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복음과 묵상
2019년 6월 3일 월요일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9-33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30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3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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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법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거리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나이 70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살을 한 것이었습니다.
앰뷸런스가 와서 할머니는 곧 병원으로 실려 갔고 뒤이어 달려온 경찰들이
사람들을 해산시키고는 자살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할머니의 아파트로 올라갔습니다.
실내는 온갖 고급 도구와 사치스런 장식품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왠지 썰렁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이 정도 살림으로 보았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닌 것 같고,
혹시 건강상의 이유나 불치병 때문일지도 몰라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주치의는 할머니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건강했다고 말했습니다.
골똘히 고민하던 경찰관은 책상을 뒤져 보았습니다.
할머니의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수첩을 펼쳐보는 경찰관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군.” 하고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머니의 수첩엔 365일 동안 똑같은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오늘도 아무도 나에게 오지 않았음.”
왜 할머니는 자신이 누군가를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매일 다른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만 있었을까요? 고독했기 때문입니다.
고독하면 누군가를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다시 고독해지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고독한데 고독하고 싶지 않아 만남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식당에서 활개를 치고 다닌다면 분명 어딘가에 부모가 앉아있을 것입니다.
혼자 있다면 두려워 활개를 칠 수 없는 것입니다.
혼자라는 고독감이 더더욱 자신을 방에 가둡니다.
누군가를 만나러 나갈 수 있으려면 혼자되는 두려움을 극복해야합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혼자되는 것이 두려우면 세상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세상은 인간이 외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아서 돈이나 명예, 친구들이
필요하다고 믿게 만듭니다.
그렇게 외로움은 세상의 지배하에 살게 만듭니다.
그러나 수많은 친구가 있어도, 인기가 많아도 여전히 고독한 사람은 고독합니다.
이는 돈을 주고 애정을 사서 외롭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국의 문인 부르크가 미국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부두에는
전송객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한 전송객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서운함을 느낀 부르크는 부두에서 놀고 있는 한 어린아이에게
“얘야! 내가 네게 6실링을 줄 테니 내가 저 배를 타고 떠날 때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6실링을 받은 아이는 정말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부르크는 “돈 받고 흔드는 손을 보고 나는 더욱 고독을 느끼게 되었다.”
는 고백을 했습니다.
이를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많은데 늘 외로운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외롭기 때문에 군중 속에서도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외롭지 않은 사람입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아야 세상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어야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체 홉은 “고독이 두렵다면 결혼하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결혼 배우자를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는 도구가 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면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고독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키에르 케고르는 “내가 고독할 때 나는 가장 고독하지 않다.”고 말했고,
도오로우는 “나는 일찍이 고독만큼 사이가 좋은 벗을 본 적이 없다.”라고 했으며,
펄 벅은 “내 안에는 나 혼자 살고 있는 고독의 장소가 있다.
그 곳은 말라붙은 마음을 소생시키는 단 하나의 장소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이들이 당신을 버리고 떠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을 안심시킵니다.
이미 알고 있으니 괜찮다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으면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아버지와 함께 계시니 걱정 말라고 하십니다.
이렇듯 세상 애정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고독 가운데
더 나와 친밀하게 함께 하심을 믿어야합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봐야 합니다.
