를 정화시킨다.

또한 성수는 유혹을 물리치고 징벌을 없애며 질병의 증상을 경감시키면서 치유의 한 방법이 된다.

마귀는 성수를 싫어하지만, 지상과 연옥의 영혼들은 성수를 사랑한다!


성수를 사용하는 이유

사제는 성수를 축복하면서 이렇게 기도한다.

“… 믿음으로 이 성수를 사용하는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온갖 질병과 원수의 함정에서 보호하소서.

또한 자비를 베푸시어 구원을 주는 생명의 물이 언제나 저희 안에서 솟아나 깨끗한 마음

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시며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성수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놀라운 효력을 지니며 교회는 성수를 자주 사용하기를 적극 권한다.

성수로 얻을 수 있는 놀라운 효력 중 대표적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성수는 악을 쫓아낸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쯤 사제를 모셔 성수로 집을 축복하는 것은 매우 현명한 일이다.

집을 드나드는 방문객이 많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설치한 경우 더 자주 하면 좋다.

마귀는 성수를 증오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성수를 사용하는 것이 그처럼 유용하기에 교회는 성수 예식을 거행하고 성수를 사용하라고 권한다.


우리는 성당에 들어갈 때면 으레 성수로 자신을 축복한다.

하지만 집이나 직장에 들어갈 때는 그러지 않는다.

우리의 집이나 일터가 성스러운 장소이기를 바라고, 살고 일하기에 안전하고 평화로운

장소이기를 바란다면 그런 차이를 두어서는 안 된다.

미국 뉴저지 주 워싱턴에 있는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 군대)의 안소니 신부가 나에게 들려준 다음 일화가 그 예다.


어느 지주가 자신의 소유지 여덟 곳을 축복해 달라고 안소니 신부에게 부탁해왔다.

신부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그 지주가 안소니 신부를 찾아와서는, 여덟 곳 중 한 곳에서 악이 제거되었다고 했다.

신부가 그 이유를 묻자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곳의 벽에 걸어 두었던 그림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쿵쾅거리는 소리와 웃음소리 같은 방해가 있었는데 그날 안소니 신부가 성수로 축복한 후로는 그런 모든 현상이 사라졌단다.


둘째, 성수는 가벼운 죄를 씻어준다.

고해성사 후 모든 가벼운 죄를 씻기 위해서 성수로 십자성호를 긋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울러 더 많은 은총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연옥영혼들을 위해서 이 짧은 기도를 바쳐도 좋다.

“주님, 이 성수와 주님의 보배로운 성혈로 제 죄를 씻어주소서.”

이 방법은 가벼운 죄에 적용된다.

대죄는 즉시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하건대, 악은 성수가 뿌려진 사람이나 장소에 오래 머물 수 없다.

악마들은 그것을 무서워하고 그것에 의해 쫓겨난다.

바로 이런 사실이 우리가 성수를 자주 사용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그

런데도 성수를 소홀히 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하느님 앞에서 무슨 변명을 할 것인가?

성수가 지닌 힘은 온 우주와 하늘 높이 까지 뻗어 있으며 땅 아래까지 닿아 있다.

성수를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성수는 영혼의 건강을 위한 특효약이다.


셋째, 성수는 가벼운 죄의 벌을 없애준다.

성수와 기도로써 가볍고 사소한 죄를 씻을 수 있다면 그 죄에 대한 벌도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합당한 방법으로 성수를 사용할 때 연옥 영혼의 보속 기간을 짧게 해준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많은 영혼들이 고통과 봉사로써 여기 지상에서 미리 연옥에서 할 보속을 행하며 자기 영혼을 정화한다.

또한 어떤 기도와 신심은 천국을 약속한다. 그것을 믿어라!

성수를 자주 사용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확실히 악과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전투 무기”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복되신 어머니 마리아께 대한 신심, 특히 묵주기도와 갈색 스카풀라와 같은 신심은 힘 있는 무기들이다.

규칙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것도 하늘 문을 여는 열쇠다.

이처럼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우리 개개인에 맞게 다양하게 주셨다.

그 중 가장 간단한 방법이 아마도 성수를 자주 사용하는 것이리라.


넷째, 성수로 연옥 영혼들을 돕는다.

성수를 찍어 땅에 한 방울 떨어뜨리며 기도함으로써 연옥에서 보속하는 영혼들을 도울 수 있다.

조에 로에쉬(MIC) 신부는 ‘성모 마리아에게 청하라.’는 제목의 특별 기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어머니는 가톨릭 재단의 학교를 다녔는데 그 학교의 수녀님들이 가르쳐준 전통이 있었다. 그것은 성수를 손가락으로 찍어 자신을 축복하기 전에 먼저 성수 한 방울을 바닥에 뿌려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다.”


아, 그렇다! 세상에서 호화롭게 살던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루카 16, 24) 하며 부르짖었던 일을 상기해보라! 오로지 한 방울의 물을 청했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 고통이 경감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생각해보라.

