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9일 금요일
[(녹)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4-28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오늘의 묵상
관계의 목적
‘골목식당, 여름 특집 긴급점검, 비포 엔 에프터’에서 백종원 대표가 눈물을 흘린 사연이
유튜브에 올라와 보게 되었습니다.
첫 방송 때 백종원 대표는 자신이 가르친 것을 절대 바꾸지 말라고 당부하였고
사장 부부는 굳게 약속도 하였었습니다.
그 식당은 변화된 모습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손님들의 후기를 보면 “다시는 가지 않겠다”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매출도 급락하였습니다.
골목식당 측에서는 손님들로 가장해 몇 명을 투입해 몰래 카메라를 찍었습니다.
제육과 순두부만 하라고 한 백 대표의 말을 뒤엎고 사장 부부는
김치찌개와 닭백숙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때 음식을 만들라고 한 말을 무시하고 빨리 매출을 늘리기 위해
수십 그릇의 뚝배기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놓고 데워서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이 맛없다는 요원들의 말에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백 대표 음식 많이 안 먹어봤죠? 그러니까 그렇지.
백종원 대표 음식들이 맛이 다 강해. 맵고, 약간 짜고, 약간 달고, 그렇게 호불호가 ...
지금 원래 알려준 것보다 훨씬 더 맛있어졌지.”
백종원 대표는 “이런 일이 뭐 하루 이틀인가요?”라고 말은 하면서도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인 사람들에게서 배신을 당하고는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그 가게 분들은 백 대표 덕에 빚을 갚고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음식 가짓수를 늘리고, 미리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데워서 팔았습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손님이 줄게 된 것입니다.
백 대표는 그 부부가 자신을 배신했다며 상처받은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누가 봐도 장사 면에서는 백종원 대표가 그들보다 한 수 위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느 정도 잘 되면 그것이 자신이 잘해서 잘 되는 것인 양 교만해지기 일쑤입니다.
비단 그 가게 주인 분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면서 자주 겪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교만해질 때 자신에게 잘 해 주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까지 소원해지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따르려는 의욕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진짜 나를 내려놓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함께 가는 길은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나를 내려놓지 않으면 오히려 더 교만해져 예수님보다 자신이 더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십자가는 지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하는 것은 항상 안 좋게 끝이 납니다.
왜냐하면 모든 관계는 십자가를 지는 연습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십자가 없이 주님을 따르려다 주님과 결별하게 된 많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를 따름은 교회를 따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파견하시는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당신이 세우신 교회에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도록 하느님 나라의 열쇠도 맡기셨습니다.
더불어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하시며
그 성체성사의 신비를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니 교회를 따르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자기 나름대로’ 따르려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성경해석 하는 것이 옳다고
교회와의 인연을 끊었습니다.
성경은 교회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것 자체가 진리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진리가 있는 사람이 성경을 알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 개인의 해석이 교회의 해석보다 낫다고 여겨
새로운 종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도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받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 분열 이면에는 자신을 버리지 않은 채 주님을 따르려고 했던 많은 이들의 교만이 들어있습니다.
자신을 죽이고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십자가 없이는
주님을 끝까지 올바로 따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청년시절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창 힘이 넘칠 때라 남의 짐까지 져가며 하루를 올랐습니다.
다음 날 무릎 쪽 인대가 늘어나 이틀 동안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저의 짐을 져 주어 간신히 완주는 했지만
그 2박3일은 실로 지옥과 같았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도 그렇고, 사람과의 관계를 오래 지속함에 있어서도 끝까지 가려면
유일하게 함양해야 하는 것은 ‘겸손’입니다.
시간일 갈수록 더 겸손해지지 못하면 그 관계는 거기서 끝나버립니다.
