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4 복음과 묵상
2019년 5월 14일 화요일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9-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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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수준만큼 기도를 들어주신다
MBC 김상운 기자가 진행했던 ‘지구촌 리포트’에 이런 사연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71세의 하이벨(Ellen Heibel) 할머니는 말기 암 환자였습니다.
의사는 이렇게 선고하였습니다.
“식도암이 간, 폐, 척추, 흉골 등 온몸에 이미 다 퍼져버렸네요.
어떤 치료를 받더라도 소용없어요.
집에 가서 그냥 편히 쉬세요.”
방사선과 화학치료를 하면 6개월 정도는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 친구가 복자 실로스(Francis Seelos) 신부 이야기를 해주며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둘은 곧장 9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들이 암이 다 사라졌다며 깜짝 놀랐어요.
기도를 시작한 날과 검사받던 날 사이에 모두 사라진 겁니다.”
의사들은 의학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고
기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청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들어주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뽑으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 모든 기도를 들어주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수준을 높여야합니다.
부모는 옆집 아이의 뜻보다는 자기 자녀의 뜻을 더 따라줍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그분이 나의 부모임을 믿어야합니다.
믿음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을 받아야 믿음이 생깁니다.
늑대의 젖을 먹고 늑대에게 자라면 자신이 늑대인 줄 압니다.
그의 참 부모가 이 아이를 다시 발견해서 해야 하는 일은
그가 자신의 자녀임을 믿게 하는 일입니다.
그 이전에는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준을 먼저 높이지 않은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에 기도의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으며 하느님께 기도하면 거의 청하는 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늑대라고 믿으며 인간에게 무언가 요구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하느님과 한 가족이라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하느님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청하면 모든 것을 들어주십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지 측정해볼까요?
미국의 생물학자 레인(Glen Rein)은
어떤 식의 기도가 암세포의 성장을 가장 억제하는지 실험해보았습니다.
우선 다섯 개의 세균배양 접시(petri dish)에 각기 똑같은 수의 암세포들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런 다음 한 심리치료사에게 다섯 가지 방식으로 기도해보도록 했습니다.
1. 암세포들이 자연의 질서를 다시 회복해 정상적으로 자라도록 해 주세요.
2. 암세포가 세 개만 남도록 해 주세요.
3. 신의 사랑과 연민이 암세포에 미치도록 해주세요.
4. 암세포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연민을 보내주세요.
5. 암세포들을 파괴시켜주세요.
어떤 기도가 효과가 있었을까요?
결과는 이러했습니다.
1. 암세포들이 자연의 질서를 다시 회복해 정상적으로 자라도록 해 주세요.
=> 암세포들의 성장속도가 39% 떨어졌다.
2. 암세포가 세 개만 남도록 해 주세요.
=> 암세포들의 성장속도가 21% 떨어졌다.
3. 신의 사랑과 연민이 암세포에 미치도록 해주세요.
=> 2번처럼 성장속도가 21% 떨어졌다.
4. 암세포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연민을 보내주세요.
=> 아무 효과가 없었다.
5. 암세포들을 파괴시켜주세요.
=> 아무 효과가 없었다.
내가 만약 하느님이라면 어떤 마음일까요?
암세포가 파괴되기를 바랄까요, 아니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랄까요?
암세포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창조자의 마음일 것입니다.
아무리 구제불능이라도 회개하여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온전한 기도를 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가리옷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해 마티아 사도를 뽑은 날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나 가리옷 유다가 죽지 않았다면 마치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그를 끝까지 기다리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지옥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실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유다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습니다.
하느님임을 믿고 하느님처럼 생각하고 하느님의 마음을 가져야 청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수준을 당신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청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하라는 것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더 많은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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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무덤성당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으신 골고타와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시고 부활하신 곳, 그리고 후에 헬레나 성녀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한 곳 등을
아울러 기념성전으로 지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한 곳은 시내 근처(요한 19,20) 곧 골고타라고 불리는
곳이었다.(마르 15,22; 마태 27,33; 요한 19,17)
골고타는 '해골' 또는 '머리털이 없는 두개골'을 의미하는 아라메아어 '골골타'나
히브리어 '골골레트'가 희랍어 식으로 발음된 것이며 라틴어로는 갈바리아라고 부른다.
무덤 성당 정문과 광장 :
오늘날 순례자들은 무덤성당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지만, 이슬람이 통치하던 1
187-1832년에는 항상 닫혀 있었습니다. 현재 광장에서 볼 때 오른쪽에 있는 문은 아예
봉해져 있는데 1187년 예루살렘을 접수한 살라딘은 성당에 들어가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수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모든 문들을 폐쇄하고 하나의 문만을 남겨 놓고 순례자들로부터 성지순례 세금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246년부터는 두 이슬람 가정에 무덤 성당 열쇠를 맡겼는데 한 집은 성전 문을
열고 닫는 권한을 그리고 다른 한 집은 성전 문의 열쇠를 보관하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현재도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종파들이 내부 성전의 소유권과 관할권을 놓고 다툼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열쇠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 신자가 실질적인 무덤 성당의 주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당 문을 들어서서 바로 오른쪽.
오른쪽 보이는 계단이 골고타로 오르는 계단(왼쪽 문은 골고타 언덕의 아래로
아담경당으로 들어가는 문)
위 사진에서 왼쪽 벽면쪽에 나 있는 골고타에 오르는 계단
출입문쪽 오른쪽에 보이는 그 계단 - 골고타에 오르는 계단...계단 출입구 중앙 위쪽엔
성지관구 십자가
십자가의 길 제 10처와 11처 (예수님께서 옷벗김을 당하시고, 못 박히신 곳) :
가톨릭 소유
10처와 11처 제대 벽의 모자이크
10처와 11처 오른쪽 벽면의 모자이크(아브라함의 제사-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10처와 11처의 오른쪽 벽면 벽화 : 예루살렘의 여인들
골고타. 12처 :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
12처
12처
12처 제대 안
12처 제대 안 - 둥근 원 안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졌던 골고타의 바위를
만져볼 수 있다.
갈라진 바위 : 좌도가 서 있던 쪽 - 마태 27,51 : (예수님께서 다시 큰소리로 외치면서
영을 떠나 보내시자..) 그러자 갑자가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지고 땅이 뒤흔들리면서 바위들이 갈라졌다.
12처
12처 : 왼쪽-성모님; 오른쪽-세례자 요한
12처
12처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제대 : 11처와 12처의 사이에 있는 성모님상으로 1778년
포르투갈에서 통고의 복되신 동정녀께 봉헌하였다. (루가 2,35 : 그래서 당신의 영혼을
칼이 꿰뚫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속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매주 금요일엔 골고타 위에서 성대한 미사(미사 깐따따)가 봉헌되는데 격주로 한번은
십자가 신비 기념 미사, 다른 주엔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 미사가 봉헌된다.
골고타의 정면 : 왼쪽->12처 : 중간->통고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상 : 오른쪽 ->10처와
11처
* 12처의 자리는 그리스 정교회의 소유이다.
* 10처와 11처 그리고 중간의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제대는 가톨릭 소유이다.
* 골고타에서는 (11처의 제대 또는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제대) 매일 아침 5시,
5:30분, 6시, 6:30분 7시에 미사가 봉헌된다.
* 골고타에서는 매주 금요일 6:30분에 성십자가 신비 또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
미사가 봉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