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 복음과 묵상
2019년 7월 10일 수요일
[(녹)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
그때에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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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에게도 주셨는데!’
한 중년남성이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가다가 자신의 앞의 차가 자전거를 탄 10대 소년을
들이받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소년은 차 앞부분에 깔려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얼른 달려가 차를 들어 올렸습니다.
소년은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아저씨, 조금만 더 높이요, 조금만 더 높이요!”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중년남성은 차를 20센티미터 이상 들어 올렸고 그 소년을 친 운전사가 소년을 빼냈습니다.
소년을 병원으로 옮긴 뒤에야 그는 비로소 자신이 어떤 기적을 일으켰는지 깨달았습니다.“사고 현장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어요.
그 소년이 제 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거였죠.”
사고를 조사한 경찰 당국도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어찌된 건지 통 모르겠네요. 차체 앞부분을 땅에서 완전히 들어 올리다니.
사람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올까요?”
중년 남성의 이름은 톰 보일이고, 이 일은 2006년 여름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은 뜻밖에도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2005년 여름 영국 선더랜드에서 친구와 함께 캠핑을 가던 23세 카일라 스미스는
차를 나무에 들이박는 사고를 당해 차가 뒤집혔습니다.
신장 165센티미터의 가냘픈 스미스는 자신도 등뼈 두 마디가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지만, 자신과 함께 타고 있던 친구를 빼내기 위해
차를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무조건 차를 들어 올리지 않으면 친구의 다리는 못 쓰게 되니까요.
그래서 제 팔을 운전석 창문으로 넣어 차 지붕을 밀어 올렸죠.”
스미스는 BBC 등 영국 언론에 나와 자신의 몸무게보다 20배가 더 나가는 무게를 들어 올릴 당시
자신은 차 무게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그 일은 이미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발동하여 불가능을 잊게 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미 죽어서 하루가 지나 싸늘하게 죽은 자녀를 다시 살게 해 달라고 청하는 사람은
그 자녀의 어머니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청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감히 범접하지 못하여
기도를 해 드리면서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사랑의 날개입니다.
새의 몸통과 날개가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하면 불가능한 것까지 믿게 됩니다.
그런데 사제인 제가 신자의 그 사랑에 범접하지 못하여 기적을 일으키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들을 쫓아내게 하시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의 선포는 기적을 일으키는 힘과 함께 주어졌습니다.그냥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것과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쳐주며 선포하는 것과는
천지차이입니다.
기적이 없는 복음 선포는 힘을 잃습니다.
왜냐하면 같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희망이 생기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러한 권한을 주신 열두 사도 중에“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유다에게도 주셨다면 우리에게도 주시지 않으셨겠습니까?
영화 ‘명량’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은 먼저 적진으로 뛰어듭니다.열두 척의 배중에서 오직 이순신 장군의 배만 적진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싸우고 또 싸웁니다.
한 척, 두 척, 세 척... 열 척을 혼자 맞서 싸워 이기는 것을 지켜본 다른 장군들이
하나 둘씩 이순신과 다시 합류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 기세로 열두 척의 배가 죽기 살기로 앞으로 나아가니
일본의 배들이 줄행랑을 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여러 사람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물론 병자를 치유하는 기적을 보고 갖게 된 믿음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런 것을 보아야만 믿음이 시작되는 이들이 많습니다.
돈이 많으면서도 굶어 죽는 이들이 있다면 참으로 어리석다고 말합니다.어쩌면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처지가 그럴 수 있겠습니다.
기적의 힘을 지니고도 믿지 못하니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의 한계를 먼저 생각하니 그 믿음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나의 가족이라 생각하고 한계를 무시하며 일단 해 본다면죄인인 우리도 많은 기적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본당에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병자들을 치유하는 기도시간과 안수시간을 갖는다면
수많은 이들의 치유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한 마디만 해 주면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낙서장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설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말할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다 이루고 살았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가
간절히 기다리는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부자 되지 못해도..
빼어난 외모가 아니어도...
지혜롭지 못해도..
내 삶에 날마다 감사 하겠습니다.
날마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고,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나의 하루를,
나의 삶을 사랑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고민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날마다 깨닫겠습니다.
나의 하루는 기적입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언더우드의 기도 낙서장‘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