그냥 관계 자체를 더 겸손해지기 위한 기회로 여겨야합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골목식당, 여름 특집 긴급점검, 비포 엔 에프터’에서 백종원 대표가 눈물을 흘린 사연이 유튜브에 올라와 보게 되었습니다. 첫 방송 때 백종원 대표는 자신이 가르친 것을 절대 바꾸지 말라고 당부하였고 사장 부부는 굳게 약속도 하였었습니다. 그 식당은 변화된 모습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손님들의 후기를 보면 “다시는 가지 않겠다”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매출도 급락하였습니다. 골목식당 측에서는 손님들로 가장해 몇 명을 투입해 몰래 카메라를 찍었습니다. 제육과 순두부만 하라고 한 백 대표의 말을 뒤엎고 사장 부부는 김치찌개와 닭백숙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때 음식을 만들라고 한 말을 무시하고 빨리 매출을 늘리기 위해 수십 그릇의 뚝배기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놓고 데워서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이 맛없다는 요원들의 말에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백 대표 음식 많이 안 먹어봤죠? 그러니까 그렇지. 백종원 대표 음식들이 맛이 다 강해. 맵고, 약간 짜고, 약간 달고, 그렇게 호불호가 ... 지금 원래 알려준 것보다 훨씬 더 맛있어졌지.” 백종원 대표는 “이런 일이 뭐 하루 이틀인가요?”라고 말은 하면서도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인 사람들에게서 배신을 당하고는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그 가게 분들은 백 대표 덕에 빚을 갚고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음식 가짓수를 늘리고, 미리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데워서 팔았습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손님이 줄게 된 것입니다. 백 대표는 그 부부가 자신을 배신했다며 상처받은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누가 봐도 장사 면에서는 백종원 대표가 그들보다 한 수 위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느 정도 잘 되면 그것이 자신이 잘해서 잘 되는 것인 양 교만해지기 일쑤입니다. 비단 그 가게 주인 분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살면서 자주 겪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교만해질 때 자신에게 잘 해 주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까지 소원해지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따르려는 의욕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진짜 나를 내려놓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함께 가는 길은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나를 내려놓지 않으면 오히려 더 교만해져 예수님보다 자신이 더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십자가는 지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하는 것은 항상 안 좋게 끝이 납니다. 왜냐하면 모든 관계는 십자가를 지는 연습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십자가 없이 주님을 따르려다 주님과 결별하게 된 많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를 따름은 교회를 따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파견하시는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당신이 세우신 교회에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도록 하느님 나라의 열쇠도 맡기셨습니다. 더불어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하시며 그 성체성사의 신비를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그러니 교회를 따르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자기 나름대로’ 따르려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성경해석 하는 것이 옳다고 교회와의 인연을 끊었습니다. 성경은 교회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것 자체가 진리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진리가 있는 사람이 성경을 알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 개인의 해석이 교회의 해석보다 낫다고 여겨 새로운 종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도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받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 분열 이면에는 자신을 버리지 않은 채 주님을 따르려고 했던 많은 이들의 교만이 들어있습니다. 자신을 죽이고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십자가 없이는 주님을 끝까지 올바로 따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청년시절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창 힘이 넘칠 때라 남의 짐까지 져가며 하루를 올랐습니다. 다음 날 무릎 쪽 인대가 늘어나 이틀 동안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저의 짐을 져 주어 간신히 완주는 했지만 그 2박3일은 실로 지옥과 같았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도 그렇고, 사람과의 관계를 오래 지속함에 있어서도 끝까지 가려면 유일하게 함양해야 하는 것은 ‘겸손’입니다. 시간일 갈수록 더 겸손해지지 못하면 그 관계는 거기서 끝나버립니다. 그냥 관계 자체를 더 겸손해지기 위한 기회로 여겨야합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관계의 목적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성당 - 치유의 성모님 >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성당
-> 114년동안 성모님과 관련된 수많은 기적과 신비가 있는 곳입니다.
기적이나 치유는 영의 치유, 육의 치유, 물리적인 치유가 있습니다.
114년 동안 이곳에서는 성서에 나오는 모든 치유는 다 있었습니다.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치유를 받았고, 불임환자들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심지어 10월 달에는 눈 먼 목사가 와서 눈을 뜨고 갔습니다.
이곳에서는 성서에 나오는 모든 치유와 기적이 다 있습니다.
일일이 설명하려면 하루 종일이 걸립니다.
외부로 알려진 물리적인 기적 몇 가지를 설명하겠습니다.
1930년, 이 성당을 축성할 때 임신부님은
루르드에서, 지금 보이는 매괴성모님을 저 자리에 모셔놓았습니다.
