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4/13 복음과 묵상

메옹 2019. 1. 24. 17:37

2019년 4월 13일 토요일

[(자) 사순 제5주간 토요일]



복음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5-56

그때에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56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오늘의 묵상


 


감정에 솔직해야 하는 이유

‘레온 페스팅거’란 학자는 1950년대 초에 신문에서 이상한 기사를 보게 됩니다.

어느 사이비 교주가 조만간 큰 홍수가 일어날 것이란 예언을 하고

오로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만 비행접시가 나타나 구원해준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를 믿은 사람들은 전재산을 교주에게 맡기고 철야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날이 왔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기는커녕 날씨만 화창하였습니다.

교주는 다시 신도들 앞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세상을 구했습니다!”

교인들은 더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더 열심히 교주를 믿었습니다.

교주는 누가 봐도 사기꾼입니다.

그런데 한두 명도 아니고 수천수만 명이 교주를 믿을 수 있을까요?

페스팅거 교수는 이런 상황을 ‘인지 부조화’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인지 부조화란 자신에게 일어나는 불편한 감정을 달래기 위해

생각과 행동으로 평화를 찾아보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기합리화는 진정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자신을 만들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솝우화에서 여우가 맛있게 보이는 포도송이를 보고 먹고 싶어 여러 번 시도를 해 보다

손이 닿지 않자 ‘저 포도는 분명히 신 포도일거야!’라고 생각하고 가버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렇게 불만족한 자신의 마음을 자기합리화로 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자기합리화를 통해 사이비종교도 믿게 되고 심지어 살인도 하게 됩니다.

여우는 그 포도를 먹지 못해 안타깝고 화가 나는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았어야 합니다.

오늘 유다인들이 모여 이런 행동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마음 적으로는 예수님을 죽일 결정을 내렸습니다.


마음에서 올라오는 질투와 시기심, 화 등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 감정을 덮어버리기 위해 핑계거리를 찾습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받드는 것처럼 보이면 로마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이유를

찾아냅니다.


대사제 카야파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

대사제로서 예언을 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핑계들은 다 맞습니다.

그래서 감정을 속일 수 있는 것입니다.

감정을 속이면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당당할 수도 있습니다.

감정 – 생각 – 말,

이 셋 중 가장 솔직한 것이 무엇일까요?

가장 깊숙한 마음에서 올라오는 감정일 것입니다.


생각은 머리로 하고 말은 입으로 합니다.

인간은 ‘심장 – 머리 – 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간에게서 심장이 가장 깊은 부분입니다.

그러니 가장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이 나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이 감정이 생각을 거치면 퇴색되고 말과 행동으로 나오면 전혀 다르게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말과 행동, 혹은 생각만 바라보면

나를 아주 딴 사람으로 인식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은 속일 수 없습니다.

가장 솔직한 것은 마음입니다.

나의 시선을 말이나 생각에 두기보다는 내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 욕구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솔직할 수 있고 자기 합리화에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감정에 솔직하라는 말은 나의 감정을 내가 보란 말입니다.

감정대로 하다가는 인간관계가 다 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당히 표현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게 정직한 나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나는 표현되는 내가 아니라 그런 감정이 일게 만드는 나입니다.

솔직해지라는 말은 그 감정을 나라고 여기라는 것입니다.

오늘 유다인들의 감정은 질투였습니다.

질투하는 자신들을 생각과 말로 숨겼습니다.

그리고 애국자가 되어 하느님까지 살해하게 됩니다.

질투가 일어나는데도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그 지경까지 간 것입니다.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내가 참 내가 아닐 수 있습니다.

진짜 나는 나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감정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감정에 솔직해지십시오.

그래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남자에게 너무나도 사랑했던 연인이 있었답니다.
어느날 남자는 전쟁터에 가게 되었고

전쟁 중에 불행하게도 하나와 다리 쪽을 잃게 되었습니다.

모습으로 그렇게 마음으로 사랑했던 그녀 곁에 머물 없어

그녀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것이 자신만을 사랑했던 그녀에게 보여 있는 깊은 사랑이라 생각 했답니다.
시간은
흘러 그녀의 결혼 소식이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사랑했던 그녀의 결혼식이 열리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  

마음으로 진정으로 사랑했던 그녀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위해서 였습니다.

 

먼발치에서 결혼식을 바라보던 남자는 그만 주저 앉고 말았답니다.

그녀의 곁에는 팔과 다리가 없는 사람이 휠체어에 앉아

사랑했던 그녀와 결혼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남자는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아프게 했는지,..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하고 온전한 만을 사랑 했던

아니라는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그녀를 위해 눈물 속에서 작곡을 합니다.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이렇게 탄생하였습니다.
숭고한 사랑의 힘으로~~~


오늘의 편지는 감동있는 이야기가 있는 아름다운 명곡 하나를

Story 함께 띄워드립니다.
우리들 인생은 사랑을 하기에도 짧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진심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행복과 기쁨이 충만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네덜란드출신 세계적 오케스트라 지휘자
앙드레 (André Rieu)’ 지휘하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Balade pour Adeline)”입니다.

멋진 음악과 함께 멋진 하루 보내세요~~~~♬♬♬♬(3)

멋진 연주는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qMuKw1NYpjs


André Rieu - Ballade pour Ade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