우리는 성수 한 방울과 기도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자신도 그 처지에 있을 수 있으므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교회의

이 전통적인 방법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환시를 보았는데, 연옥의 영혼들이 성수를 자신들에게 뿌려달라며

그녀에게 부르짖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당신들은 내 마음 안에 있어요. 성수를 바닥에 뿌려도 되겠습니까?”

그 영혼들이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 즉시 그녀는 그렇게 했다.

그러자 성수가 그들에게 닿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기쁨에 겨워 춤을 추었다.

다섯째, 성수는 치유를 돕고 위험을 피하게 한다.


기도하며 성수를 사용하면 그 기도는 하늘에 바쳐진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또한 성수는

병든 자의 건강을 위해서 하느님께 간구하는 힘있는 수단이다.

성수는 몸과 정신 둘 다를 치유한다.

그러므로 멀리 있는 가족이나 누군가를 위하여 성수를 사용하여 자주 그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면 좋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몸과 영혼을 모두 축복하실 것이다.

기도가 필요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고 없고는 문제되지 않으며 거리도 문제되지 않는다. 교회가 아주 작은 한 방울의 성수 안에 부여한 기도의 효과는 기도가 필요한 그에게 즉시 도달될 것이다!


위험한 일이나 재난을 염려할 때도 깊은 믿음으로 기도하며 성수를 사용하면 매우 효과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자연의 기적을 필요로 할 때 또는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성수를 사용하여 하느님께 기도하면 도움을 받는다.

성수의 효력은 어디서 기인하나?

물은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기에 물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물은 모든 생명체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지만 은총의 질서에서도 물의

가치는 측량할 수 없을 정도다.


교황 비오 9세는 이렇게 강조했다.

“준성사들 중에서도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성수의 신성함과 효력과 유익으로

볼 때 우리는 성수를 더 자주 그리고 더 열성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성수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 아니다.

교회가 생긴 그때부터 성수가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도 아직 성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성수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왜 성수는 엄청난 힘을 지니게 되었는가?

우리 가톨릭교회가 성수에 성사의 힘을 부여하고 성수를 준성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느님께서 평범한 물을 인간의 영혼들을 구하는 데 매우 힘 있는 도구가 되게 하셨다!

누구든지 성수의 힘을 깨닫게 되면 반드시 성수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운전대에 앉아서도 먼저 계기판에 성수를 뿌리고 운전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자동차에도 성수를 준비해두라. 성수는 성당에서만 사용해야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성당에서 뿐 아니라 집과 일터에서도 성수를 사용해야 하고 성수로써 우리의 집과 일터를 거룩한 장소로 바꾸어야 한다.

성수가 메마르면 우리는 은총을 잃어버리고 악마는 기뻐한다!


성수의 효력은 믿음에서

1992년에 우리가 순례 참가자 940명을 두 대의 점보제트기에 나누어 태우고 시작하는

순례 준비로 한창 바빴던 그 어느 날 “샘 찰리 아저씨”가 우리를 돕기 위해서 나타났다. 그는 항상 하느님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를 그렇게 부른 것은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며 흰 수염을 기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샘 아저씨 같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그는 사무실에서 우리를 도와주다가 오후 3시가 되자 자비심 기도를 바치기 위해서 하던 일을 중단했다.

그는 스프레이 병을 꺼내서 성수를 우리 모두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가 그랬다.

“기도나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성수를 뿌리세요.

기도하기 전에 먼저 성수를 뿌림으로써 악마가 일으키는 혼란과 유혹을 물리칠 수

있어요.”

그는 우리에게 성수를 뿌렸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너무나 향긋한 향기가 그 방을 가득 채웠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 향기를 맡았다.

나는 성수병에 향수나 향기 나는 무언가를 넣었는지 그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단지 성수뿐이었다고 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종의 표징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성수가 뿌려질 때 우리 몸에 있던 로션이나 향수의

향기가 퍼져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성수를 더 많이 사랑하고 더 자주 사용하도록 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일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질문을 던지셨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마태 9, 28)

그분은 믿는다는 답을 듣고서야 기적을 베푸셨다.

믿음이 없는 마을에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기적을 방해했던 것은 그들의 불신이었다.

그처럼 성수도 그 사람의 믿음에 따라 힘을 지닌다.

카파르나움과 나자렛의 사람들이 보여준 것처럼 성수의 효력은 그것에 대한 믿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샘 찰리 아저씨”처럼 우리도 성수의 효력을 믿어야 한다.

믿음으로 성수를 사용하여 악마와 위험과 질병과 재난을 예방하고 추방하기를! 우리

교회가 성수에 부여한 놀라운 준성사의 힘으로 자기 자신은 물론이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킬 수 있기를!


이정은 리디아 옮김

(마리아지 2010년 7 · 8월호, 통권 162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