또 한 가지는 종탑위에다가 종 3개를 걸었습니다.
종의 이름은 마리아종, 소화데레사종, 벨라뎃따 종.
1943년이면 해방되기 이년전, 일본인들의 만행이 극에 달하던 때입니다.
일제말기에 일본이 쇳덩어리가 필요한데 성당의 종을 그냥 내버려두겠습니까?
할머니들이 울고불고 매달렸지만,
일본인들은 군화발로 할머니들의 머리를 짓밟고 종탑위로 올라가서
무거운 종 3개를 끌고 올라가서 트럭에다가 싣고
청주에 있는 용광로로 직행을 했지요.
용광로에다가 종을 집어넣고 다른 쇠와 같이 불을 때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쇠는 다 쇳물이 되었는데
성당에서 떼어 온 종 3개는 밑바닥에 가라앉아서는
글자 하나 녹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마치 구약에 나오는 불 속에 들어가서 타지 않았던 선지자들처럼....
용광로가 터질 지경이 되었는데도 종이 녹지 않자
화가 나서 종을 햄머로 내리쳤습니다.
그래서 못 쓰게 했지요.
일본군이 땅 속에 파묻어 놓았던 것을 감곡신자들이 어렵게...
어렵게...찾아내었습니다.
마리아 종과 소화데레사 종은 금이 가서 땜질을 했지만
소리가 나지 않아서 종탑위에 거는 것을 포기했고,
벨라뎃따 성녀 종만 멀쩡하기 때문에
지금 성당의 종소리는 '미' 소리가 나는 '벨라뎃따' 종입니다.
박물관 1층에 문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마리아 종이 여러분을 반길겁니다.
2층에는 소화데레사 종이 있습니다.
마리아 종은 일부러 유리관을 안 씌웠습니다.
순례자들이 만지게 하기 위해서...
그 종을 만지고 많은 순례자들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2년 전에 박물관에 올라갔더니
어느 할머니가 마리아 종 앞에 쭈그리고 앉아,
칼을 가지고 마리아 종의 쇠를 '벅벅' 긁어내고 있었어요.
제가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신부님, 용서해 주세요. 우리 며느리 시집온 지 14년 되었는데 애가 안 들어서요.
이 종이 하도 신통하다고 해서 쇳가루 좀 먹이면 애가 들어설까 해서....'
세상에~~ 부처님 코 떼어가는 사람 봤어도 성당의 종 쇠까지 긁어가다니...
어차피 긁어 놓은 것 다시 붙여놓을 수는 없고,
내 모아 줄 테니까 우유에 타서 한 번 먹여보라고~~ 쇳가루 긁은 것 모아주었어요.
1년 반이 지났는데 미사 끝나고 나니까 어느 할머니가 애를 하나 업고 왔어요.
"신부님 저 기억하십니까?
1년 반 전에 신부님한테 종 쇠 긁다가 신부님한테 혼난 그 할미입니다.
그 쇳가루를 며느리에게 우유에 타 먹였더니 아이가 생겨서
제가 업고 있는 이 아이가 쇳가루 먹고 낳은 아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리아 종 둘레에 둘러앉아 쇠 긁으면 절대 안 됩니다.
저 종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종입니다.
용광로 속에 들어가서도 하느님을 증거한....
말도 못하는 쇳덩어리인 저 종이
단지 성모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그 영광 때문에 죽기살기로 하느님을 증거했습니다.
매일같이 성체를 영하는 우리들.
수호천사가 지켜주는 우리들.
훌륭한 성인성녀들의 세례명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
우리의 신앙은 얼마나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가!
저 종 앞에서도 우리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 종의 믿음의 100분의 1이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세례 받고 난 후 점집 철학관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40%가 넘는다는 창피한 사실은 없어져야 합니다.
여러분들 묵주기도 영광의 끝나는 곳에 넓은 성모광장이 있지요?
애초부터 성모광장이 아니었습니다.
1943년에 성당의 기를 꺾기 위해서 일본신사를 지으려고 닦아놓은 터가 바로 거기입니다.
날고 기는 일본 목수들을 불러와서 자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천주교신자들을 강제부역을 해서 기공식을 합니다.
