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2/14 복음과 묵상

메옹 2019. 1. 3. 13:30

2019년 2월 14일 목요일

[(백)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복음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4-30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29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오늘의 묵상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어머니의 힘은 놀랍습니다!


주변에 장애우 자녀나 환우 자녀, 마음이 아픈 자녀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백방으로 뛰어 다니는 어머님들을 봅니다.

참으로 갸륵하고 감동적입니다.

부족한 제가 봐도 그토록 사랑스러운데,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더 사랑스럽겠습니까?

정말이지 깊이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의 노고를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 이 혹독함은 반드시 지나갈 것입니다.

잘 견뎌낸 그 고통으로 인해 백배 천배의 상급을 받으실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이니, 오늘도 희망하며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성장해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유년 시절 제 어머니의 애물단지였답니다.

맨날 원인도 모른채 시름시름 아팠고, 급기야 생사조차 불투명하게 되었답니다.


어머니는 그런 저를 한번 살려보겠다고,

저를 들쳐엎고 이 병원, 저 병원 백방으로 뛰어다녔답니다.

의료진들만 만나면 ‘제발 좀 살려달라고’ 눈물로 하소연했답니다.

밤만 되면 부속 성당으로 달려가 기도로 밤을 지새웠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틈만 나면

“엄마의 간절한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주셨으니, 잘 살아야된다!”는 말씀을

늘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지금도 어슴푸레 어린 제 머리맡에서 온 힘을 다해 간절히 기도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어머니의 힘은 놀랍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딸 때문에 늘 울고 다니던 한 가련한 이방인 어머니의

깊은 믿음, 간절함, 끈질김이 크게 돋보입니다.

그 어머니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과 큰 수모를 겪으면서도 끈질긴 간청으로,

마침내 주님의 연민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새삼 어머니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평소 같았으면 청하기도 전에 미리 구마와 치유의 은사를 베풀어주셨을텐데,

그날따라 예수님의 반응은 냉랭합니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르코 복음 7장 27절)


의도적인 주님의 냉대는 이방인 여인의 입에서 더욱 애절한 부르짖음을 자아냅니다.

예수님의 약간은 의외의 냉담한 반응 앞에서도 그 여인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극도로 자신을 낮추고 이스라엘을 들어높이며 외칩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마르코 복음 7장 28절)


어머니는 딸을 위한 은총을 얻기 위해 강아지라는 칭호마저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딸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방황하는 자녀들, 주님과 교회를 멀리 떠나 있는 자녀들,

여러가지 질병이나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 자녀들의 치유와 회심을 위한

우리의 기도도 좀 더 간절해지고 끈질겨져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어느 성탄절 전야의 추억



 



세계 2차대전 때 어느 성탄절 전야에
네덜란드의 국경선 근처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날은 주먹 같은 눈발이 세찬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고
마을 거리에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밤이었다.
미군 한 소대가 정찰 도중 거센 눈보라에 길을 잃고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쉴 곳을 찾고 있었다.
이 마을을 찾기는 했으나
집들은 사람이 살지 않아 땔감도 없고 먹을 것도 없었다.
그런데 유일하게도 자그마한 오두막집 한 채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그 집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그들을 맞아 주었다.
거실 벽난로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서
온 실내가 따뜻했고 난로 옆에는
갓 구운 감자가 소쿠리에 담겨 있었다.
그 냄새에 굶주린 병사들은 군침을 삼키며
그 할머니의 말씀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할머니는 그 소쿠리를 앞에 놓고는 먹기를 청하였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곡간으로 가서 더 많은 감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갑자기 또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의 미군 병사들은 먹던 감자를 내던지고
총을 들어 경계태세를 취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할머니가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가서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미군 병사처럼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독일군 병사 한 소대가 있었다.
순간 양쪽 병사들은 서로가 총을 겨누었고
등골이 오싹한 또 한 차례 침묵이 잠시 흘렀다.
할머니가 평온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는 내 집이오. 그리고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니오?
오늘밤 하루만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야만적인 일을 그만두시오.
지금부터 내 집에서는 미국군도 없고 독일군도 없소.
자! 총들을 내려 놓아요."
또 한 차례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어떤 항거할 수 없는
내면의 힘이 그들을 압도하는 것을 느꼈다.
적개심이라는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이 그 힘 앞에서 무력해 졌다.




"오늘은 성탄절 전야다.
그리고 여기는 할머니의 집이다."
라는 말에서 양쪽의 병사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 뭉클함을 느꼈고
어릴 적 크리스마스 이브의 추억으로 감회에 젖었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고향집의 어머니, 할머니가 생각났고
상대 병사들의 얼굴에서 형제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느새 그들의 긴장하고 경직되었던 어깨에서
힘이 빠지고 총을 꽉 움켜쥐었던 손은 풀렸다.
어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에게 겨누었던
총부리는 땅으로 숙여졌다.
한사람 한사람 차례대로 할머니에게 총을 맡겼다.
그리고는 어느 편이라고
구분없이 벽난로를 중심으로 섞어 앉았다.
의자가 부족한 탓으로 어떤이는 벽에 기댄 채,
어떤이는 바닥에 앉아서는 서로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몇 마디 영어로, 혹은 더듬거리는 독일어로
손짓발짓을 섞어 돌아가며 자신을 소개했다.



성탄절 전야의 만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칠면조 고기 한 점 없고 달콤한 와인 한 잔 없는
그저 구운 감자와 따뜻한 물이 전부지만,
병사들의 성탄절 추억과 전쟁 전의 고향 이야기가
그 소박한 오두막집의 성탄 전야를 한층 평화롭게 해주었다.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땅ㆍ날씨와 수확 이야기며,
학교ㆍ공장과 병원의 이야기도 했다.
그들은 단지 성실한 농민이며 노동자이고 학교 선생님, 화가였다.
그들 서로간에 어떤 미워해야 할 그 무엇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는
그냥 평범한 이웃사람과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화기애애한 얘기 중에서 그들은 문득 의문이 일었다.
왜 우리는 서로 죽여야 하는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인데,
그들도 부모형제가 있고 그들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랑하는 친구가 있는데.
다음날 아침 그들은 각자의 총을 챙겨서는 자기 부대로 돌아갔다.
그들 각각은 서로가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과연 다음 전쟁터에서 적이라고 하는 저들을 향해
총을 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옮겨온글 

 

 

 

 






성녀 루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