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6일 수요일 복음묵상
2019년 11월 6일 수요일
[(녹)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5-33
그때에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은 내가 가난해지기만을 기다리신다
베르린 뒷거리 한 모퉁이에서 거지 소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녀의 앞에는 골목의 꼬마들만 몇 명 모여서 구경할 뿐
아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녀는 기운이 빠져 힘없이 팔을 내려뜨렸습니다.
그때 어떤 젊은 신사가 소녀에게 다가가더니 바이올린을 받아 들고는
익숙한 솜씨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답고 황홀한 멜로디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연주가 끝나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은 아낌없이 갈채를 보내며 돈을 던졌습니다.
젊은 신사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미소로 답례하고
돈과 바이올린을 소녀에게 건네주고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 젊은 신사는 아인슈타인 박사였습니다.
미하엘 슈마허가 비행기 탑승시간이 늦었을 때 택시를 대신 운전한 사건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택시기사 정도면 그래도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이지만 F1(세계 제1의 자동차 경주)의 황제에게는
안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고 핸들대를 꼭 잡고 있다면
아무리 슈마허라도 대신 운전해 줄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소녀가 자기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겠다고 끝까지 우겼다면
아인슈타인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은 그 도움을 받는 사람이 먼저 힘을 빼기를 원합니다.
힘주고 버티고 있으면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도움을 받으려면 먼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도와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같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제가 강의하다가 예수님 만나면 다 망한다고 하면 크게 놀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는 부자에게 가진 것을 다 팔고 따르라고 하셨고
자캐오도 괜히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게 되었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진 것들을 다 버리고 당신을 따르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 만나 누구하나 잘 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칫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에서 더 성공하고 부자가 된다고 착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에게 손해가 나는 일이 생기면 언제든 예수님에게서 돌아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기 위해 다가오심을 명확히 알아야
신앙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소유욕을 끊지 않으면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애정도 소유욕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소유욕을 끊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의 소유 중 하나입니다.
자신을 봉헌하는 제단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은 탑을 세우기 전에 그 탑을 세울 경비가 충분한지 먼저 계산해보는 것처럼,
혹은 전쟁을 하러 나갈 때 싸울 것인지 화평을 청할 것인지 계산해보는 것처럼,
그렇게 먼저 계산해보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계산해야 할 것은 내가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 입니다.
그 십자가는 결국 자기의 소유를 다 버릴 수 있는지, 없는지로 판결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자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엄청난 우환이 들이닥쳤다고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이 세상에서 잘 되게 만들어주는 분으로 착각하고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이유는
우리 안에서 당신이 대신 핸들대를 잡아주시기 위함입니다.
대신 연주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세상에서 망하고 가난해져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힘이 빠졌을 때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잊지 말아야하는 것은 그분은 나의 소유를 모두
버리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버릴 수 있는 만큼 그분은 나를 차지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가난해지기만을 기다리신다
베르린 뒷거리 한 모퉁이에서 거지 소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녀의 앞에는 골목의 꼬마들만 몇 명 모여서 구경할 뿐
아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녀는 기운이 빠져 힘없이 팔을 내려뜨렸습니다.
그때 어떤 젊은 신사가 소녀에게 다가가더니 바이올린을 받아 들고는
익숙한 솜씨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답고 황홀한 멜로디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연주가 끝나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은 아낌없이 갈채를 보내며 돈을 던졌습니다.
젊은 신사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미소로 답례하고
돈과 바이올린을 소녀에게 건네주고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 젊은 신사는 아인슈타인 박사였습니다.
미하엘 슈마허가 비행기 탑승시간이 늦었을 때 택시를 대신 운전한 사건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택시기사 정도면 그래도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이지만 F1(세계 제1의 자동차 경주)의 황제에게는
안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고 핸들대를 꼭 잡고 있다면
아무리 슈마허라도 대신 운전해 줄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소녀가 자기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겠다고 끝까지 우겼다면
아인슈타인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은 그 도움을 받는 사람이 먼저 힘을 빼기를 원합니다.
힘주고 버티고 있으면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도움을 받으려면 먼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도와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같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제가 강의하다가 예수님 만나면 다 망한다고 하면 크게 놀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는 부자에게 가진 것을 다 팔고 따르라고 하셨고
자캐오도 괜히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게 되었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진 것들을 다 버리고 당신을 따르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 만나 누구하나 잘 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칫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에서 더 성공하고 부자가 된다고 착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에게 손해가 나는 일이 생기면 언제든 예수님에게서 돌아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기 위해 다가오심을 명확히 알아야
신앙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소유욕을 끊지 않으면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애정도 소유욕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소유욕을 끊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의 소유 중 하나입니다.
자신을 봉헌하는 제단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은 탑을 세우기 전에 그 탑을 세울 경비가 충분한지 먼저 계산해보는 것처럼,
혹은 전쟁을 하러 나갈 때 싸울 것인지 화평을 청할 것인지 계산해보는 것처럼,
그렇게 먼저 계산해보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계산해야 할 것은 내가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 입니다.
그 십자가는 결국 자기의 소유를 다 버릴 수 있는지, 없는지로 판결납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자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엄청난 우환이 들이닥쳤다고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이 세상에서 잘 되게 만들어주는 분으로 착각하고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이유는
우리 안에서 당신이 대신 핸들대를 잡아주시기 위함입니다.
대신 연주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세상에서 망하고 가난해져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힘이 빠졌을 때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잊지 말아야하는 것은 그분은 나의 소유를 모두
버리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버릴 수 있는 만큼 그분은 나를 차지하십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치매 막으려면 이 잘 닦아야"
치주 질환을 유발하는 구강 박테리아가 치매와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노르웨이 베르겐대 임상과학과 연구팀은 사망한 치매 환자 53명의 뇌 조직 샘플을 분석한 결과, 환자의 96%에서 치주염 박테리아의 DNA가 발견됐다.
앞서 연구팀은 치주염 박테리아가 구강에서 뇌로 이동해 유해한 효소를 만들어 뇌의 신경세포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쥐 실험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치주염을 일으키는 박테리아가 뇌로 이동해 뇌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단백질을 만들고,
이를 통해 인지기능이 손상되면서 치매를 유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해당 박테리아가 치매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치매 발병 위험과 진행 속도를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를 잘 닦고 치실을 사용해야 한다”며 “정기적인 치과 검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박테리아로 인해 생성되는 유해 효소를 차단하는 약물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과학 발전(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