기공식을 하는 그날 밤 임신부님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임신부님은 밤중에 몰래 신사터로 접근을 합니다.
임신부님의 특기인 다섯 군데 땅을 파고 성모님의 기적패를 묻습니다.
'성모님, 성모님께서 직접 나서십시오.
성모님이 사시는 이 거룩한 산에
일본놈들의 귀신집이 들어선다는 게
말이나 되겠습니까?
성모님께서 친히 나서셔서
일본 목수들이 못 하나도
못 박게 해 주십시오.'
정말로 2년 동안 해방되어서 쫓겨날 때까지 못 하나 못 박고 도망갔어요.
목수들은 눈을 감고도 못을 박아야 하는데,
못대가리를 치면 손대가리만 맞으니 못을 박을 재간이 있어야지요.
목수들이 망치와 못만 들면 갑자기 어디서
곰이 나타나서 앞발을 들고 목수들에게 덤벼듭니다.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서 일본 목수들이 잡아먹으려고 하니
목수들은 무서워서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이 뒷산은 산맥의 줄기가 아니고 동네 뒷산이라 산토끼는 있을 수 있어도
곰, 호랑이가 있을 수 없는 산인데,
일만 하려고 하면 곰, 호랑이가 나타나서 일을 할 수가 없었고,
또 일 하려고 하면 벼락이 때려서 바위가 굴러 떨어지니,
임신부님의 부탁대로 일본목수들은 못 하나도 박을 재간이 없었어요.
이 인근에서는 성당 뒷산을 가리켜 뭐라고 부르기 시작했느냐!
장호원 성당 뒷산에는 성모마리아가 살고계시다!
하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해방이 되고 2년 있다가 1947년 11월 25일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임신부님이 세상을 떠나십니다.
임신부님이 돌아가실 때 마지막 하신 말이
'성모님, 저를 구하소서!'
우리 신자들은 늘 죽기 전에 마지막 말을 무엇을 해야 될지 적어도
한 번은 묵상해야됩니다.
추기경님은 마지막 하신 말이 뭐지요?
"서로 사랑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요한 바오로 교황님은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시오."
열심한 신자인 줄 알았는데 시어머니 돌아가실 때 며느리들한테
"나는 지겨운 인생 살다 간다!" 며느리들 충격 받습니다.
적어도 한번은 내가 숨을 거둘 때 의식이 있든 없든 한 가지를 묵상해야 되지요.
임신부님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행여 성모님을 못 뵐까봐
'성모님, 저를 구하소서!' 하시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제들이 숨을 거두면 평신도들은 사제들의 몸에 손을 못 댑니다.
임신부님이 숨을 거두신걸 알고 본당 회장들이 머리 위에까지
솜이불을 뒤집어 씌워 놓고 나왔어요.
그리고 서울에 있는 파리 외방선교 본부에다가
임신부님이 돌아가셨다고 전보를 쳤어요.
그때 당시 한국에 프랑스 신부님이 세분이 전국에 계셨는데,
그분들이 전보를 받고 장례 치르러 오는데 5일이 걸렸다고 했어요.
5일 동안 그 무거운 솜이불을 뒤집어 씌워 놓으면 당연히 시체가 썩어야지요?
그런데 임신부님이 계신 그 방에서는
끊임없이 짙은 장미향기가 뿜어져 나왔다고 그래요.
신부님들이 오셔서 이불을 들추어보니 어디 한 군데 부패한 곳 없이
마치 잠자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몸을 닦아 드리기 위해서 등을 돌리다가 깜짝 놀랐어요.
임신부님은 딱딱한 나무침대위에다가
십자가를 놓고 그 위에서 주무셨어요.
임신부님은 열십자가 나 있고,
십자가 하나가 들락거릴 절도로 깊은 골이 패었어요.
후배 선교사들도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어요.
51년 동안 물설고 낯설은 이곳에 와서
오로지 예수님과 성모님을 위한 희생과 사랑으로..
선교생활을 했습니다.
임신부님은 51년 동안 고향에 한번도 간 적이 없대요.
선교사들은 7년에 한 번 갈 수 있는 자격이 있었지만
고향에 못 가는 걸 희생으로 바쳤고,
심지어는 친어머니가 돌아가실때도 고향에 가는 걸 포기하고
사제관 문을 닫아걸고 우셨다고 합니다.
