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복음과 묵상
2019년 3월 1일 금요일
[(녹) 연중 제7주간 금요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2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4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5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6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10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12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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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고리가 곧 생명줄
전에 소년원에 가서 여자 아이들의 고해성사를 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소년원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들어가서 고해를 주었습니다.
알고 보니 살인이나 폭력, 강도 등의 큰 죄를 짓고 들어온 아이들이었습니다.
중,고등학생 여자아이들이었지만
살인까지도 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니 겁도 조금 났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놀란 것은
이런 아이들의 마음이 매우 순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당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의 고해를 듣을 때보다
더 깨끗한 아이들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신을 키워주고 지금은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죄송하다거나
또는 자신의 잘못으로 피해를 받은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실수를 해서 가족이나 친척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에 대해
크게 뉘우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놀랐던 것은
고해를 본 수십 명의 학생들 중 단 한 명도 건전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죄를 지어 갇혀 있지만
이것이 어찌 이 아이들 탓이라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은 본래 순수하게 태어났지만
마땅히 받아야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이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아야 온전하게 성장하듯이
모든 사람은 본래 사랑을 받아야합니다.
그렇게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실험이 ‘하아로우의 원숭이 실험’입니다.
아기 원숭이를 젖이 나오는 철사로 만든 차가운 엄마 인형 원숭이와
젖이 나오지 않는 포근한 털로 만든 엄마 원숭이 인형 사이에 두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보는 것입니다.
젖은 먹어야하니 철사로 만든 엄마 원숭이에 붙어 젖을 빨고는
항상 포근한 털로 만든 원숭이 인형에 안겨 지냅니다.
엄마의 존재는 낳아주고 젖을 먹여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랑을 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아이고 우리 아기 밥 잘 먹는다. 똥도 잘 싸네?”
하며 칭찬을 받아야만 ‘자아존중감’이 커집니다.
자아존중감은 내가 내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만족해하는 마음입니다.
미국의 한 시골에서 천연두로 동네 친구들과 형제들이 죽었지만 그레이스란 한 아이만
얼굴에 천연두 자국을 남긴 채 살게 되었습니다.
도시에서 친구들이 괴물이라고 소리 질렀지만 어머니가 그 얼굴의 상처는
하느님께서 살려주셨다는 은총의 표지라는 말을 해 주셨기에
그레이스는 자신을 당당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와 결혼해 둘 다 미국 국회의원을 지냈다고 합니다.
만약 어머니가 아이에게 자아존중감을 심어주지 않았다면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냥 자신을 비관해 죽어버리던가, 아니면 살더라도 행복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아존중감 대신 자존심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니 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외적으로라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누가 경쟁심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을 좋아해 주겠습니까?
그래서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더 외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나쁜 친구와 어울리게 된다면 그 그룹에서 인정받기 위해 솔선수범하여
나쁜 짓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소년원에 와 있는 이들의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도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엉망이 되었고
하와도 아담과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엉망이 되었습니다.
꽃도 암컷이 있고 수컷이 있습니다.
바람이나 나비, 혹은 벌이 수컷의 꽃가루를 운반하여 암컷에 수정시키면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그 열매 안에는 수컷과 암컷이 들어있습니다.
그 열매에서 수컷과 암컷을 다시 분리해 낼 수 있겠습니까?
한 번 수정이 되면 더 이상 분리될 수 없습니다.
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을 통해 결합된 둘은 이제 더 이상 분리될 수 없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떠나서는 온전히 성장할 수 없는 것처럼,
부부도 갈라지면 온전히 커갈 수 없습니다.
세속적으로 이혼하여 재혼을 하더라도
이전 혼인의 유대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기에 완전한 혼인의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새어머니가 아무리 잘 해 주어도 친어머니만 못 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이 맺어주셨다면 가장 좋은 나무에 가장 알맞은 가지를 붙여주신 것입니다.
물론 세상의 풍파 속에서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에서 떨어져나가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전기선이 끊기면 더 이상 집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하느님께서 맺어주시는 관계의 고리가 곧 우리의 생명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어느 멋진신부님 이야기
"아저씨!"
"… …"
"아저씨! 잠깐만요."
11월30일 영동고속도로 ○○휴게소.
한 중년 부인이 승용차 창문을 반쯤 내리고
부근에서 빗자루질하는 미화원 ㅂ씨를 불렀다.
ㅂ씨는 부인이 부르는 '아저씨'가 자신이란 걸
뒤늦게 알고 고개를 돌렸다.
"이거(일회용 종이컵) 어디에 버려요?"
"(그걸 몰라서 묻나. 쓰레기통까지 가기가
그렇게 귀찮은가….) 이리 주세요."
ㅂ씨는 휴게소 미화원으로 일한 지 이 날로 꼭 한 달째다.그런데도 '아저씨'란 호칭이 낯설다.
지난 27년 동안 '신부님'이란
소리만 듣고 살았기 때문이다.
