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4/24 복음과 묵상

메옹 2019. 1. 24. 19:39

2019년 4월 24일 수요일

[(백)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복음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3-35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오늘의 묵상


 
 

성경말씀으로 예수님을 만나려면


1701년 작품, 이아생트 리고의 그림 루이 14세의 초상화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불 같은 망토를 뒤집어쓰고 허벅지까지 드러나는 스타킹을 신고

족히 15cm가 넘는 붉은 색 굽의 하이힐을 신고 긴 가발을 썼습니다.

‘탈롱 루즈’라고 하는 이 하이힐의 발등 부근에는 붉은 리본모양의 장식도 있습니다.

루이 14세는 당시 통풍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왕권의 당당함과 위엄을 지키고 싶어서 이 초상화를 그리게 했습니다.

당시 그렇게 높은 굽의 하이힐은 아무나 신을 수 없는 특수 제작된 형태의 것이었고,

스타킹 역시 만들기 매우 어려워 값비싼 물건이었습니다.

가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30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초상화는 남성의 권력을 느끼게 하기 보다는

왕을 매우 여성적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옆구리에 칼을 차기는 했지만 복장 자체로만 보면 매우 여성스럽다 할 수 있겠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있는 ‘기도란 무엇인가?’란 강의에서 예수회의 정규한 신부는

위의 예를 들며 그때의 사람과 지금의 사람은 가진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그림을 보아도 같게 해석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각자가 가진 지식의 한계 내에서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그림을 가장 온전히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림을 그린 사람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사는 사람들보다는 그때의 문화에 살았던 사람이 더 잘 해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도 적용됩니다.

성경은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특별히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로 수렴됩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들의 지식과 믿음이 구약에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자신이 가진 지식과 믿음의 틀 안에서 성경을 해석합니다.

오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도 그 틀에 묶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구약의 모든 내용을 통틀어 설명하시며 당신이 죽으셨다 부활하셔야 함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처음엔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성경을 이해하고 나서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이해하게 된 것은 성경을 읽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올바른 해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하느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어야합니다.

하느님만이 성경의 저자이시고 성경을 가장 잘 이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올바로 알아들은 것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오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성경말씀을 듣고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라고 말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며 머리가 뜨거워져서는 안 됩니다.

가슴이 뜨거워져야 주님께로부터 설명을 들은 것입니다.

성경으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으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눈이 뜨이지 않습니다.

말씀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문자와 믿음이 결합된 말씀을 의미합니다.

문자 자체가 진리라는 착각으로부터 수많은 이단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문자는 사실 각자의 지식대로 해석되기 때문에 오히려 영혼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목적지로 가기 위한 도구이지 그것 자체가 새로운 믿음이 생겨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미 희망하는 것을 믿음으로 확증해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목적지가 없이 마구잡이로 탔다가는 시간만 허비하다 지쳐버립니다.

성경말씀은 믿음과 함께 먹고 소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당신 믿음으로 성경말씀을 요리하여

알아듣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믿음이 생겨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성경 자체로 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믿음과 결합될 때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성경말씀을 들었다면

마음이 그만큼 불타올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이 말씀과 결합되어 그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전해주는 이의 믿음이 성경말씀이라는 매개체로 전달된 것입니다.

성경을 아무에게서나 배우면 안 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칼은 그것을 통제하고 유용하게 사용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휘둘러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마음이 뜨거워졌다면 예수님께서 설명해 주신 것이고

그만큼 그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캐나다에서 있었던 실화
  
그는 어려서 학대를 받았으나
열심히 노력한 끝에 자수성가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생겼고 선망의 대상이자 인생의 목표였던 
최고급 스포츠카를 구입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차고에서 차를 손질하러 들어오던 그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어린 아들이 천진 난만한 표정으로 못을 들고
최고급 스포츠카에 낙서를 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이성을 잃은 그는 손에 잡히는 공구로 
아들의 손을 가차없이 짓뭉개버렸고
아들은 대수술 끝에 결국 손을 절단해야 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깨어난 아들은 아버지에게 잘린 손으로 
울며 빌었습니다.
" 아빠 다신 안 그럴게요 “
” 용서해주세요 "
소년의 아버지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갔고
그 날 저녁....
차고에서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그가 본 것은 그의 아들이 남긴 낙서였습니다.
낙서의 내용은...
"I love daddy" ...

사람들은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잃어버리고서야 실감합니다.
늘 곁에 있어서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한번 주변을 둘러보세요.
무엇이 진짜 소중한 것인지...
진짜 소중한 것을 찾았다면 
절대 그 것을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