임신부님이 51년 동안 이곳에서 본당신부를 하면서
교우들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무엇이냐?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여러분들 사람과 사람사이에 이 말보다
아름다운 말이 있으면 찾아보세요.
부부지간에 이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거기가 천국이요.
고부지간에, 부모자식간에 본당신부와 신자사이에
같은 신부끼리 같은 수녀들끼리, 같은 레지오 단원끼리
같은 동서끼리 그 장소는 천국이에요.
반대가 되면 지옥이지요.
임 가밀로 신부님이 51년 계시면서 일제 36년 치하에 있었는데
36년 동안 네 번 , 햇수는 7년동안 서대문 형무소에 갇힙니다.
마지막 네 번 잡혔을 때는 판사가 마지막 사형 선고를 내렸어요.
"너 죽기 전에 소원이 뭐냐?"
"며칠 있으면 성모몽소승천 대축일이니 감곡에 한 번만 보내주면
교우들과 마지막 고별미사를 드리고,
그 다음에는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
일본판사는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그 날 일본순사들이 제대 위에서
칼을 차고 오만방자하게 미사를 방해했습니다.
눈물의 마지막 미사를 드리며
임신부님도 울었고 교우들도 울었어요.
'우리 신부님, 이 미사 끝나면 돌아가시는구나!'
미사가 다 끝나갈 즈음에 저 뒤에
문이 활짝 열리더니 동네청년들이 뛰어 들어오면서
"신부님, 사셨습니다. 해방되었어요."
그날 드린 그 미사가 바로
1945년 8월 15일 성모님 승천대축일 미사!
눈물의 바다는 환희의 바다로 변했겠지요.
임신부님이 돌아가시고 6.25가 납니다.
여기는 지대가 높아서 싸우기가 유리하니까 인민군들이
먼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인민군 장교들 숙소로 썼습니다.
기둥마다 줄을 걸고 빨래를 말렸고 밥을 해 먹었습니다.
밖에는 천막을 치고 인민군사령부가 마련되었어요.
마룻바닥은 한 번도 손을 댄 적이 없습니다.
모든 역사를 다 안고 있는 마루바닥이 삐걱거리고 흔들리지만,
돈이 없어서 보수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재이기 때문에 손을 못 대요.
어느 날 인민군 장교들이 성당 한 가운데 빙 둘러앉아서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인민군들의 모자가 공중으로 날아다닐 정도로
세찬 회오리 바람이 '휙휙~' 불었어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까
천장 꼭대기에 시뻘건 불덩어리 세 개가
휙휙 돌면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어요.
마치 성령강림때 바람을 일으키는 그 형상이었습니다.
우리들이 보면 성령의 불이었지만 무신론자들인 그놈들이 볼 때
"도깨비불이다!"
오줌을 싸면서 도망을 쳤습니다.
열흘 동안 무서워서 못 들어오다가 도깨비불이 없어지고 난 다음에
열흘 만에 몰래 들어와서 한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새벽 세시 곤하게 잠들었는데 갑자기
'꽝' 소리가 얼마나 크게 났는지
인민군장교들은 잠자다 기절초풍을 했어요.
인민군 장교들은 그 소리가 군인들이
대포를 쏘아서 성당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양 옆에 기둥이 있지요?
양 쪽에 돌로 된 성수대가 왼쪽에 하나, 오른 쪽에 하나!
고개 돌려서 가까운 쪽에 것을 보세요.
저 성수대가 100년이 넘는 성수대이고,
성수대 두 개가 동시에 자빠지면서 마룻장이 나가는 소리였어요.
밖에는 보초가 지키고 있어서 누가 들어와서 밀수가 없었지요.
인민군들은 여기에 와서부터 무서워 살 수가 없었어요.
도깨비불이 날아다니지 않나~
멀쩡히 서 있던 돌멩이가 넘어지질 않나~~
인민군들은 그 탓을 저 위에 계신
성모님에게 그 탓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인민군들은 성모님 상인지도 모르고
처음에 들어왔을 때부터 어떤 여편네가 위를 보니까
남자들을 째려보고 있단 말이야.
