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3일 수요일 복음묵상
2019년 11월 13일 수요일
[(녹)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믿음의 크기와 찬양의 크기는 비례한다
저는 다행히도 여러 나라의 미사 전례에 참석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미사 안에서 찬미 소리의 정도와 그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수가
비례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독일의 한 성당의 평일미사에 참석하였습니다.
뒤쪽의 2층 성가대석에서 정말 아름다운 성가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성가를 부르는 이들은 딱 들어도 프로였습니다.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걸출한 음악가들이
이런 분위기 때문에 탄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미사 참례자 수는 10명이 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미사 참례자들은
미사 내내 성가를 하나도 따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화음 속에 자신의 목소리를 끼어 넣을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미사가 아니라 콘서트였고
그 콘서트장에 몇 명의 노인들이 참석하여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미사도 이와 비슷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례는 더 경직되고 그와 발맞추어 신자들은 덜 나옵니다.
성가대는 신자들이 따라 부를 수 없는 특송을 많이 부르고
신자들은 마치 성가대가 대신 찬미해 주는 것처럼 앉아있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할 때도 형식적입니다.
그냥 옆 사람과 고개만 살짝 숙이며 눈인사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셨을 때
그렇게 눈인사만 살짝 하였을까요?
서로 기쁨에 끌어안고 함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요?
전례의 생동감은 믿음에서 오는데 그 믿음은 소리 높은 찬미로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들이 소리 높여 찬미하지 않으면 그 전례는 죽어가는 것입니다.
소리 높여 찬미 할 수 없는 이유는 구원받은 것에 대한 기쁨이 샘솟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병환자 열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이 다시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립니다.
복음은 이 장면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사마리아 사람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해지는 전례에 절대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인의 전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싶으신 것입니다.
전례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기쁘게 찬미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구원된 사람이란 뜻입니다.
마르코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으로 가시다가
먼저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성전으로 들어가 성전의 장사꾼들을
모두 쫓아내신 다음, 다시 돌아오는 길에 무화과나무가 바싹 말라 죽어버린 것을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문단의 구조가 마치 샌드위치처럼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되지 못하고
강도들의 소굴로 변해버린 것을 저주받은 무화과나무 이야기가 감싸고 있는 형식입니다.
성경에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믿음’을 상징합니다.
믿음이 없는 전례는 결국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처럼 말라버릴 것이란 예수님의 경고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도 바로 참다운 예배는 어때야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온” 사마리아 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믿음이 있다면 받은 것에 감사해서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사는 이전부터 ‘에우카리스티아’, 즉 ‘감사’로 불렸습니다.
감사한다는 것은 구원되었다는 믿음 때문에 생기는 감정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다면 감사의 찬미가 우러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창피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나병이 치유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치유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찬미소리가 저 사마리아인보다 적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참례한 미사 중 가장 길었던 것은 6시간입니다.
피정 때였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6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찬미를 하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려보았고 평화의 인사를 하며 함께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이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임을 느꼈습니다.
그 가슴 뜨거움은 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뜨거운 찬양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돌아와 큰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한 사마리아 사람만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전례가 과연 구원받은 기쁨에 성당이 떠나가라 찬양하고 춤을 추는 시간인지,
아니면 의무이기 때문에 참아내야 하는 무엇인지 되돌아볼 때인 것 같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에어컨 속 세균 드글드글… 간단 청소법

에어컨 청소를 하지 않고 그냥 사용했다가는 세균 바람을 맞을 수 있다.
에어컨 청소, 어떻게 해야 할까?
청소하지 않은 에어컨은 세균의 온상이나 다름없다.
에어컨 필터에는 먼지가 끼기 쉽고, 축축한 환경의 내부는 세균과 곰팡이가 증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에어컨을 켰을 때 흔히 곰팡내라고 말하는 특유의 악취가 나지 않으면 깨끗하겠거니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냄새가 곰팡이 유무를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순 없다.
냄새가 나지 않아도 에어컨 내부에는 곰팡이가 증식하고 있을 수 있으며, 세균에 오염될 수 있다.
깨끗하지 않은 상태의 에어컨을 사용하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에어컨 필터를 제대로 세척하지 않고 사용하다 에어컨 냉각수에 서식하는 레지오넬라균에 감염돼 레지오넬라 폐렴에 감염될 수 있고, 에어컨 속 곰팡이로 인해 천식 등의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에어컨 관리는 건강뿐 아니라 경제성을 위해서도 필수다.
에어컨이 청결하게 관리되지 못하면 냉방 효율도 떨어진다.
따라서 에어컨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려면 청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냄새 유무와 상관없이 2주에 한 번씩은 에어컨 날개와 필터를 전용 세척제로 청소해야 한다.
필터를 세척한 뒤에는 그늘에 충분히 말려 끼운다.
이때 햇볕에 말리면 변형될 위험이 있어 그늘에 말리는 게 좋다.
에어컨 사용 후 끌 때는 바로 끄지 말고, 송풍 모드로 전환해 10분 정도 가동한 후 끄도록 한다.
그래야 젖어 있는 에어컨 내부를 말려 안에 습기가 차 세균이 번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