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과 묵상

1/12 복음과 묵상

메옹 2018. 12. 23. 00:34

2019년 1월 12일 토요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잠시 묵상한다 >


묵상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종종 만납니다.
사실 처음 신학교에 들어가서 그리고 신부가 되고서도 한참 동안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우선 제게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너 정말로 결혼 안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 수 있어? 어떻게 여자 없이 살 수가 있지?”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함께 대화를 나눌 주제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돈, 직장, 결혼, 육아 등의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이 주제들을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별 연관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쁨을 가지고 모임에 나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인이 되는 것 같아서 자리가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점이 생겼습니다.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친구들은 “결혼 안 하고 어떻게 혼자 살 수 있느냐?”는 질문을 아예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혼자 사는 네가 부럽다.”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함께 나누는 주제가 물질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옮겨지면서 이제는 서로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제게 행복에 대한 질문도 하고,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에 대해 서로 공유를 하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젊었을 때에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더 중요한 것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더 중요한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키워나갈 때 행복하게 된다고들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유다인들과 말다툼을 하지요.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요한보다 더 위대하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요한과 예수님의 두 집단 사이에 어떤 경쟁 관계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에게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 곁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 시기와 질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이런 시기, 질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세상의 기준으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말합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인간에 지나지 않는 요한은 자기가 하늘로부터 받은 것만 줄 수 있을 뿐이라고 하지요. 즉, 우리가 받은 것만으로 만족해야지,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할은 종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합니다.

세상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과연 주님을 세상에 환하게 드러내고 있습니까?

 

 

♣  법정스님의 좋은 글  ♣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기 에서 -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 오두막편지 에서 -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있는 것이다.

 

- 물소리 바람소리 에서 -

 

 

 

시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 홀로사는 즐거움 에서 -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 산방한담 에서 -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 홀로사는 즐거움 에서 -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람도 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 오두막편지 에서 -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 산에는 꽃이 피네 에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

 

- 봄,여름.가울.겨울 에서 -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 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산에는 꽃이피네 에서 -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 버리고 떠나기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