'저 여자가 무슨 조화를 부리나 보다....
저것만 깨부수면 성당 안이 조용해지겠지..'
인민군 장교 하나가 성가대 위로 올라갑니다.
성가대 높이랑 성모님상 높이가 거의 비슷합니다.
이 성모님은 루르드에서 모시고 왔는데
속이 텅텅 빈 석고상이에요.
주먹으로 세게 쳐도 폭삭 깨어지는 석고상이에요.
인민군 장교는 총알 한 방만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부서질거라 생각하고,
사람 사형시키듯이 명치를 향해서 정조준을 하고 한 방을 날립니다.
총알은 성모님이 합장하고 있는 손아래 명치 밑에 정확하게 꽂힙니다.
오른쪽 가슴 옆구리와 일곱군데를 급소만 향해서 쏘았는데도,
성모상은 구멍만 뚫어지지...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민군장교는 총을 바꾸어 기관단총을 쏩니다.
수백발의 총알이 성모님을 행해서 날아가는데,
성모님 앞에 이르러서는 물결이 갈라지듯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먼저 맞은 총알 외에는 한방도 맞지 않고
앞에 벽 뒤에 있는 벽에만 새카맣게 가서 박힙니다.
지금도 칼로 긁으면 많은 총알이 우수수 떨어져 나옵니다.
총을 쏘아도 부서지지 않고 기관총을 쏘아도 총알이 피해가니
인민군 장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사닥다리를 놓고
망치와 밧줄을 들고 올라가서 올가미를 만들어서
성모님 목에다가 겁니다. 끌어내리기 전에 '요망한 것!'
성모님의 얼굴을 내리치려고 하자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집니다.
망치가 내려쳐지는 그 순간, 앞을 보고 있던 성모님의 얼굴이
인민군쪽으로 돌아갑니다.
인민군을 쳐다보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그 눈물빛이 얼마나 강했던지
인민군은 줄을 놓치고 망치를 놓치고 밑으로 거꾸로 떨어집니다.
이 자리에는 다른 장교 셋이서 노닥거리고 있다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동상의 얼굴이 돌아가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니,
인민군 장교 셋이 혼비백산해서 밖으로 도망을 칩니다.
밑에 동네에 인민군 장교 밥해주는 집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어느 날 밥 때도 아닌데 인민군 장교 셋이 뭘 보았는지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고,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을 먹이고 정신을 차려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 중에 한 놈이 부들부들 떨면서 성당을 가리키면서
"저 안에~~ 우는 귀신이 있다!"
그때부터 이 성당 안에는 인민군들은 단 한 명도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인민군들이 이북으로 철수하면서 동네 청년들을 조기새끼 엮듯이 엮어서
이북으로 끌고 가려고 하니까 청년들은 성당 안으로 피했습니다.
인민군들은 이 성당 안에 청년들이 30여명이 있는줄 뻔히 알면서도
문을 열고 들어올 재간이 있어야지요. 안에다가 총질도 할 수 없었대요.
성모님께 보복 당할까봐!
3일 동안 성당 밖에서 안으로 들여다보면서
"동무, 날래 나오라우~~ 이북 가자우~"
뭐 이랬을거다!
동네 청년들이 따라나갔겠습니까?
이 안에 있던 청년들은 단 한 사람도 끌려나간 사람이 없었대요.
지금 80...90된 노인들이 그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인민군들이 들어와서 총을 쏘아대면 피바다가 될 것이 뻔했지만,
인민군들은 겁이 나서 성당 벽도 만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6.25가 지나고부터 저 성모님의 그런 이야기들이 외부로 퍼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저 성모님 앞에서 기도하고 미사 중에 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저 성모님은 1930년에 저 자리에 오셔서 한 번도 움직이신 적이 없고
한 번도 덧칠한 적이 없어요.
그러나 보시다시피 어제 만들어다가 어제 모셔 놓은 것처럼
저 모습 저대로 변색되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계세요.
저 성모님 몸에는 먼지가 내리지 않아요.
예수님께서 당신 엄마 몸에 먼지가 앉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요.
총알은 회전을 하기 때문에 나갈 때는 커져요.
