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4/18 복음과 묵상

메옹 2019. 1. 24. 18:38

2019년 4월 18일 목요일

[(자) 성주간 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 (백)]



복음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6-21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오늘의 묵상



 
 당신의 감정은 안녕하십니까?


제가 처음으로 많이 울어본 경험을 한 것은 영화 ‘에비타’(1996)를 볼 때였습니다.

일반 대학 다니다 군대 제대하고 신학교 들어갈 것을 결심한 때였습니다.


이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었던 차에

에비타라는 주인공과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별을 할 때도, 심지어는 누가 죽어도 눈물이 잘 나오지 않았었는데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다니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어쩌면 눈물을 보이면 안 되는 억압된 환경에서 이제 비로소 탈출하게 되었기 때문에

눈물이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남자는 강해야하고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정글의 법칙입니다.

정글에서는 작은 상처로 절뚝거리기만 해도 야생동물에게 잡아먹힙니다.

그래서 멧돼지는 발에 가시가 박혀도 아픈 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결국 상처가 곪아서 죽는다고 합니다.


정글에 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어린아이 때는 감성이 풍부하다가도 어른이 되면 감정이 메마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감정이 지나쳐 모든 이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처럼 느껴져도 살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아픔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무뎌져도 좋지 않습니다.

행복은 감성적인 것입니다.

적어도 구원을 위해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하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입니다.

오늘 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시기 위해 돌아가신 날입니다.

목숨을 바쳐 생기게 만든 감정이 감사인 것입니다.


이 감사가 우리를 동물의 본성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힘입니다.

감사는 주는 이에 대한 부담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부담스러워야 보답하려고 노력하다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짐승을 길들일 때도 자꾸 부담스럽게 하여 은혜를 갚도록 하는 방법을 씁니다.

훈련을 시킬 때 잘 하면 먹을 것을 던져주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래서 발을 씻어주시는 행위와 성찬례가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발을 씻겨주시고 성찬례를 제정하셨습니다.

성체를 예전부터 ‘감사’로 불러왔고 성찬례를 시작할 때 ‘감사송’을 부르며

감사의 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성체를 영하며 감사가 나와야 발을 씻은 사람처럼 깨끗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발을 씻어주어도, 성체를 영해주어도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지 않으면

그건 짐승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가리옷 유다였습니다.

가리옷 유다에게서 감사가 솟아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자아가 만든 정글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글에선 강한 자만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더 가지려합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이라도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모기나 기생충이 아닌 이상 사랑을 받으면 기쁘고 감동의 눈물이 나야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감정이 없는 모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랑을 받아도 느낄 수 없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변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도 사회생활을 하며 감정을 짓누르다보면

지금 자신의 상태가 기쁜지, 슬픈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성당에 와서 성체를 영하면서도 감사가 솟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유다의 상태와 별반 다른 게 아닙니다.

세상은 감정을 억누르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과 맞서야합니다.

세상에서 “너, 나에게 감정 있니?”라고 누가 물으면

“너, 나 때문에 기분 나쁘냐?”라는 뜻으로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감정이 기분 나쁨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듯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미덕이 아닌 세상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감정을 잃고 살아갑니다.


유다도 세상에서의 성공에 집착하다보니 감정을 잃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누구도 그의 감정을 보도록 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감정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알람을 맞추고 자는데 아침마다 알람이 울리며 이렇게 물어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기분은 좀 어떠세요?”

처음엔 ‘네가 뭔 상관이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뭐, 기분이 그냥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요즘엔 ‘오, 감사한데? 물어봐주니 기쁜데?’ 등의 반응이 나옵니다.

자꾸 질문을 받아보니 나의 감정에 민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젠 우리도 나와 상대의 감정을 깨우기 위해 “안녕하세요?”가 식사를 했는지가 아닌

“오늘 기분은 어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당신의 감정은 안녕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꾸 물어주어야 그 사람도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성 목요일, 가리옷 유다처럼 비극의 날이 되지 않기 위해

나 자신과 이웃의 ‘감정은 안녕한지?’ 자주 물어야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William Bouguereau's Collection


(윌리엄 부케로의 미술 작품)

 

Adolphe William Bouguereau


프랑스 인상파 화가(1825.11.30.~1905.8.19 )



부케로는 시인 이상이 이야기한 '박제된 천재' 입니다.

현재 사람들에게 가장 선호되는 화파는 다름 아닌 '인상파' 입니다.

프랑스의 고전주의적이며 종교와 신화를 주제로 삼아 많은 작품을 남긴

윌리엄 부게로는 시대가 발달하여 현대적으로 접어들며

바뀐 예술적 흐름에서도 고전적인 화풍을 고집하였다...

센잔, 마네,모네, 드가, 피사로, 르느와르 .. 후기 인상파로 빈센트 반 고흐,

고갱 현재 가장 평가 받는 화파가 인상파이며 인상파의 탄생에 의해

모더니즘이 시작되었다고 알고있습니다.

부게로의 그림은 곧 세밀한 묘사, 특히 손과 발, 피부의 묘사는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고 살롱에서 그의 작품은 인기 있는 품목이었습니다
.

아카데미 화풍으로 충실하게 그려진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William Bouguereau 는 그 지워진 '기존화파'의 대가로서

사실 저주 받았다기 보다는 그로서 대표되는 Academic Art 전체가 

저주를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품을 寫實的으로 표현했기에 死後에서야 빛을 보게된

 

William Bouguereau (윌리암 부궤로)의 미술작품을 모았습니다.

