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4/4 복음과 묵상
메옹
2019. 1. 23. 19:19
2019년 4월 4일 목요일
[(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복음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1-47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와 복음은 유다인들의 불신과 불충을 다룹니다.
계약을 맺자마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수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였을 때 모세는 하느님
앞에서 불충한 백성을 위하여 애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아를 당신 안에서 알아보지 못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이해 부족과 사악한 뜻에 맞서셔야 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 복음의 넓은 의미에서 빛과 어둠, 그리스도와 적대자들 간에 전개되는 재판 과정을 강조합니다.
안식일에 벳자타 못의 병자를 낫게 해 주신 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한 증인들을
나열하십니다.
그리스도와 당신 인격, 당신 사명을 위한 증언에는 먼저 세례자 요한, 그다음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활동, 곧 파견받은 이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아버지의 활동, 끝으로 예수님의 오심을 미리 앞선 성경 전체의 보증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대자들은 모세에게 고소당하여 재판에 넘겨질 것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인간의 협력, 그분께 열려 있는 겸손한 마음을 요구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그들 안에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가 없고 동시에 그들은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교만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인간의 협력, 그분께 열려 있는 겸손한 마음을 요구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그들 안에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가 없고 동시에 그들은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교만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빛보다 어둠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행실이 사악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믿음으로만 예수님 안에서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활동이며 동시에 아버지의 활동이지만, 유다인들의 불신으로 거부당하고 맙니다.(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늙는 것도 서러운데, 눈물은 왜 흘리신대요? . . .
평균 수명이 늘다보니 노인 문제가 심각해졌다.
모두들 부모 모시기를 힘들어 하고 사회가 복잡해 질수록
노인 문제로 자식들이 재산은 공평하게 상속되는데
어찌 장남만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가 불평이다.
요즘 부모님 모시는 것을
귀찮다는 젊은이들의 행위는
자식들을 왕자, 공주로
자식들을 왕자, 공주로
키운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
자식 키울 때 자식 비위 맞추기에
혼신의 힘을 다한 부모는 결국
자식들의 하인이 되는 원인이 됐다.
자랄 때 부모 공양법을 모르고
그래서 요즘 사랑방 노인들이 하는 이야기 속에 답이 있다.
"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효자란 말이여! . . . "
집에도 못 오게하는 세상이라 양로원에 가는 시대란다.
부모들은 훗 날을 위해 자식들에게
부모가 변화에 대한 준비를 했다면
부탁하는데, 자식은 적성을 봐 가면서
왕자 공주가 부모 모시는 법을 모르고 컸다면
까마귀도 어미가 늙어 힘 못쓰면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고사성어의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있다.
고급스런 자식 집에 가 보면
당신의 늙은 모습을 보고 좋아 하겠습니까?
밥 한 끼 얻어 먹는 것도 눈총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