이론적으로 따지면 앞에 일곱 개가 있으면 성모님 뒷판은 하나도 없어야 되요.
그런데 뒤를 보면 아무런 흔적이 없어요.
지금도 저 성모님 몸에는 녹슨 총알 일곱 개가 그대로 있다는 뜻이지요.
6,25가 지난 다음부터는 저 성모님 몸에 있는 일곱 개의 총알구멍을 간직한
매괴칠고 성모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전 세계에 성모님께서 당신 몸에 칠고를 받아들이신 데는 이곳 밖에 없어요.
인민군들이 수백발의 총을 쏘았지만 다른 총알은 다 거부하시고
다만 일곱 개의 총알만 받아들이셨어요.
당신이 사시면서 일곱 번의 큰 고통을 겪으셨는데
우리들은 성모칠고, 지금은 통고기념일이라고 그러지요.
이 성지를 찾아오는 아들딸들의 고통을 보시고 성모님은 아들딸들을 향해서
'이 에미를 한 번 쳐다보아라... 이 에미 몸에는 일곱 개의 총알구멍이 있고
지금도 내 몸에는 총알이 있다...
네 고통이 아무리 심하다고 하더라도 이 에미의 고통에 비하겠니...
에미를 보고 힘을 내고 위로를 받거라.'
저 성모님은 한 번도 의자에 앉아보신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이 앞에 와서 편안하게 묵주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어요.
'아이고, 우리 엄마 한 번도 앉아 보신 적이 없어'
여러분 집에 모시고 있는 성모님 한 번도 앉으신 적이 없잖아요.
우리들은 푹신푹신하고 좋은데 골라서 잠자지만,
성모님은 한 번도 자리에 누워보신 적이 없어
그 후로 저는 서서 묵주기도 해요.
오늘 여러분은 성모님이 불러서 왔다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곳에 와서 우리 교우들이 간직할 수 있는
좋은 성물을 만들려고 애를 썼어요.
중국에서 들여오는 조악한 성물이 아니라 한평생 간직할 수 있는
성물을 만들려고 무던히 애썼어요.
매괴성모님 기적패가 만들어졌고, 유명한 작가를 동원해서
성모님의 사진을 찍어서 상본이나 이콘을 만들었어요.
제일 만들기 어려웠던 것이 저 성모님상이었어요.
일곱 번.. 여덟 번의 실패를 거쳐서 삼년 전에 드디어
매괴칠고 성모님이 만들어졌고,
순례자들의 손에 의해서 한국 땅에 전해지고 계십니다.
저 매괴성모님이 가시는 곳마다 얼마나 많은 치유가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저는 수도 없이 많은 편지를 받습니다.
알콜중독자 남편이 있었는데 밥 먹을 때마다 기본이 소주 3병이래요.
술 먹으면 주사가 있는데 성모님 오시던 그날, 소주를 한 잔 먹자마자 토하더래요.
음란마귀에 빠져서 처자식은 돌보지 않고 온통 바람 피고 돌아다니던 사위가
장모가 매괴성모님 모신 그날부터 차분하게 돌아왔대요.
학교 빠지고 가출하던 아이가 성모님 모시고 차분하게 공부한데요.
수많은 암환자들이 매괴성모님을 모시고 가서 치유가 되어요.
모셔 가신 분, 모셔 가실 분들은 저한테 전화하지 마세요.
무슨 전화냐?
많은 분들이 일곱 개의 총알구멍으로부터
짙은 장미향기가 계속 나온다고...
혹시 만들 때 그 안에 뭐 뿌린 것 아닙니까?
절대 그런 일 없어요.
어떤 분은 일 년 후에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이 성지에 왔다가 눈을 뜬 그 목사님은
성모님 모시고 갔는데 성모님상에서
냄새가 안 난대요.
한 달 전에 저한테 전화가 왔는데
"신부님, 어제부터 짙은 장미향기가 끊임없이 나옵니다.
지금도 성모님 안고 문자메시지 넣고 있습니다."
성모님께 나온 장미 향기는 인위적으로
나는 냄새가 아니니까 절대 전화하지 마세요.^^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2009.11.1 - 모든성인대축일 김웅렬신부님 강론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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