 

 

 

Dante and Virgil in Hell 1850


어린 나이에 미술에 소질을 보이고, 나이 속여 미술학교에 일찍 입학하여 그 안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연이은 수상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뜨리에에서, 밥먹는곳도 아뜨리에, 친구들을 만나는 곳도 역시

먼지나는 작업실. 하루 16시간, 일주일에 7일을 꼬박 그림만을 그리며

한 평생을 보내고, 그리고 다시 자신이 배운 방식대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한,  당시 최고의 미술가라 불리며, 그렇게 평생을 바쳐

80년동안 822점 (현재 알려진) 이상의 작품을 만들어낸

William Bouguereau..

그런 작가가 존재했었고, 어둠속에 잊혀졌던 수십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Charity

 

어려서는 교육기관에서, 졸업후에는 아뜨리에서 도제방식의 수년의

연마를 통해서야 비로소 제대로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기본과

안정적인 구도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을 고수하며, 원근법과 해부학적인 관점을 중시여긴 사실적인 묘사,

전통적인 기술을 발전시켜 표현력에 있어서는 최고의 수준에 오를수

있었던 사람...

금방이라도 튀어나올듯한 근육, 핏줄, 뼈대.. 생생한 색깔, 그중의 최고로 평가받는 부궤로.

 

 

The Virgin and Angels 

 

당시의 주류였던 아카데미즘과의 대립에서의 승리 하지만, 그 와중에

인상파 사조의 직격탄을 맞게된 William Bouguereau 와 19세기의

화가들, 특히 마지막까지 자신의 교육방식을 고집하던 부궤로의 경우 

Academism 화가의 대표자로 인식되어 집중적인 비난의 주인공이

됩니다. 

(아직까지 프랑스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작품들도 주로 미국쪽에 있습니다)

얼마나 심각했느냐 하면, 르노아르의 경우 안경을 맞추러 간 자리에서

조차 쓰던 걸 내던지며 "이런, 부궤로 같으니라구.." 했던 일화도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인상파를 이은 모더니즘의 등장과 함께 완성도높은 기교,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구성, 감성적인데다 고전적인 방식, 소재, 모더니즘과 대치되는 모든것을 갖고 있는 대표자로서 인식되어 그는 서양 미술사에 깨끗이 지워집니다.

1940년부터 1980년사이에 미술을 공부한 사람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름이 되고 마는 것이죠.

 

 

Young Girl Defending Herself Against Cupid 1880

큐피드의 화살을 피하려고 하는, 다가온 사랑을 피하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는 소녀. 

하지만, 그림의 하단에는 대개 이런 유형의 간단한 문구가 따라붙곤 

합니다.

'들판에 나가 그린게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모델을 그린 것이며, 뒤의 

 배경은 작가가 살던 인근 프랑스지역의 산이다.'


 

Pain of Love


전혀 인간적이지 않고 기술에만 치중하며 겉만 번지르하고

내용은 없다고 치부 되었던 작품.

 

 

Biblis

 

한때 대중과 소수의 평론가들에게 사랑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형편 없는 그림이라 평가되어, 미술관에서조차 퇴출되어 창고에 쌓여있던

그림들.

이제는 몇점이나 그렸으며, 지금은 어디에 보관 되어 있는지 출처조차 찾기 힘든 그림들.

아직도 그가 몇년에 죽었는지(1905년) 조차 잘못 기록되어 돌아다니는

현실.


 

Nymphs and Satyr

 

Fred Ross 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1977년에 Clark Museum에서 르노아르의 그림을 보러갔다가 그 구석에서 처음으로  이 작품을 보았다고 하는데...

무척 당혹스러운 기억이었다고 말합니다. 

알고 있는 모든 작가를 생각해보았으나, 도무지 누구일까..

떠오르지가 않았던, 콜럼비아대학에서 미술교육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자신조차 한번도 들어본 적도, 본적도 없는 그림.


 

Birth of Venus


그는 의문을 품습니다.

생전에 엄청난 경력을 가진 화가가 어떻게 철저하게 묻혀질 수 있는지,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해 아는 사람도, 자료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연구가 시작됩니다.

 

 

 

The Nymphaeum


동시대를 연구하고, 버려진 작품들을 찾아다니며, 그는 이 엄청난 유기가 '부궤로'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The Youth of Bacchus

 

 

First Kiss


 

Fred Ross


'부궤로'에 대한 말도 안되는 편견과 인신공격, 악의적 왜곡이 수십년간 지배됐음과 한 시대의 그림에 대해 일방적인 평가와, 집단적 매도,

그리고 그의 작품은 단순히 '예쁘장' 한게 아니라, 미술사에서도 정점에 남을 만한 명작인거라는 걸 알게 되는 것이죠.

 

 

Dawn


 

The Flagella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first mourning (아벨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담과 이브)


 

A Soul Brought to Heaven


 

Love is Fleeting 1901

 

예술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움의 기준이란 원래 그렇게 늘 바뀌는 건가? 의문이 들게 합니다.

렘브란트.. 그의 작품들은 사후 100년 동안 사장 되었다고 합니다.

Night Watch라는 작품의 경우 아무도 가져가려 하지 않아 그림의 하단을 벽면에 맞는 크기로 잘라내는 조건으로 내걸렸던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림을 잘라내어 벽에 맞추다.

지금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합니다.

 

 

Little Shepherdess 1891


미의 기준이 변하는 것, 물론 자연스러운 것이긴 하지만, 가장 순수해야할 미술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무척 허약한 게 아닐까.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을 지배하는 어떠한 거품 같은 게 잔뜩 있는 건 아닌가, 그 안에서 사람들은 너무나 나약한건 아닌가. 그런 의구심과 함께.


 

The Little Marauder 1900


어느 정도의 기준이 변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 정도를 넘어서까지 그 가치라는 게 변할 수 있다는 건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Two Girls (Childhood Idyll) 1900

The Abduction of Psyc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