안식년을 이용해 휴게소 미화원으로 취직한
'청소부가 된 신부님' ㅂ신부.
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동안
휴게소 광장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며
빗자루질을 한다.
그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주변에 한 명도 없다.
기자의 '기습'에 깜짝 놀란 그는
"아무도 모르게 하는 일인데"하며
사람들 눈을 피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 사는 게 점점 힘들어 보여서
삶의 현장으로 나와 본 거예요.
난 소신학교 출신이라 돈 벌어본 적도 없고,
세상 물정에도 어두워요.
신자들이 어떻게 벌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집 장만하고, 교무금을 내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그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소위 '빽'을 경험했다.
농공단지에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갔는데
나이가 많아 받아주는데가 없었다.
아는 사람이 힘을 써줘서 겨우
휴게소 미화원 자리를 얻기는 했지만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란 걸 피부로 느꼈다.
그는 출근 첫날 빗자루를 내던지고 그만두려고 했다.
화장실 구역을 배정받았는데 허리 펴 볼 틈도 없이
바쁘고 힘이 들었다.
대소변 묻은 변기 닦아내고,
발자국 난 바닥 걸레질하고,
담배 한대 피우고 돌아오면 또 엉망이고….
그래도 일이 고달픈 건 견딜만 했다.
사람들 멸시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커피 자판기 앞에서
구시렁거리며 불평을 했다.
무엇을 잘못 눌렀는지 커피가 걸쭉하게 나와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상태였다.
ㅂ신부는 휴게소 직원으로서 자신의 동전을
다시 넣고 제대로 된 커피를 뽑아주었다.
그랬더니 그 여성이
"고마워요. 저건(걸쭉한 커피) 아저씨 드시면 되겠네"
라며 돌아서는 게 아닌가.
"제가 그때 청소복이 아니라 신사복 차림이었다면
그 여성이 어떤 인사를 했을까요?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되죠."
ㅂ신부는
"그러고 보면 지난 27년 동안 사제복 덕분에 분에 넘치는
인사와 대접을 받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눈물젖은(?) 호두과자도 먹어 보았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나왔는데 허기가 져서
도저히 빗자루질을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들고
트럭 뒤에 쪼그려앉아 몰래 먹었다.
손님들 앞에서 음식물 섭취와
흡연을 금지하는 근무규정 때문이다.
그의 한달 세전 월급은 120만원.
그는 "하루 12시간씩 청소하고 한달에 120만원 받으면
많이 받는거냐, 적게 받는거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또 "언젠가 신자가 사다준 반팔 티셔츠에 10만원 넘는
가격표가 붙어 있던데…"라며
120만원의 가치를 따져보았다.
이번엔 기자가 "신부님이 평범한 50대 중반 가장이라면
그 월급으로 생활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다.
"내 씀씀이에 맞추면 도저히 계산을 못하겠네요.
그 수입으로는 평범한 가장이 아니라 쪼들리는
가장밖에 안 될 것 같은데."
그는
"신자들은 그런데도 헌금에 교무금에 건축기금까지 낸다"며
"이제 신자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강론대에서 '사랑'을 입버릇처럼 얘기했는데
청소부로 일해보니까 휴지는 휴지통에, 꽁초는 재떨이에
버리는 게 사랑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누군가가
그걸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은 평범한 일입니다.
또 과시할 것도 없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랄 필요도 없죠.
시기질투도 없습니다. 그게 참사랑입니다."
그는 "신자들이 허리굽혀 하는 인사만 받던 신부가 온종일
사람들 앞에서 허리 굽혀 휴지를 주우려니까
여간 힘든 게 아니다"며 웃었다.
그는 "퇴근하면 배고파서 허겁지겁
저녁식사하고 곧바로 곯아 떨어진다"며
"본당에 돌아가면 그처럼 피곤하게 한 주일을 보내고
주일미사에 온 신자들에게 평화와 휴식 같은 강론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 날은 그의 마지막 근무일이다.
애초에 한 달 계획으로 들어왔다.
그는 '낮은 자리'에서의 한달 체험을 사치라고 말했다.
"난 오늘 여기 그만 두면 안도의 한숨을 쉬겠죠.
하지만 이곳이 생계 터전인 진짜 미화원이라면
절망의 한숨을 쉴 것입니다.
다시 일자리를 잡으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나도 '빽'써서 들어왔는데. 그리고 가족들 생계는
당장 어떡하고. 그래서 사치스러운 체험이라는 거예요."
그는 인터뷰가 끝나자 일터로 뛰어갔다.
한시간 가량 자리를 비운 게 마음에 걸려서 그런 것 같다.
미화반장한테 한소리 들었을지도 모른다.
쓸고 닦고 줍고…
몸을 깊숙이 숙인 채 고속도로 휴게소를 청소하는 ㅂ신부.
그에게 빗자루질은 사제생활 27년 동안 알게 모르게
젖어든 타성에서 벗어나고,
마음의 때를 씻어내려는 기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