그래서 외로울 수 없어야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세상을 이기는 법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성모님과 요한 바오로 2세![]() 경외로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 지인이 외국인 친구로 부터 받은 메일 내용을 보내와서 이곳에 올립니다, “경외로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 나는 이와 같이 매우 귀중한 메시지와 기도에 주의를 끌도록 메일을 보내게 됨에 매우 기쁘답니다. 이 메시지와 기도의 힘을 느끼고 또한 고맙게 여기고자 반드시 가톨릭신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에 믿는 이들의 기도가 첨부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이 사진을 오랫동안 감추기를 원하셨는지 모릅니다. 바티칸은 최근에 이 사진을 처음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이 사진은 교황의 호신병 중 한 명이 교황님이 저격당하시고 교황님의 차에서 쓰러지시는 순간을 찍은 것입니다. 교황님 고통을 얼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을 봅시다. 교황 바오로 2세가 1981년 저격당하셨을 때 성모 마리아께서 두 팔로 품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1981년 5월 13일에 발생했으며, 교황 바오로 2세가 베드로 광장에 도착하셔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계실 때 발생했습니다. 교황님은 저격당하셨을 때 항상 갖고 다니셨듯이 묵주를 들고 계셨습니다. 바닥에 쓰러지셨을 때 어디서인가 어떤 여인이 교황 바오로 2세 곁으로 달려가서 그를 껴안았습니다. 그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교황 바오로 2세를 찍는데 분주한 거기 모인 사람 중 한 사람이 찍은 것입니다. 여인은 나타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즉시 사라졌습니다. 저격수는 광장에서 체포되었고 무기징역을 받았습니다. 교황 바오로 2세는 중상을 입으셨으나 수술과 오랜 시간의 회복기간 후에 살아나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모든 총알이 교황님의 중요한 내장을 관통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교황님이 회복하셨을 때 바로 청하신 것이 묵주입니다. 손에 묵주를 쥐셨을 때 교황님은 성모 마리아께서 총알이 관통하는 길을 돌리시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물론입니다. 교황 바오로 2세는 정기적으로 묵주신공을 하시는 습관을 가지고 계셨고, 가장 좋아하시는 기도가 묵주신공이라고 하셨습니다. 바티간의 대변인인 죠아킨 나바로 발스는 몇 년간 여러 사람들이 이 믿을 수 없는 이 사진에 대해 연구했고 또한 현상되는 이 사진을 질에 대해 물론 더 연구했는데 그 이유는 사진의 상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분명히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여러 차례의 조정과 전세계적으로 사진술에 대한 전문인들이 보고 또한 검토한 결과, 이들은 이 사진에 어떠한 속임수가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하느님의 어머니로부터 온 이 아름다운 선물을 오늘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교황 바오로 2세를 두 팔로 품으시는 것을 보십니다. 아름답지요? 당신이 나를 믿을지 안 믿을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믿습니다. 믿는 여러 사람 중 한 분은 토마스 웬스키 주교님이며, 이 분은 이 사진을 그의 플로리다 저택의 유리 창문에 재현시켰습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아래 사진에서 보십니다. 신앙을 가지고 읽으십시오. 경외로운 기도입니다. 믿고 그리고 은총을 받으십시오. 오늘날의 우리의 문제는 하느님이 창문을 열고 은총을 퍼부어 주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며 우리에게 그것을 받을 여유(빈공간)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찾으십시오. 하느님은 그의 말에 진실된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고 하느님의 약속은 확실한 것입니다. 이 주에 세 가지가 생길 것입니다. 첫째는 당신이 예상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호의를 볼 수 있을 것이고, 둘째는 당신은 무시되기에는 너무 의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셋째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예전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을 위한 오늘의 나의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메시지를 보는 눈은 악을 쳐다보지 않을 것이며 다른 이에게 이 메시지를 보내는 손은 헛되이 수고하지 않을 것이며 이 기도에 아멘이라고 말하는 입은 항상 웃을 것입니다. 이 기도를 당신이 다른 이에게 보내는 순간에 하느님의 사랑에 머무르십시오. 사랑스러운 인생의 여정이 되시기를! 온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그 분은 경외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 은총이 필요하다면 계속 읽으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가장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우리 가족과 나에게 풍부한 은총을 주시기를 당신께 기도합니다. 저는 어머니, 아버지, 형제, 남편, 아내를 넘어서서 당신을 믿고 신뢰하는 가족을 당신이 알아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 메시지를 저에게 보낸 사람 뿐만 아니라 저를 위해서 그리고 이 메시지를 받아보는 모든 이들에게 은총을 주십사고 기도를 올립니다. 당신을 믿고 신뢰하는 이들이 바치는 공통의 기도 힘은 어떠한 것보다도 막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은총에 대해 미리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아버지, 이 메시지를 읽는 이들의 빚과 빚의 괴로움에서 구해 주십시오. 천상적인 지혜를 내려주시어 당신이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 대한 훌륭한 청지기가 되게 하십시오. 저는 당신이 얼마나 좋으시고 전능하신지 알고 있으며 우리가 당신께 순종하고 당신의 말씀의 길을 걸을 때, 그리고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질 때, 당신은 은촌을 퍼부어 주심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받은 은총에 대해서도 감사드리며 또한 저는 당신이 더 주실 것을 알고 있는 앞으로 저에게 주실 은총에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